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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가을은 찬란하다

설악산 십이선녀탕 트래킹, 정선 백운산 칠족령 숲길

by 여행하는나무

퇴사를 하고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매주 월화 여행을 가는 것이다. 주말에 일하는 남편의 휴일은 월화이다. 나와 일하는 시간이 달라서 혼자서 다니던 길을 이제는 나와 동행할 수 있어 남편의 기쁨은 배가되었다.


청명하고 맑은 하늘, 선선한 날씨,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 우리가 기억하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올해는 가을장마라 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렸다. 10월 14일 월요일 새벽부터 비소식이다. 전국적으로 흐리고 비 오는 날, 어떤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비를 뚫고 강원도 인제로 출발했다. 가는 내내 비가 내렸다. 곧바로 숙소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플로팅웨일 감성숙소'는 미시령 옛길 초입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비 오는 월요일에도 10대의 차량이 보인다. 역시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날씨를 넘나드나보다. 비교적 넓은 공간에 침대와 거실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좋았다. 통창으로 초록 숲에 비가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바베큐 시설도 잘 되어있고, 캠핑 장비도 무료로 대여해 준다. 숙소 바로 앞에 계곡이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가족 단위로 여행 와서 묵어가면 좋을 듯하다. 오늘은 계곡에 넘치도록 물이 가득하여 세차게 흐른다. 구석구석 깔끔한 손길이 느껴지는 숙소다.

KakaoTalk_20251019_202514363_05.jpg?type=w386 숙소에서 본 숲풍경

다음날, 숙소 카페에서 1인당 5,000원에 간소하게 차려진 황태국에 아침을 먹었다.

십이선녀탕 트래킹 우중 트래킹을 하기로 했다. 15일 화요일에는 다행히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비는 소강상태지만, 숲은 온통 물기에 젖어있다. 계곡은 물이 한가득이다. 물소리가 지금은 주인이다.

힘차게 이어지는 물소리가 숲의 고요를 깨뜨린다. 가을 색으로 조금씩 물들어가는 나뭇잎들. 공기는 맑고 청아하다. 국립공원이라 길이 잘 되어있다. 나무 데크와 안전망으로 정비된 길을 조심조심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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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보러 가는 길은 계곡을 가득 채운 물구경, 물멍의 길이다. 세찬 물줄기는 바위를 휘감거나 내리치거나 때리면서 거침없이 내달린다. 낙차가 있어서 그런지 물은 포말을 일으켜 계곡물이 흰빛을 띤다. 살아 움직인다. 힘차고 위용이 넘친다. 저 계곡물에 휩싸이면 어딘가로 곤두박질칠 것 같다. 쉼 없이 흘러간다. 엄청나게 흘러내려가는 데도 어디서 물이 생겨나서 끊임없이 같은 양으로 흘려내려 가는지 궁금할 정도다. 공기 중에도 물이 가득하고 계곡에는 그 물들이 모이고 모여서 엄청난 폭포를 만들고 있다. 이런 때 아니면 볼 수 없는 새로운 폭포들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물소리를 들으며 물길 따라 걷다 보니 내 몸의 모든 세포들이 물과 조응하여 기쁨의 춤을 추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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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선녀탕 트래킹은 계곡물을 따라서 돌길이나 나무 데크길을 오르는 길이다. 계곡물은 한여름에 장마철을 버금갈 정도다. 물이 어찌나 많고 그 흐름이 힘찬지, 흰 포말로 바위를 때리며 굽이굽이 흘러내려간다. 한여름 장마철을 연상케 할 정도로 세찬 물줄기가 인상적이다. 계곡의 하얀 물보라가 빨갛고 노란 단풍과 어우러져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포함하여 10개의 연결 다리가 있어 계곡 양쪽을 오가면서 산을 오른다. 위로 갈수록 단풍은 수줍은 새색시처럼 연녹색으로 노란색으로 붉은색으로 조금씩 물들고 있다. 갑자기 환한 빛이 보여서 둘러보면 노랗게 물든 단풍이다. 상류 쪽으로 올라가니 노란 단풍뿐만 아니라 빨간 단풍들도 제 빛깔을 완전히 갖춘 채 무르익었다. 단풍나무도 많고 생강나무도 많아서 색깔이 아름답게 물들었다. 단풍꽃이 활짝 피었다. 해가 없어도 스스로 화사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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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폭포를 지나 복숭아폭포에서 이르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부드러운 물이 단단한 화강암 바위에 물길을 내고 커다란 구멍 '소'를 만들고, 유유히 흘러간다. 대단한 절경이다. 폭포로 내리치고 중간중간에 소가 있어서 물이 고여 잠시 쉬다가 다시 힘차게 아래로 내려간다. 12개의 폭포와 12개의 소가 있어서 하늘의 모든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해도 충분할 만큼 굽이굽이 이어진다. 그래서 십이선녀탕 폭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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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1019_084701103_11.jpg?type=w386 복숭아폭포

자잘 자잘 내리는 비를 맞으며 6시간에 걸쳐 2만보를 걸었다. 비가 내리면 또 어떠랴! 비가 내리면 더 조심해서 걷는다.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비가 만든 풍경을 감상한다. 온전한 아름다운 속에 가슴이 벅차다. 황홀한 순간이다.

