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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Sep 16. 2021

야하디 야한가

"여보세요" 간혹 모르는 번호가 찍힌 전화가 오면 잠깐 간격을 두고 받는다.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서다. 갱신된 카드를 배송하러 온 전화다. 생면부지의 사람이나 회사에 전화를 걸 때도 이 루틴은 계속된다.

나는 갤럭시 노트를 쓴다. 메모가 주된 이유다. 그런데 예전 자가용 운전을 하고 다닐 때는 불편했다. 차선책으로 음성보이스 앱을 깔았다. 곧 안쓰게 됐다. 나중에 틀어본 내 목소리가 싫어서다. 특별히 안좋아서라기보다 생경하고 남의 목소리 같기만 했다.
내가 닮고 싶은 중후하고 굵직한 목소리들이 있다. 발성법이 있다는데 학원을 다녀볼까 잠깐 고민했던 적도 있다.

이성이 만났을 때 서로 호감을 느끼는 목소리가 따로 있다.
한때 해품달이란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김수현이란 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팬덤이 일었는데 상당부분은 중저음에 약간의 쉰소리가 칵테일된 목소리 때문이었다.
김수연의 목소리 주파수는 초당 130헤르츠로 저음의 남자 목소리인 100헤르츠보다 조금 높은 특성을 가진다고 했다. 인간의 귀는 16헤르츠에서 2만헤르츠의 주파수 즉 10옥타브를 들을 수 있다. 국카스텐의 하현우나 '좋은 날'의 아이유는 더 연습이 필요하다. 인간의 목소리는 남자의 경우 100헤르츠, 여자는 150헤르츠 내외의 주파수를 가진다,

아무래도 목소리에 이끌리는 건 남성보다 여성이 더한 것 같다. 남성은 아무래도 여성의 외모에 더 후한 점수를 준다. 그래서 이성에 호감을 느끼는데 여성은 귀, 남성은 눈에 더 의존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름다움이란 어떤 소개장보다 나은 추천서다."라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눈은 인체의 감각수용기의 70%가 모여있어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인간은 주로 세계를 봄으로써 그것을 평가하고 이해한다. 김수현이 아무리 매혹적인 목소리를 가졌더라도 옥동자의 외모를 지녔다면 그만큼 인기를 끌 수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동물 실험에서도 수컷 붉은 사슴이 구애할 때 내는 소리를 들여주자 암껏 붉은 사슴이 발정을 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랑을 갈구해서 연인의 창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것은 언제나 로미오들이었지 줄리엣이 그랬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현' '철' '훈' 주로 외자 이름을 가졌던 옛 다방의 DJ들도 짐짓 중저음을 내느라 느릿하게 사연을 읽어줬다.
야심한 밤 성시경의 "여러분 잘 자요"란 감미로운 멘트에 되려 심장이 쿵쾅거려 밤잠을 설친 처자가 한둘이었겠는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웨하스처럼 부드러운 동굴 속 목소리의 하수영이 안불렀던들 그렇게 여심을 뒤흔들어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톱가수지만 귀염상의 김건모가 쉰을 넘겨 늦장가를 들거나 근육질의 김종국이 여지껏 장가를 못가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의 목소리에 이끌린다면 남성은 여성의 외모에 더 비중을 둔다.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늘씬한 팔 다리를 경쾌하게 흔들며 걷는 젊은 여성의 뒤태는 아름답다. 용기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는 경구만 믿고 쫓아가 돌려 세운 순간 전혀 뜻밖의 얼굴이 돌아본다면 남성의 십중팔구는 데이트 신청을 포기한다.
물론 남성도 여성의 미성에 마음을 먼저 빼앗기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여성은 남성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울 때가 많다. 그래서 남성의 속성을 본능적으로 먼저 간파하는 건 대개 여성이다.
TV보다 라디오가 각광을 받던 시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여성 성우가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반해 끈질기게 연모의 마음을 담은 엽서를 보내고 한번만 만나달라고 간청한 모양이다.
"제 목소리만 듣다가 직접 만나시게되면 실망하실거예요" 끝내 구애를 거절하고 만인의 연인으로 전성기를 보냈던 그녀는 이제 원로가 됐다.

중고등학교 시절 부모가 비운 친구집에 몰려가 야한 비디오를 볼때 혹시나 소리가 새어나갈까봐 볼륨을 꺼놔도 우리를 팽팽하게 긴장시키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여성들은 오가는 대사 한마디 없는 사랑의 행각에는 남성들보다 감흥이 덜할 것 같다. 아무리 그윽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라도 달콤한 사랑의 멘트도 없이 스킨쉽을 시도했다가는 상대 여성에게 귀싸대기 맞기 십상이다.

