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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Nov 30. 2021

추추커플을 못본건희

“저는 좋은 사람이에요. 저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니까 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이보다 당당하고 아름다운 사랑고백이 또 있을까. 얼마전 막을 내린 ‘슬기로운 의사생활 2’에서 커플간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이 장면을 꼽을 것 같다.
만약 양석형(김대명)에게 끊임없는 구애를 했던 추민하(안은진)의 모습이 낯설거나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자존심과 자존감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상대로 인해 쉬이 무너지지 않거니와 상처를 받더라도 회복력이 빠르다. 그래서 끝없이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자존감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자존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추민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그래서 부끄러워하기보다 당당하고 감정을 넘어서는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사랑을 조심스럽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양석형 역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자존감이 높을 수록 상대에게 더 관대하고 정직하며 적절한 의사소통과 배려심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판단과 감정에 솔직하고 가치있다고 여기므로 명확성을 두려워하기보다 반기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미소짓게 한 추추커플의 해피앤딩이 당연한 이유다.

자존감의 두 요소는 ‘자기 효능감’과 ‘자기 존중’이다.
자기 효능감은 능력, 자기 존중은 가치를 의미한다. 여기서 능력은 ‘잘났다’가 아니라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고, 가치는 자기 자신과 삶을 대하는 긍정적 태도와 행복감에서 기인한다.
자존감은 삶에 기여하고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것이다. 또한 자존감은 원인이자 결과다. 행동으로 이끄는 동기이자 그 행동으로 확신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행동의 근본 동기가 자존감이 아닌 두려움에서 비롯됐다면 결국에는 반드시 재앙을 맞이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물론 자존감이 낮더라도 일시적인 출세와 성공을 경험할 수는 있다.

“성공에 대한 열망과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은 사람은 차츰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의 내면에서는 빈곤한 자기 개념이라는 시한폭탄이 조용히 재깍거린다. 그러다 실제로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낱낱히 보여주고 싶은 욕심 때문에 윤리적 또는 법적 절차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심각한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자신이 ‘선악의 범주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자신을 패배시키려는 운명에 도전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불명예와 파산으로 인생과 경력이 무너지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쉼없이 자신의 시나리오의 마지막 장을 향해 달려왔는지가 드러난다.
어쩌면 그는 이미 세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인생 시나리오를 써 왔는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에 들어맞는 유명인의 사례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존감의 여섯 기둥 / 너새니얼 브랜든>”
나는 그 ‘유명인’의 사례에 가장 적확한 한 인물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또한 우리는 추추커플에서 보았듯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자존감을 지닌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느끼고 호감을 갖는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에게 이끌리듯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마찬가지로 자존감이 낮은 상대를 찾는다는 것이다. 자존감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상대에게 끌리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간혹 세속적인 성공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의 존재가 부적절하다거나 거짓으로 포장됐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과 자기 불신을 지닌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은 '가짜 자존감'을 키워나가기도 한다.
이 '가짜 자존감'은 진정한 자기 효능감과 자기 존중과는 무관한 가치를 토대로 삼는다. 예를 들면 비싼 집과 자동차, 학벌이나 지위등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설사 이러한 효과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수단으로 자존감을 추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고 선망의 눈길을 받는다고 해서 자존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학력이나 재산,결혼,성적매력, 성형수술 역시 자존감을 키울 수 없다. 물론 이런 것들 때문에 일시적으로 자기 자신을 더 좋게 느끼거나 안도감을 만끽할 수 있지만 안도감이 곧 자존감이 아니다.
자존감은 내적 성향이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이 아닌 엉뚱한 곳, 껍질에 불과한 것에서 자존감을 찾다가는 실패로 끝나기 마련인데 이것은 종종 삶에서 비극과 연결된다.  

더구나 자존감이 바닥인 남성과 가짜 자존감으로 채워진 여성의 결합이 어떠한 파국을 맞이하게 될지는 너무나 분명한 것이다.
스스로는 자신을 형편없다고 여기는 두 사람의 만남은 최악이다. 함께 손잡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런 류의 만남은 생산적이지도 않거니와 때로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는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이러한 커플을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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