오늘 만난 저 물은 나와 잠깐 스치고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이 단풍들도 마찬가지다. 이 찬란한 단풍도 내일은 또 다른 모습일 것이고 땅에 떨어져 거름이 되고 흙이 되어 다시 나무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나 또한 어찌 어제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제의 나는 흘러가고 오늘은 새로 태어난 나이다.

이 순간 이 빛나도록 아름다운 잔치에 함께하고 있는 것만이 가장 의미 있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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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0~21일 월화 여행데이, 이번 목적지는 강원도 정선 백운산이다.

우뚝우뚝 솟아난 석회암 바위산들,

가을 분위기가 조금씩 배어 나오는 나무들,

시원한 바람을 머금은 맑은 공기,

인적이 드문 산골 오지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


월요일 오후에 도착하여 숙소로 가는 길에 동강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에서 만난 동강은 예전에 몇 번 봤던 그 동강이 아니었다. 물이 풍부하고 물살도 강력하다. 이렇게 물이 많은 동강은 처음 보았다. 가늘게 흐르던 가을날의 동강이 아니라 마치 한강을 보는 듯 강폭도 넓게 찰랑찰랑 물이 흐르고 있다. 도도하고 거침없는 물줄기다. 강렬하다. 다리 가운데 서 있으니 내가 물줄기에 휩쓸려 어디론가 끝없이 떠내려갈 것 같다. 가을장마가 만든 풍경이다. 한참 비가 내릴 때는 다리에 물이 넘쳐흐를 정도로 많이 내렸다고 한다. 여름 가뭄과 가을장마로 농사를 망쳤다며 울상을 짓는 민박집 젊은 농사꾼의 눈빛에서 거스를 수 없는 기후변화를 실감한다.

KakaoTalk_20251026_195132809_09.jpg 동강의 모습

숙소는 거북민박이다. 정선군 신동읍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제장마을, 소사마을, 연포마을을 지나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끝마을이다. 근방에서 유일한 민박집으로, 닭백숙 식당도 겸하고 있다. 평생 농사일을 한 늙은 어머니와 젊은 두 아들이 꾸려가고 있었다. 3000평이 넘은 농지에는 노랗게 잎이 물든 콩과 팥 등이 자라고, 강 부근에 캠핑장도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둘째 아들은 겨울에 약초도 캐고 산에서 크고 작은 나무를 잘라 마을의 수호신 솟대를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작품을 둘러보았는데, 솜씨가 훌륭했다. 오리를 소재로 마을의 안녕을 비는 솟대가 그의 섬세한 손길을 통해 멋진 솟대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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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민박, 솟대작품

연포마을에는 영화 촬영지였던 연포분교를 볼 수 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는 병풍 바위를 앞에 두고 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곳에 자리 잡은 연포 분교, 차승원이 주연으로 열연한 <선생 김봉두> 영화 촬영지이다. 예전에 아이들이 활발하게 뛰어놀았을 공간이 지금은 허허롭게 비어 있다. 세월 속에 아이들은 사라져 가고 폐교가 된 이 학교는 캠핑장으로 모습을 바꾸어 가끔씩 오는 손님을 맞고 있다. 단풍나무는 곱게 물들었다. 대추나무에도 대추가 주렁주렁 열려서 갈색으로 여물었다. 소나무, 버드나무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묵묵히 세월을 헤아리고 있다. 지금은 가을이라 울긋불긋 단풍잎도, 잘 익은 감의 주황색도, 감국의 노란빛도, 아직 생생한 초록의 잎들이 아이들이 떠난 공간을 생동감 있게 물들인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이곳이 얼마나 황량하고 썰렁할까?


