얼마 전에 한 유료 콘텐츠 사이트의 담당자에게 메일 한 통이 왔다. 평소에 내 글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며 활동을 권유하는 메일.
유료 콘텐츠 사업이 점점 커져가고 있어서 곳곳에 비슷한 서비스가 생겨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전부터 비슷한 제안을 종종 받아왔기에 아주 난데없는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이곳과는 시작부터 출발이 좋지 않았다. 전화로 자신들의 사이트를 열심히 홍보하고 내게 주어질 특전이나 여러 가지 혜택을 설명해 주는데도 나는 뭔가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핵심을 말해주지 않는 기분이 들었달까.
그래도 찾아온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어 노트북을 켠 다음 언급된 사이트로 들어가 회원가입을 하고 '어디 한번 글을 써볼까' 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통화 중에는 들을 수 없었던 문제가 대문짝만 하게 보였다. 사이트가 유료로 운영되는 건 알겠는데, 글을 쓰는 데도 돈을 내란다. 뭘 자꾸 한 달만 써보라고 하길래 뭘까 싶었더니 이런 것일 줄이야.
순간적으로 다단계가 이런 건가 싶다가도 이런 유료 모델에 대해서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보니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처음에는 작가와 독자의 구분 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짐을 나눠지다가 생태계가 충만해지면 외부에서 추가로 들어오는 자원이 있으니, 언제나 작가보다 독자가 많으며 독자 유입이 꾸준한 우상향을 그린다는 가정 하에서는 지속 가능한 모델이다.
그런데 그런 점을 처음부터 얘기해 줬으면 될 일이었는데 그걸 굳이 숨겼다는 것은, 역시 켕기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핵심 내용을 전달하려다 까먹었다기엔 '한 달만 써보라'는 말을 자꾸 한 걸 보면 몰랐다고도 할 수 없다. 차라리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함께 만들어 나가 봅시다'라며 투자를 권유하는 식의 설득이었다면 나는 이 문제를 별다른 무리 없이 받아들였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세부 사항을 좀 보자고 했더니 그걸 차일피일 미루다 미팅 직전이 되어서야 자료를 급하게 보낸 것. 내용을 보니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데, 그걸 왜 굳이 숨겼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차피 다 알게 될 텐데.
혹시 판을 물리게 될까 봐 그런 거라면,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한 셈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정말 부족한 점이 있으면 이걸 어떻게 만회할지 건설적인 미래를 논하면 그만일 일이다. 어려운 판인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형국이면 더더욱 그렇다. 어떤 일을 하는데, 상대가 알 수밖에 없고, 그걸 속여서까지 권해야 한다면 거기서 신뢰라는 게 생길 수가 있을까? 더 큰 문제가 생기면 더더욱 숨길테고, 그때엔 마치 폭탄 돌리기를 하듯이 큰 문제가 터지기 직전에 상대방에게 던지는 '게임'을 하게 된다.
영화 <바빌론>(2023)에서는 한물가버린 잭 콘래드가 아는 제작자에게 '정말 좋은 작품이다', '너한테만 특별히 연락했다'라는 말을 듣곤 코웃음을 치며 '남들이 다 거절한 작품 아니냐, 그 영화는 분명 쓰레기일 테고.'라고 맞받아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몇 번이나 추궁한 끝에야 비로소 제작자는 잭에게 솔직하게 실토를 한다. 그래서 결국 잭이 영화 출연을 거절했을까. 오히려 솔직한 대답을 들은 뒤에 잭은 영화에 출연도 하고, 실제로 영화가 망해버려서 관객들의 비웃음도 사는 것도 감수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어떤 일을 하는데 문제가 될 부분을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준비할 시간조차도 앗아가게 된다. 실제로는 미리 어떤 준비나 대책을 세워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속여서 뒤늦게 터트리는 바람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멸망을 지켜봐야 하는 일은 분명히 있다. 상황이 뻔한데 자꾸 딴소리를 하니 잭도 짜증이 치솟았던 거고, 문제를 감출 시간에 문제를 해결할 논의나 해보자는 게 그의 본질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속인다는 건 비단 문제가 커진다는 점에서만 안 좋은 것은 아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2022)에서 진도준의 어머니 이해인이 고모 진화영에게 불려 갈 때에도 그저 귀빈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들어갔으나 막상 갔더니 퍼스널 쇼퍼의 인간 마네킹이 되는 자리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분을 삭이는 장면이 나온다.
'아유, 그런 일 아니에요'라고 했는데 '그런 일'이었다거나, 내가 참석해서는 안 되는 자리인데 참석하게 되어 난처한 경우는 살다 보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겪는 일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상대를 속이면 어쩔 수 없이 상대를 곤경에 빠뜨릴 일이 생기기 마련. 아무리 좋게 생각해 봐야 이미 해를 입은 뒤에는 무슨 말이 곱게 오갈 리가 없다. 의도가 없었다면 그나마 한두 번은 넘어갈 텐데, 의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나를 골탕 먹인 듯한 느낌도 들어 '괘씸죄'까지 추가된다.
