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위대함에 탄복할 때가 있다. 아름다운 시어를 만났을 때나 무심코 쓰는 우리말에서 다채롭고 무한한 생명력을 느낄 때 그렇다.
우리말에는 인간의 삶이 그대로 배여있다.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인간 생활의 세가지 요소는 '의식주'다. 입는 옷과 먹는 음식 그리고 사는 집이다. 그런데 우리말은 이 '입고 먹고 사는 일련의 활동들을 하나로 묶는다. '짓는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우리는 옷을 지어서 입고, 밥을 지어서 먹으며. 집을 짓고 산다. 언어학자가 아니라서 다른 문화권에도 이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거의 유일무일하고 탁월한 언어가 아닐까싶다.
곤궁한 시절을 보내야 했던 우리 조상들은 '먹는 것'에 대한 애착를 가지고 중요하게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오죽하면 인사가 "식사는 하셨습니까?"일까. 그래서인지 의식주 중에서도 '식'에 관련된 말들이 유난히 다양하고 특화된 것 같다. 우리는 쌀을 '팔아서' 밥을 '앉힌다.' 그렇게 밥을 '짓는' 동안 '담근' 김치와 '무친' 각종 나물과 함께 내어 놓는다. 특별한 날에는 전을 '부치기도'하고, 가끔은 밀가루를 '치대서' 수제비를 끓여서 먹기도 한다. '앉힌다.'는 말은 모양이든 행위든 '먹을거리'를 의인화하기에 이르른 것은 아닐까 싶다. 곡식만 사는 행위를 '판다'라고 한다. '쌀 팔러 장에 간다'고 하는데 실은 쌀을 사오겠다는 말이다. 먹거리는 특별하게 취급한 것이 분명하다.
아무래도 '짓는다'는 완성한다는 의미에 방점이 있다. 쌀로 밥을 지어서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그렇고 옷도 집도 '짓는다'는 완성된 형태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집이나 건물을 짓는 일을 건축(建築)이라고 하는데 일본식 한자 조어다. '세울' 건(建)에 쌓을 축(築)이다. 세우고 쌓는다고하니 아무래도 착 감기는 맛이 덜하다. '집짓기'가 더 그럴싸하고 담박하다.
그런데 '짓는다'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하나 더 있다. 글을 '짓는다'. 글씨는 쓰는 것이고 글은 짓는 것이다. 그래서 '글짓기'다. 태어나면 이름부터 '짓는다.' 그리고 시와 소설을 짓는다. 왜 우리 조상들은 사람사는 중요한 세가지 요소인 의식주와 함께 글을 '짓는다'와 같은 반열에 올려놨을까. 아마도 사람이라면 '집을 짓고,옷을 지어 입고 밥을 지어 먹으면서 반드시 글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