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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Jun 10. 2021

소소한 기적 이야기

기적이란 정말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나는 왜 그런 체험을 하지 못하는가? 만약 내가 기적의 주인공이 된다면 이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일까? 기적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뒤통수가 뜨거워진다. 


'기적을 논하기 앞서서 기적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지!' 


기적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앞의 모든 질문들의 답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기적이란 우선 물리적인 자연법칙을 거슬러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다. 예를 들어, 이 땅의 모든 물체는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가 물 위를 걷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적이다. 중력을 상쇄하고 물에 떠 있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힘, 부력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힘을 받을 만한 장비, 예를 들어, 고무튜브나 배 등의 기구 없이 오직 두 발로 바다 같은 호수 위를 걷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으니 기적이다. 


또,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부패가 시작된 시신을 살리는 일도 기적이다. 자연 상태에서 죽은 지 나흘이 지난 사람을 다시 살리는 일은 좀비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기적이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거나, 기대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일생일대의 역설과도 같다. 


이런 기적이야기에 내가 다시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기적이 사라져 버린 현실, 그 현실 속에 각박한 인생들의 헛헛한 이야기만 가득하다. 위로와 희망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언제나 값싼 위로와 헛된 희망 속에 제자리걸음질 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잠을 자는 것이 기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에 이 말을 들을 때는 겉으로 인정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뭐 그딴 게 다 기적일까' 싶었다. 하지만,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환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아침에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저녁에 또 스르르 잠이 드는 것이 그분에게는 기적처럼 느껴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또, 말기 암 환자에게 기적의 의미를 물었더니, 내일 하루만 더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딸아이의 졸업식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그 환자는 당일 저녁에 돌아가셨다. 물론 그분에게 병이 처음 생겼을 때 기적을 물었다면, 아마도 완쾌를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기적이란 좁은 의미에서 초자연적이고 초현실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도 기적이야기가 될 수 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니 두 종류의 기적이 야기를 모두 경험한다. 짧지만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일상 속의 기적을 '소소한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가 병원에서 체험한 이 '작은 기적' 이야기가 권태로운 일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정 없고 메마른 삶에 생수가 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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