진짜 사태가 너무 커지면 문제를 감출 시간도 없어진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1시간에 원자폭탄 하나씩 터지는 꼴이라면 거짓이 다 무슨 소용인가
덮어서 일을 해결하다가 대폭발 해버린 사건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일이 뭐가 있을까. 뭐니 뭐니 해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으뜸일 것이다. 구소련 해체의 원흉이 된 이 대참사는 전력이 차단된 발전소 터빈의 원심력 만으로 원자로를 무리하게 운용해 보려다가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노심이 미쳐 날뛰게 만든 게 원인인데, 궁극적으로는 상명하복의 비밀주의 소련에 찌들 대로 찌들어버린 낡은 관료의 욕심이 불러일으킨 참극이었다.
그런데 어떤 멸망의 사태에서도 늘 구원자는 등장하듯이, 드라마 <체르노빌>(2019)을 보면 그런 최악의 사태에서도 일을 어떻게든 수습하는 인물이 한 명 등장한다. 사태 수습을 위한 총책임자로 임명된 보리스 슈체르비나 장관은, 원전 대폭발을 막기 위해 수문을 수동으로 잠글 3인의 지원자를 뽑을 때도 '연금이 얼마 지급된다'느니 어설프게 기술자들을 설득하던 레가소프를 밀어내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니 들어가라'고 직구를 던진다거나, 원전을 식힐 땅굴을 파는데 광부들을 불러놓고선 그들이 '일 끝나면 뭐라도 챙겨줍니까?'라고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슈체르비나의 상남자식 일처리에 함께 머리를 싸매던 레가소프 교수는 '어떻게 그런 말을'하는 표정으로 혹시나 사람들이 떠날까 봐 불안해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방사능 수프인 원전 지하로 들어갈 지원자 3인은 '자원'으로 구해졌고, '니들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차가운 시선을 던질지언정 광부 십장은 다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러 가버린다. 솔직한 태도에 경외와 냉소를 동시에 받기는 했으나 슈체르비나는 숨기지 않는 것에 대한 대가의 의미도 역시나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솔직함은 리더십의 결정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동양의 전통적인 정치철학에서 늘 강조되는 것이 세상을 혼자 다스릴 수 없으므로 늘 부족함을 깨닫고 인재를 귀히 여겨라는 것인데, 그런 의미로 고대 중국이나 조선에서는 늘 임금이 그 자신을 가리켜 '과인(寡人)'이라고 부르며 매일 신하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을 마련하곤 했다.
그런 점에서 삼국지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유비는 특히나 귀감이 될만한 일화를 많이 갖고 있는데, '삼고초려'라는 고사로 유명한 제갈량 등용의 일을 살펴보면 일단 새파란 젊은 논객에게 47세의 산전수전 다 겪은 제후 유비가 등용을 읍소한 것부터가 파격적인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유비는 끝내 소원이었던 천하통일은 이루지 못했지만, 제갈량을 얻은 뒤부터는 승승장구해서 도망만 다니던 신세에서 나름 파촉과 형주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지배도 해보고 황제로 무난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20살이나 어린 젊은 논객에게 고개 숙이기를 마다하지 않는 진정성도 중요했겠지만 자기 형편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조언을 구하는 솔직함도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하지만 솔직해진다는 게 늘 저자세로 나와야한다는 건 아니다. 비록 빈약한 기반과 어려움을 털어놓고 항상 제갈량과 같은 중신들에게 의견을 묻던 유비였으나, 그렇다고 유비가 제갈량에게 마냥 모든 걸 비굴하게 의존하지만은 않았다. 유비는 그 자신이 주장하는 '의'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아무리 제갈량이 이치에 맞게 주장한다고 해도 듣지 않았다. 조조의 대군이 쫓아오는데도 십만이나 되는 백성을 거느리고 도피하느라 어려움에 처한 유비를 보고서 제갈량은 한심한 군주라거나 사리분별이 어두운 아둔한 인간이라고 비난하기는커녕 더 감명을 받고 견마지로를 다하게 된다. 오히려 그런 점이 이미 그 능력으로 어디에서든 중용될 수 있었던 제갈량의 구미를 더 당기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 <관상>에서 얼굴만 보고 살인범을 찾아내던 김내경이 역적 집안 출신의 자기 아들이 끝내 성까지 바꾸고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하자 기뻐하기는커녕 "지금이야 말단이어서 괜찮지만 저렇게 사람들을 속이고 정승은커녕 아전도 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아무리 출중하고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남을 속이려 들고서 대업을 이룰 수는 없는 법이다. 솔직함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약점이 될 것도 같지만 21세기 최고의 마케팅 전문가로 꼽히는 세스 고딘도 그의 저서에서 언급했듯이 기업 또한 '정직성'을 배신해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솔직함은 약점이 아니라 무기다.
그걸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이제 어떤 신념을 가지고 어떻게 신념을 구체화하는데 쓸 건지에서 시작해야겠지만 솔직함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한, 그 사람은 언제든 대성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주어질 것이다. 그게 기업이든, 개인이든, 사람 일이든 인간관계든 뭐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