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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빠 Jun 05. 2020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Fortunate Son(1969)

캘리포니아 출신이면서도 남부스타일의 음악으로도 유명한 밴드인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ial.이하 CCR).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1950~1955년생이라면 접했을 밴드이기도 하다.


아니면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에서 등장하는 베트남전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Fortunate Son이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의 대표곡중 하나이다.

이들 CCR은 1959년 캘리포니아 주 엘 세리토의 포톨라 고교에 재학중이었던 존 포거티(John Fogerty. 1945~), 더그 클리포드(Doug Clifford.1945~), 스투 쿡(Stu Cook. 1945~)이 1959년 블루벨벳Blue Velvet 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조직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후 존 포거티의 형인 톰 포거티(Tom Forgerty. 1941~1990)이 합류하게 되어 현재의 라인업이 구축된다.

1964년 판타지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이름을 Golliwog로 변경하게 된다. 그러다가 존 포거티와 더그 클리포드가 군에 입대하고 이들이 군복무중이던 1967년 판타지 레코드를 인수한 사울 자엔츠(Saul Zaentz)의 제안으로 이름을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로 변경하게 된다.

왜 하필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이라는 긴 이름이냐면 톰 퍼거티의 친구이름인 크리던스 뉴벌(Credence Newball)에서 크리던스를, 클리어워터는 올림피아 브루잉 컴처니의 TV광고, 4명 멤버들이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리바이벌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중에 스투 쿡의 말에 의하면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이나 버펄로 스프링필드(Buffalo Springfield)보다 더 이상하게 지으려고 했다 한다.

이들은 1968년경부터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고 19969~1970년이 이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정점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CCR의 곡들이 이 시기에 등장했다.


1969년 발표곡인 Proud Mary, Bad Moon Rising, Green River는 1969년 빌보드 Hot 100 차트 2위, Down on the Corner, Fortunate Son은 3위에 이르게 된다. 1970년 발표한 Travelin'Band(2위), Who'll Stop the Rain(2위), Up Around the Bend(4위), Run Through the Jungle(4위), Lookin' Out My Back Door(2위), Long As I Can See the Light(2위)를 기록하며, 1971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또 다른 유명한 곡인 Have You Ever Seen the Rain?은 8위에 머무르게 된다.

실제로 이들의 곡들 중에는 유명한 노래들이 많다. Have You Ever Seen the Rain, Bad Moon Rising, Proud Mary가 대표적이다.


왜냐면 미국은 1973년 징병제를 폐지하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등 고위층들의 자녀는 군대에 가지 않거나 베트남으로 가지 않는 보직을 받았고 이게 사회문제가 되던 때였다.

리처드 닉슨은 1952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의 부동령이었다.

특히나 Fortunate Son은 존 포거티가 2015년에 밝힌바에 의하면 1968년의 어느날 닉슨 대통령의 딸인 줄리 닉슨과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손자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의 결혼을 보며 이 곡을 썼다.


The thoughts behind this song - it was a lot of anger. So it was the Vietnam War going on... Now I was drafted and they're making me fight, and no one has actually defined why. So this was all boiling inside of me and I sat down on the edge of my bed and out came "It ain't me, it ain't me, I ain't no senator's son!" You know, it took about 20 minutes to write the song.

이 노래 뒤에 있는 생각들은-분노였다. 월남전은 진행중이었고 나는 군대에 징집됐고 군은 나로 하여금 싸우게 했다. 그리고 아무도 왜 그래야 하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내 안을 끓어오르게 했고 침대 구석에 앉아서 "나는 국회의원의 아들이 아니야."라고 했다. 알다시피 그 노래를 쓰는데 고작 20분 걸렸거든요.

"Fortunate Son" wasn't really inspired by any one event. Julie Nixon was dating David Eisenhower. You'd hear about the son of this senator or that congressman who was given a deferment from the military or a choice position in the military. They seemed privileged and whether they liked it or not, these people were symbolic in the sense that they weren't being touched by what their parents were doing. They weren't being affected like the rest of us.

