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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크 Apr 11. 2024

우울증 치료기

#정신과 #우울증 #완치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침대에서 무기력하게 누워있을 때가 많았지만 우울증일 줄은 몰랐다.  2년여 전 정신과의사 ‘뇌부자들’이 운영하는 유튜브를 보다가 PMS(월경 전 증후군) 치료제가 항우울제라는 영상을 보고 반신반의하며 정신건강의학과를 갔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 5분 정도 간단히 상담을 한 후 검사지를 주면서 작성해 오라고 했다. 수 백여 개의 문항을 읽고 해당란에 체크하면서 ‘뭐 이렇게까지 많이 물어보는 건지 너무 귀찮다’ ‘괜히 병원에 간 거 같다’는 후회도 들었다. 일단 정신과를 방문한다는 것이 첫 번째 허들이라면, 검사지에 체크하는 것이 두 번째 허들이었다.


검사지를 제출하고 일주일 후 다시 병원에 방문했을 때, 진단 결과는 의외로 우울증이었다. 초반 몇 주간은 세로토닌 수치를 올려줄 수 있는 유니작 5밀리그램을 주신 후 10밀리그램을 주셨고 그 후에는 유니작 20밀리그램과 불안 증상도 있어서 심장박동 수를 낮춰주는 인데놀 10밀리그램을 처방받았다. PMS는 거의 약을 먹은 지 한 달 만에 없어졌을 정도로 효과가 빨리 왔다. 우울증의 경우 복용한 지 두 달부터 에너지가 느껴졌다. 약값도 의료보험이 적용이 되어, 한 번 병원에 갈 때 만 원 정도밖에 하지 않아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과는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사는 게 아니고 진료가 끝나면 병원에서 바로 약을 주는 것도 편리했다.


다른 의료 분야도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정신과의 경우 의사 선생님을 어떤 분을 만나는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내 담당 의사 선생님은 마른 체구에 안경을 쓴 분이셨는데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차트에 몽블랑 만년필로 멋지게 글씨를 쓰는 모습이 인상적인 분이셨다. 말씀도 굉장히 나근나근하게 하셨는데, 부담스럽지 않게 천천히(나의 성향을 파악하신 걸까?) 질문을 해 주셨고,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갖도록 도와주셨다. 그래서 병원에 가는 것이 작은 힐링이었다.


정신과를 다닌 후 몇 달이 지나, 갑자기 전신마취 수술을 하게 되어서 많이 힘들었을 때, 의사 선생님이 공황장애 약이라는 자나팜정0.125밀리그램을 주시면서 힘들 때 복용하라고 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힘들 때마다 복용하면 될 것을 괜히 최대한 힘들 때만 먹고, 안 먹으려고 해서 딱 한 번 수술 전날에만 먹었다. 그래도 나를 도와줄 약이 있다는 게 든든했다.


정신과 치료를 시작한 지 1년 3개월이 되었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우울증이 많이 좋아졌다고 용량이 적은 브린텔릭스 5밀리그램로 약을 변경해 주셨다. 치료받는 동안 크고 작은 위기 속에서도 약의 도움과 의사 선생님의 지지로 점점 호전되었다. 약을 꾸준하게 복용했고, 진료 약속도 한 번도 어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초반에는 2주 치 약을 주시면서 상태가 어떤지 보고 약을 주셨는데, 나중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만 병원에 갔었다. 치료 거의 후반에는 남편한테 “왠지 선생님이 이제 그만 오라고 할 것 같아, 난 병원 가서 이야기하는게 스트레스 풀리고 좋은데......”라고 말할 정도로 병원 가는 게 좋았다. 그리고 마침내 의사 선생님이 ‘이제 좋아져서 더 이상 병원에 안 와도 된다’고 하셨다. 2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개운하면서도 뭔가 아쉽기도 했다. 이제 힘든 일이 생겨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많이 힘들면 다시 병원 가서 치료받으면 되니까.  


 [추천곡]Tom Odell, monster v.1

Arlo Parks, Black 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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