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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정 Jul 30. 2022

간판에 속지 말자

‘전공 바꿔 쓰기' 실험

국문과를 전공한 신입사원은 거의 10년 만에 처음 보는 것 같네.

금융사에 입사해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던 어느 날, 인사팀 선배가 지나가며 말씀하셨다.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그러했다. 금융사라 그런지 문과는 상경계나 통계학과, 이과는 수학, 공학 관련 전공자가 대부분이었다. 6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국문과를 전공한 선배는 딱 1명 봤다. 무려 17년 전에 입사하신 상무님.


2015년 지망했던 언론사에서 모두 낙방한 후 뒤늦게 사기업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고 쓰고 내몰렸다고 읽는다). 그때 쓴 자기소개서를 모아둔 폴더를 열어보니 총 54개의 파일이 있다. 단 한 곳에서도 1차 서류를 통과하지 못했다. 일명 ‘광탈'이라고 불리는 광속으로 탈락한 사람이 바로 나다. 지금은 공개채용 방식이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 회사들은 상하반기로 나눠 신입사원을 대거 채용했다. 그런데 그 해부터 스멀스멀 ‘직무 중심의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5분 PR, 바이킹 챌린지, 스펙 태클 오디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는데, 핵심은 ‘서류-인적성-면접'으로 획일화된 공개 채용 방식에서 탈피해서 직무 중심의 다양한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자기소개서 대신 회사가 직접 사업과 연관된 주제를 주고 기획안을 제출하는 것이 1차 전형이었다. 예를 들면, IT 회사는 코딩 문제를 주고, 호텔은 셰프를 뽑기 위해 요리 경연대회를 여는 식이다. 대기업의 여러 계열사가 제시한 주제 중에  ‘브랜드 평판 제고를 위한 PR전략을 제시하시오'가 눈에 들어왔다. 전년도에 정보유출 사고로 홍역을 치른 금융사가 제시한 주제였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며 신문사, 방송국에서 일해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했다. 마치 기자가 사건을 취재를 하듯이, 협업을 제안할 방송 프로그램과 PD와 일간지 기획 기사의 기자에게 직접 연락해서 확인된 내용을 바탕으로 예상 비용과 기대효과를 숫자로 기재했다. ‘0명을 채용’이라는 공고를 보면서 과연 이게 될까 싶었는데, 취업을 준비한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1차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2차 면접은 기획안을 설명하는 ‘역량면접'과 개인 ‘인성면접' 두 가지로 진행되었다. 나름 2년 차 프리랜스 아나운서 경력이 도움이 되었던 걸까. 기획안 발표를 마치자 면접관으로부터 ‘인턴이 아니라 대리로 들어와야 할 것 같은데요.’ ‘뽑아놓으면 더 좋은 데 갈 것 같아요'라는 뜻밖의 평가를 받았다. 일희일비가 특기인 나는 매우 우쭐한 상태로 이어진 ‘인성면접'에 들어갔다. 블라인드 전형이라 나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학교, 학점, 전공은 물론 앞서 진행한 역량면접에 대한 정보도 당연히 없음) 상태로 20대 여성을 어려워하는 중장년의 남성 두 분과 매우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대화 나누고 면접장을 나왔다. 일희일비가 특기인 나는 면접장을 나온 뒤 바로 절망했다. 망했구나를 직감했다. 다행히 역량면접 1등과 인성면접 꼴등의 성적이 상쇄되어 합격 통보를 받았고, 입사 후 한동안 선배들로부터 ‘인성에 문제 있는 거 아니냐'는 놀림을 받았다. 마침내, 두 달의 인턴을 마치고 무사히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정식 입사는 남은 하반기 3개월이 지난 뒤 이듬해 1월이었다.


숨 막혔던 취업 과정이 일단락되자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공채에서 번번이 광탈을 했던 이유가 혹시 기업이 선호하지 않는 ‘인문학 전공'때문이 아닐까. 이상한 실험정신이 일었다. 상반기에 지원했다가 1차에서 탈락했던 은행의 하반기 공개채용에 다시 지원했다. 이미 써놓은 자기소개서도 있으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주전공인 국어국문학과 복수전공인 경영학을 바꾸어 썼다. 서류상 경영학을 전공하고 국문학을 복수 전공한 나는 순조롭게 서류, 필기 전형을 통과했다. 이어진 면접에서는 공정한 블라인드 채용을 위해 ‘A-301번’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면접에 들어가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면접관 한 분이 말씀하셨다.


“여러분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합니다. 다들 자기소개 준비해오셨을 테니까 물어볼 텐데, 제발 외워온 거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열심히 외워왔는데 틀리고, 생각 안 나서 속상해하는 모습 보는 게 우리도 안타까워서 그래요. 우리 진짜 편하게 대화를 하자고요. 그럼, 누가 먼저 하실래요?”


면접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에서 손을 들었다.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모두 적극적이었고, (외워온=준비해온) 자기소개를 잘했다. 모두들 청산유수였다.