Fortunate Son은 어느 하나의 이벤트에서 영감을 얻은게 아니죠. 줄리 닉슨이 데이비드 아이젠하워와 연애를 했고요. 아마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의 아들이 군으로 가거나 군대내 보직을 선택한다는 말을 들어봤겠죠. 그들은 특권을 가진듯 해보이죠. 그들이 좋아하거나 말거나 그러한 사람들은 그들의 부모가 무엇을 하는지에 영향을받죠. 그들은 우리같은 사람들처럼 영향을 받지 않거든요.


이런 현실을 보고 분노하여 겨우 20분만에 노래를 쓴 것이다. 존 포거티는 1966년부터 1968년까지 군 복무를 했고 그래서 더욱 분노를 느꼈을 수 있다. '불공정함'때문이다. 평범하게 공부해서 대학에 간 서민의 자식들이 조국과 같은 권력층의 대입비리를 보고 분노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이 Fortunate Son은 반전 노래로 꼽히며 1969년. 그러니까 베트남전이 가장 치열해지던 시기 상당한 인기를 끈 곡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CCR의 노래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 바로 이 곡이다.


1968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기존의 권위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는 가운데 반전노래이면서도 동시에 기득권층의 불공정함을 제대로 대놓고 까버렸기 때문이다.

만일 2020년 대한민국에서 어느 뮤지션이 대입 아빠찬스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면 미국에서처럼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을까?

우리도 비슷한 현실이다. 현재 177석 여당 국회의원중 군복무를 마친자가 얼마나 될까? 병역비리가 2020년에도 너무 심하다.


양극화된 한국사회에서 특정 세력으로 몰려 마녀사냥을 당하지는 않을까 생각한다면 1968년의 미국인들이 누리는 자유가 더 큰것 같고 이런 비판을(가사에 대놓고 I ain't no senator's son이라고 나온다. 우리식으로는 나는 국회의원 아들이 아니라서 끌려간다니까)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1971년부터 CCR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가장 먼저 톰 포거티가 탈퇴를 하고 새 멤버를 영입하기 보다는 세명 멤버. 즉 트리오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이때가 71년 2월경이었다.


71년 봄. 존 포거티는 나머지 멤버들에게 아주 '민주적인'배분을 하자고 한다. 각자의 멤버가 쓰고 연주한 부분에 대해서 수익 배분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제안은 결렬되자 존 포거티는 받아들이던가 아니면 내가 그만두겠다고 최후통첩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명맥을 이어나가 72년 봄 마지막 앨범인 Mardi Gras를 발매한다. 이때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세 멤버 모두 작곡하게 되었고 각각의 멤버들이 자기가 쓴 부분에 대해서만 노래를 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대실패였고 누가 들어도 전혀 CCR같지 않았다.


롤링스톤誌의 음악 비평가인 존 랜도우(Jon Landau. 1947~)는 "내가 들어본 메이저 록 밴드의 앨범 중 최악the worst album I have ever heard from a major rock band."라고 평했을 정도였다.

1973년 이후 멤버들은 모두 흩어졌다. 그래도 재결합은 여러차례 있어왔는데 1980년 10월 19일. 톰 포거티의 결혼식날에 모두 모였고, 1983년 존 포거티, 스투 쿡, 더그 클리포드가 졸업한 엘 세리토 고교의 졸업 20주년 에 모이나 CCR이 아니라 블루 벨벳으로서 모였던 것이다.


1993년에는 CCR이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만 존 포거티는 쿡과 클리포드와 공연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시간이 흘러 가장 최근인 2017년 9월. 클리포드는 쿡과 그 자신이 존과 재결합하는 것을 배제하는 사안이라고 밝혔고 20년전, 25년전이라면 그리 하겠지만 이젠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정말 대단한 뮤지션들이 갈라서서는 이제 50여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에도 다시 재결합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상당히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만큼 CCR은 위대했고 너무 짧은 황금기를 가진 안타까움이 남는 밴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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