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운 Sep 22. 2023

예술심리치료사의 역할

미술치료 / Nudge

예술심리치료사로서의 역할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무의식 영역 안에 숨어있는 무언가를 좀 더 쉽게 표상할 수 있도록 예술 매체의 활용 방법을 돕고, 표상된 작품을 내담자 스스로 의식 영역 안에서 인지할 수 있도록 너지(nudge)하는 역할을 합니다. 좁아진 의식과 무의식 영역의 크기를 확장하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유연하게 만들어 사고의 유연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예술가를 이렇게 정의하곤 합니다.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환자’


하지만 모든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표상된 작품의 인지화’의 결여 혹은 부족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차원'이라고 누군가를 지칭할 때를 떠올려봐도 좋습니다. 자신 내면의 문제와 표상된 작품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은 반복됩니다. 미해결 과제가 수면 위로 반복적으로 떠올라서 우리를 괴롭히듯 창작활동은 계속되는 거죠. 작품을 쏟아내지 못하면 미칠 것 같아서 작품 활동을 이어 가지만 예술 행위와 창작 활동 자체만으로는 심리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얻어지는 마약 같은 카타르시스는 굉장히 휘발성이 강해 보입니다. 내가 쏟아낸 작품이 어디서 왔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의식 영역 안에서 메타 인지적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치유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구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의식의 세계인 문명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구인이기 때문에 이곳이 기준일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고 봅니다.


억압되어 무의식 영역에 갇혀 버린 아픔만을 예술 창작의 원천으로 삼는 예술가라면, 치유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겠군요. 무의식 세계로의 접근을 곧 잘하고, 표상하는 작업에 재주가 있는 예술가들이죠. 하지만 표상된 작품과 심리적 아픔 사이의 연결고리를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맺지 않는 예술가들입니다. 반면에 무의식 세계로 가는 통로에 유연함이 없는 예술가들은 일부러 이별을 경험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학대하기도 하며, 의식 밖의 영역에 손쉽게 접근하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하죠.


그와 반대로 무의식 영역에 갇혀서 의식 영역에서 소통 가능한 '표상'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를 힘겨워하는 예술가들도 있습니다. 창의적인 사고를 하지 못해서 겪는 창작의 고통과는 달리 의식 세계에 표현하는 방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무의식 영역 안에는 부정적 심리 요인들만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요소들도 함께 떠다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는 유연한 사고를 가진 예술가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창작활동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치료사들은 내담자가 내면세계를 잘 표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내담자 스스로 의식과 표상된 무의식의 연결고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치료사의 역할이고, 내담자는 스스로 치유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치료사 입장에선 이것이 치료적 예술 활동이고, 내담자에겐 치유 활동이 될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특강] 공황장애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