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좋은 거라고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는 리더가 겉보기엔 인기가 많을 수 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좋은 이야기만 들으면 일단 기분이 좋다. 그러나 리더가 좋은 이야기만 할 수는 없다. 개선 포인트가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쓴소리를 있는 그대로 하면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기분 좋을 리가 없다. 그래서 쓴소리도 나이스 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 직장에서 부서를 맡고 있을 때 이야기다. 부서원 중 한 명이 실력도 좋고 자료도 잘 만드는 데다 보고도 잘했다. 차세대 리더의 향기가 났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소통 능력이 부족한 것이었다. 혼자는 잘하는데 팀으로 일할 때 자꾸만 불협화음이 들렸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틀렸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그와 일하려고 하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너무 안타까웠다. 그 친구의 역량을 두배, 세배 그 이상으로 활용하고 싶어서 사람을 붙여주는데, 결과는 정 반대로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불러서 한 마디 굵직하게 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소통하지 않으면 조직에서 성장할 수 없다고 말이다. 물론 최대한 기분 상하지 않게 얘기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반응이 놀라웠다. 내 딴에는 쓴소리를 해야 해서 미안했는데 정작 그 친구는 너무 고마워하는 것이었다. 아무도 자신한테 그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거쳐온 멘토들이 모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넘어갔었던 게 아닐까. 잘 알겠다며 노력해 보겠다고 하고는 어색할 수 있었던 자리를 잘 마무리했다.
돌이켜보면 칭찬해주던 상사들보다 쓴소리를 해주던 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가장 쓴소리를 많이 해주시던 분은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었다. 덕분에 오늘까지 해당 분야에서 밥벌이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쓴소리 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으니 나에겐 은인이시다. 만약 그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넘어가셨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깊이 있는 연구자가 되지는 못했을 듯하다.
그 외에도 사회 초년병 시절 험지에 눈뜨게 해 주셨던 과장님, 수석 연구원 시절 모질게 성장시켜주신 연구소장님 그리고 임원 시절 정글 생존법을 알려주시던 사장님 등. 나에겐 많은 쓴소리 리더분들이 있었다.
누가 뭐래도 쓴소리 리더십의 원조는 우리들 부모님이 아닐까? 내 자식이 잘되라고 얘기하는 데 쓴소리가 어디 있고 단 소리가 어디 있을까? 그냥 내 자식이 잘 되라고 하는 얘기인 것이다. 어릴 때 바른 길로 이끌어주시던 부모님의 쓴소리는 길 잃은 밤배 앞에 보이는 등대와도 같은 것이었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도 부서원들을 내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쓴소리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