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이런 게 너무 싫어"(Oh god I hate this) "이런 빌어먹을 것을 못 참겠어. 허구헌날 말이지"(I can't bear this bloody thing... every stinking time)
일흔을 넘기고서야 왕위에 오른 찰스 3세의 짜증이 세계 뉴스거리다. 나는 그 장면에 배시시 웃음이 샌다. 국민의 존경 속에 영면한 여왕이 무릎을 칠 일이다.
만인지상(萬人之上), 온갖 예법을 익히고서야 알현할 수 있다는 왕조차 한낱 까탈스런 늙은이로 전락시키는 펜(pen)이라니...
펜은 실로 위대하고 강하다. 세익스피어를 배출한 나라라서 그런가 보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검사의 서슬에 설설 기는 기자가 아니던가.
칼로 사람도 죽이는데 펜으로는 생채기 내기도 어렵다.
게다가 한국의 검사는 펜으로도 사람을 죽일만큼 유능하고 힘이 세다. 다 죽어가는 사람 형집행정지에 싸인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요상하다. 한국 검사는 베는 칼로 쑤시기만 한다. 칼로 애먼 성남 땅 삽질만 해대고, 정작 썩은 내 풀풀나는 옛 선배부부의 허물은 봉합하려드니 실밥만 자꾸 터진다.
이참에 한국 기자도 노트북을 버리고 펜을 들어야 할텐데 그럴 기미가 안보인다. 예리한 펜으로 찌르기라도 해야 할텐데 뭉툭한 손끝으로 자판만 두드려서인지 허구헌날 '롱 리브 더 킹(long live the king)' '롱 리브 더 퀸(long live the queen)'이다.
다행히 기자보다 펜을 잘 쓰는 검사들을 알고있다. 한결같이 여검사들이다.
모두가 책을 내기도 했는데 그들이 휘두르는 펜은 칼보다 예리하고 바늘보다 깊숙히 찌른다. 때로는 그들의 기백과 배포에 슬그머니 쪼그라 들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밤에는 다소곳이 바늘을 들었다. 바지를 벗다보니 양 뒷주머니에 단추가 떨어져서 없다. 반짇고리함을 아무리 뒤져도 한개가 부족하다. 아니 비슷한 게 있긴한데 구멍이 맞창나서 쓸모가 없다.
순간 우영우의 고래가 바람을 몰고 머리 위로 지나간다.
쬐끄만 단추 하나를 덧대어 꿰맸다. 스스로 대견하고 혼자 흐뭇하다.
"이것 봐. 잘했지?" 속없는 자랑질에 한 이불 덮는 여인이 '참 잘했어요' 눈도장을 찍어준다. 우연히도 그 여검사들 중 한명과 동명이인이다.
새는 잉크에 짜증내는 성마른 영국 노친네도, 삽질에 여념이 없는 한국 검사도, 자판에 길이 든 한국 기자도 펜과 칼 대신 바늘을 들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