A(푸근한 인상의 남자 지원자): 저는 대학교 때 별명이 ‘왕언니'였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여자 동기들이 모두 저에게 연애상담을…

B(호리호리한 체격의 여자 지원자): 저는 대학교 때 학내 여자 축구부 주장이었습니다. 주말마다 새벽 6시부터 훈련을 하며 다진 체력이…

C(스마트한 인상의 남자 지원자): 저는 대학교 때 금융 앱을 스타트 업했던,, 아니 스타트업으로 금융 앱을 스타트업 했던,, 스타트업 경험이 있습니다.(아마도 ‘스타트업'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너무 긴장해서 말 꼬임)

(지원자들이 자기소개하는 동안 면접관들은 서류 넘겨보느라 바쁨)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날 만큼 모두 인상적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본인의 강점을 잘 알고 있었고,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도 강점으로 만드는 전략도 훌륭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모두 준비해온 답변이었다. 나도 준비해 간 자기소개가 있었지만, ‘제발 외워서 하지 마세요'라고 했던 면접관의 말을 떠올리며 마지막 순서에 입을 뗐다.


“방금 면접을 대기하는 중에 안내해주시는 분이 ‘오늘이 3일 차 면접인데 흰색 정장을 입고 온 지원자는 처음 본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자기소개서 제일 마지막에 ‘이번에 입행하는 100명의 행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은 아니더라도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썼는데요. 오늘 면접이 끝나고 난 뒤 면접관님들이 집에 돌어가셔서 ‘오늘 흰색 정장을 입고 온 여자 지원자!’라고 하면 다들 저를 떠올리게 되실 겁니다. 이로써 저는 제가 스스로 했던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신뢰는 이렇게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민망하니 이하 생략)


그러자 서류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5명의 면접관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자기소개가 끝나자 나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왜 흰 재킷을 선택했어요?” “오늘 이 말 하려고 일부로 흰 재킷 입고 온 거 아녜요?” 그리고 바로 나의 이력서 내용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지원자 5명이 들어간 면접에서 거의 절반의 시간을 내가 썼다. 일희일비가 특기인 나는 ‘전공 바꿔 쓰기 실험’ 중인 사실도 잊은 채 바로 우쭐해졌다. 며칠 뒤, ‘여기도 최종 합격하면 어디를 가야 하지.’라는 고민을 하며 마지막 관문인 임원면접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질문을 받았다. “A-301 지원자님, 서류에 주전공이 경영학이고 복수전공이 국문학이라고 쓰여있는데 맞나요?” 허를 찔렸다. 내 옆자리에 늠름하게 앉아있는 지원자의 무릎에 올려놓은 주먹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나 간절한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 도저히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네, 맞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자기소개서를 읽어보니 마치 국문과를 전공한 것 같아서 확인 차 물어봤습니다'라고 면접관이 대답했고, 나는 이후 아무런 질문을 받지 못했다. 결과는 당연히 ‘최종 불합격'. 짐작하건대, 아마도 그 면접관은 내 주전공이 경영학이 아니라 국어국문학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철저한 면접관 덕분에 취업사기로 뉴스에 날 뻔한 일은 간신히 피하게 되었지만, 이 일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54번의 시도에는 꿈쩍도 않던 취업의 문이, 전공 하나 바꾸어 썼다고 열리다니.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걸로 하겠다.”

만화 미생』의 장그래가 인턴을 했던 회사에서 최종 불합격하고 난 뒤, 마음을 추스르며 다짐하는 말이다. 이 장면을 볼 때면, 매번 고꾸라지면서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뿐이라며 스스로를 채근했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순진했던 그 시절의 나 역시, 탈락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무엇이 부족했을까, 무엇을 더 보완해야 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이 계속됐고, 매일 습관처럼 타이레놀을 삼키면서도 나에게서 패인을 찾느라 잠을 설쳤다. 장그래가 일반적인 전형을 통해 회사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 비단 개인의 책임만이 아닌 것처럼 ‘전공 바꿔 쓰기 실험’을 통해 나 역시 그때의 숱한 실패가 나의 부족함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좌절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무모할 정도로 패기로웠던 나의 20대 경험을 이렇게 공개하는 이유는, 우리가 겪는 불안과 좌절 실패와 무기력이 결코 우리 개인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30대가 되고 나서  일을 떠올리면, 이제는 분노보다는 숙연함을 느낀다. 현실에는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기회에서부터 배제되는 ‘미생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주변에도 보이는 모습보다 훨씬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많고, 요즘 입사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공개채용'이라는 제도와 사회 질서 자체를 전부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전형으로 입사한  동기들을 보면, 각자의 명확한 장점이 있고 공통적으로 성실하다. 소중한 점심시간을 쪼개서 업무지식이 부족한 동기()에게 과외를 해줄 정도로 지성과 인성이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다. 다만, 잊지 않고 싶은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언제 어디서든 거절당하는 날은 앞으로도 무수히 있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우리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럴수록 나를  믿고 아껴주자. 우리네 삶의 목적은 결국 행복 아니었던가. ㅗ행복의 기준은  생의 주인만이 정할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럴듯한 간판에  휘둘리는 듯하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그때만큼 휩쓸리지 않는다. ‘전공 바꿔 쓰기 실험이후로 선택의 기준을  자신으로 다시 세웠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마땅히 해야  일들 따위를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물론 이런 내 마음도 매일 바뀐다. sns 알려주는 ‘1  오늘속의  모습이 낯간지럽고,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많지만), 다시 반성하고 성찰하며  나아지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간판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느냐이다.   발을 땅에 붙이고 한걸음 한걸음 꼭꼭 눌러 내디뎌온 걸음이 결국 나를 원하는 곳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는다.


미생 시즌1/윤태호/위즈덤하우스/1-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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