사람은 진국이고 성실하기 이를데 없는데 못생긴 노총각이 있었다. 장가를 들어야겠는데 만나는 여성마다 퇴짜를 놓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이번에도 퇴짜를 맞으면 혼자 살리라 다짐하고 맞선자리에 나갔다. 그런데 눈 앞에 있는 여성은 이제껏 만나 본 그 어느 여성보다도 아름답고 지적이었다. 언감생심 넘겨다 볼 수 없겠다 싶어 자포자기를 하고보니 차라리 긴장도 안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껏 살아온 얘기며 그간 선을 본 얘기를 다 털어놓았다. 그런데 마주앉은 여성은 진지하게 끝까지 얘기를 들어주고 가끔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 두 사람은 무사히 결혼에 이르렀다. 내가 읽었던 이 야기에서 노총각의 생김새에 대한 표현은 세밀했지만 아쉽게도 목소리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분명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빼어난 용모만큼이나 내면까지 읽어내는 예민한 귀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남성이 여성의 긴 생머리를 좋아하는데는 본능이 한몫한다. 머리카락은 기본적으로 머리 부위에 난 털이다. 그 중에서도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머리카락은 생명력의 상징이다.
옛날 남성 지도자들도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다녔다. 삼손은 머리카락이 잘리면서 몰락했다. 일부 보수 유대교 여성들은 결혼할 때 머리카락을 잘라야만 했다. 남편이 생식보다는 욕정에만 휩싸여 성관계에 몰입하지 못하게 위해서였다.
남성의 머리카락은 힘과 남성성을, 여성의 머리카락은 생명력과 에로티시즘을 상징한다.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과 조선시대의 장옷은 얼굴보다는 머리카락을 감추는데 더 긴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중세 기사들 중 일부는 내연관계인 귀부인의 거웃을 몸에 지니고 출장했던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털은 피부조직의 일부분이면서 포유류에게만 있다. 털이 난 부위의 피부는 더 얇고 예민하다. 우리가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공포를 느낄 때 모골이 송연하다거나 털이 곤두선다는 말은 과장이 아닌 실제 일어나는 신체반응이다.
피부로 느끼는 이러한 감각은 촉각이다. 촉각은 우리 신체 부위 중 가장 넓게 퍼져있으며 최초로 점화하고 마지막에 소멸하는 감각이다. 태아에게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이기도 하다.
스킨쉽이 태아의 성장과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듯 성인에게도 독특한 기능과 성질을 가진다.
여성의 고막은 노크하는 중저음의 남성 목소리, 남성의 동공을 키우는 여성의 미모. 이 모두가 결합해서 최종의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 촉각의 발현 즉 신체의 접촉인 것이다.

어느 학자는 " 신체 접촉은 언어나 감정적 접촉에 비해 10배는 더 강하다. 촉각만큼 강한 감각은 없다"라고 했다. 촉각이 이토록 중요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생성과 생존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연애하면서  최초의 신체 접촉은 손을 잡는 것이다. 칸트는 "손은 눈에 보이는 뇌"라고 했다. 손바닥에는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반응하는 '마니스너소체'라는 신경이 몰려있다. 이 신경은 주로 성감대라고 불리는 털이 없는 신체 부위 즉 발바닥, 손가락 끝, 클리토리스, 음경, 젖꼭지, 손바닥, 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있다.
손을 잡은 이후의 일반적인 연애코스는 키스다. 손가락 끝, 손바닥을 거쳐 민감한 혀로 서로를 탐닉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때 남성 손의 향방에 따라 바람둥이가 되기도 하고 음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키스는 섹스의 전주곡이라기 보다 깊은 친밀감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감정과 정열을 더욱 고조시킬 뿐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 아름다운 고문이기도 하다.
첫 키스가 몸과 마음을 아찔한 감각으로 채우고 달뜨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키스는 우리를 욕망의 사원으로 안내하는 촉각의 순례여행이다.
키스하는 순간 연인은 서로의 눈을 쳐다본다. 인간의 동공은 자극받거나 흥분했을때 본능적으로 확대된다. 동공이 열렸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남성은 다음 타켓인 여성의 입술로 시선을 내리는데 입술은 흥분했을 때 붉어지고 부풀러 올라 음순을 연상시킨다. 여성의 화장에 있어 민낯으로도 립스틱을 발라 붉게 보이려는 이유다. 가끔 TV에서 강렬한 인상의 여성 랩퍼 입술에 바른 까만 립스틱은 아무리봐도 기묘하다.
이렇듯 신체의 접촉 즉 촉각은 여러 다른 감각과 결합하면서 우리를 욕망의 완성으로 이끌고 인류의 생존을 도모한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지나온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일 때 같이 만화책을 읽다가 우연히 갈씬거리기만 했던 여자동창생 팔뚝의 솜털을 잊지 못한다.
이전까지 아무런 이성적 감정이 없었음에도 몸살이라도 걸린 듯 발한과 오한이 오고 심장은 저 혼자 내달렸으며 손에 땀이 차서 침을 바르지 않아도 책장이 잘 넘겨졌었다.
아무래도 더 많은 연구와 공부가 필요한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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