KakaoTalk_20251026_195132809_19.jpg 연포분교(캠핑장)

21일 화요일 아침은 숙소에서 백반을 사 먹었다. 깔끔하고 소박한 반찬과 맛있는 된장국이 9,000원이다. 아침을 먹고 트래킹을 위해 나섰다. 드문드문 자리 잡은 오지산골 마을 농가들은 허름한 집이 아니다. 잘 정비된 집들은 깔끔하고 여유 있어 보인다. 가을 들판에는 추수할 것들이 가득하다. 농부의 손길이 곳곳에 미쳐있다. 큰 규모의 붉은 수수밭을 처음 보았다. 잎과 줄기, 열매까지 강렬한 붉은색이다. 유명한 중국 영화 <붉은 수수밭>이 생각난다. 이 계절에 왔기에 볼 수 있는 광경이라 생각하니 소중한 느낌이 든다. 노란 잎으로 물드는 콩밭과 고추밭 등도 대단위 규모로 관광객의 눈에는 그저 멋진 풍경의 하나일 뿐이나, 그 속에는 농부의 피와 땀에 자연의 어머니가 돌보는 손길이 가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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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최고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백운산 칠족령 전망대에 올랐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십 년도 더 지난 어느 여름철에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올라와서 멋진 풍경에 감탄하던 엄마와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경사가 심하고 많이 힘든 길인데, 어떻게 올랐을까? 그땐 엄마도 젊고 힘이 있었구나 생각하니 지금 현격하게 노쇠한 엄마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백운산 칠족령 숲길은 정선군과 평창군을 잇는 구간으로 칠족령을 축으로 하여 양 방향 1.5km씩으로 이어지는 숲길이다. 뱀이 휘감아도는 것 같은 사행천 동강과 백운산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오지 속의 오솔길이다. 석회암 지대의 특성과 굴참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활엽수 등 천연 식생의 풍요로움으로 동식물의 다양성을 만날 수 있다. 단풍나무는 많지 않지만, 굴참나무, 신갈나무, 음나무, 소나무, 층층나무, 꼬리진달래, 분꽃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가 살고 있다. 가을 낙엽을 밟으며 동강을 굽어보며 걷는 길은 한적하고 운치 있다. 우뚝우뚝 자리 잡은 소나무들 활엽수들과 햇빛 경쟁을 하면서 하늘 높이 고개를 쳐올리고 있다. 그 당당함과 위세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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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등 잎이 큰 활엽수가 많은 가을 산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밟을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폴풀 소리를 낸다. 나무에 매달려서 생생하고 푸르던 색을 빛내며 열심히 광합성을 하고 자신의 소임을 다한 나뭇잎들이 이제는 땅 위를 뒹굴고 있다. 썩어서 한 줌 흙이 되고 거름이 되어 나무속으로 다시 들어갈 것이다. 나무의 영양분이 되어 다시 잎으로 돋아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만들 것이다. 생명의 아름다운 순환 과정을 생각하니 길바닥의 낙엽들을 밟는 것마저도 황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칠족령에 오르면 동강이 굽이굽이 뱀의 등허리처럼 휘어져 가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깎아지른 절벽 바위는 반듯하게 90도 경사를 이루면서 서 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거대한 기계를 가지고 반듯하게 깎아내린 것 같다. 병풍처럼 물길을 막아 돌아가도록 막고 있다. 강물은 오롯이 순종하듯 부드럽게 바위산을 감싸고 꾸불꾸불 주변을 휘감으며 흘러간다.

굽이굽이 물길은 또한, 바위를 깎고 흙을 모아서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 이런 멋진 풍경을 만들기까지 수천 년, 수만 년 수억 년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그 억겁의 세월 속으로 상상 여행을 떠난다.

바다 깊은 곳에 고운 진흙과 모래가 가라앉고, 쌓이고 쌓여서 단단하게 뭉쳐진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열과 압력을 받으면서 크고 단단한 돌멩이나 바위덩어리가 된다. 지진이나 화산 활동으로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바윗덩어리가 융기해서 올라와서 거대한 석회암 덩어리가 된다. 그 위에 흙과 먼지와 씨앗이 쌓여 나무와 풀이 자라며 산이 된다. 고운 진흙이 만든 석회암은 지층이 분명하지 않지만 가는 선이 층층이 쌓여 만든 고운 층리가 보인다. 석회암은 풍화에 약하다. 바람과 물과 눈에 의해서 오랜 세월 깎이고 부서지고 휘어지고 꺾인 풍경이 꿋꿋하게 숲을 이룬 식물들과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절경을 만든다.

KakaoTalk_20251026_213714302_11.jpg?type=w773 칠족령 전망대에서 본 동강 구비길

이렇듯 깊은 산과 찬란한 가을 풍경은 예전 같으면 접근하기 어려웠을 텐데, 지금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어 참 좋다. 산과 바위와 강과 마을이 어우러진 곳, 대자연이 만든 멋진 풍광에 가을로 물들었다. 유유히 흐르는 십이선녀탕과 동강의 풍성한 물처럼 내 마음도 가을의 풍성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강원도 가을나들이였다.

KakaoTalk_20251026_213714302_01.jpg?type=w773 동강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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