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아주 없지도 않았고, 운이 억세게 나쁘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글을 쓰면서 보니 운이 꽤 좋은 편이었다. 경찰 시험은 일 년에 두 번 있는데 1차, 2차 채용시험에서 떨어지고, 이듬해 1차 시험도 낙방, 2차 시험은 필기 합격 후 최종 불합격, 시험공부를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 갑자기 3차 시험이 있다고 했다. 2012년 여의도에서 있었던 흉기난동사건으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3차 시험에서 나는 최종 합격했다.
경찰이 장래희망이었는지 묻는다면 한 번도 경찰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경찰 시험공부를 하게 된 계기는 장수생이던 언니가 경찰 시험에 합격하면서, “넌 영어공부 안 해도 되니까(영문과를 전공했다) 4과목만 공부하면 빨리 붙을 것 같다”고 추천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 직장을 꾸준히 다니지 못하던 차에 도피처럼 경찰 시험을 선택했던 것 같다.
우연의 연속이다. 언니가 경찰이 되지 못했다면, 나도 경찰 공부를 안 했을 것이고 여의도 흉기난동사건으로 3차 시험이 없었으면 포기하고 경찰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첫 부임지는 내가 지망하지도 않은 곳으로 정해졌고, 이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나는 그래도 ‘강원도’ 중에서 OO군으로 보내진 것이지만 남편은 ‘전국’에서 OO군으로 보내졌다)
1년 2개월간의 지역경찰(지구대․파출소) 근무를 마치고 경찰서 생활안전계(지금의 범죄예방계)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경무계 근무하던 경사님이 “남편 회사에 신입 직원이 들어왔는데 사람이 참 괜찮다”라고 하셨는데 귓등으로 듣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얼마 후 야근을 하고 있는데 경사님 남편분이 회식 중인데 회식이 거의 끝나가니 신입 직원분을 한 번 만나보라고 하셔서 읍내의 한 레스토랑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다.
연애 완전 초반, 도로점용허가 관련 문서였던 것 같은데 온나라(업무처리전산화시스템) 공문으로 남편이 기안한 문서를 내가 접수자가 되어 문서 처리를 하면서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단순히 문서를 기안한 것이 남편이고 접수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우리가 엄청난 운명인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남편을 소개해 주신 경사님의 남편분이 우리를 소개해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청으로 발령이 났다. 그분이 우리를 소개하는 것을 조금만 미뤘어도 우리는 영영 만나지 못할 뻔했다. 우리끼리는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가끔 한다.
6년째 키우고 있는 강아지는 부모님이 계신 본가 앞 집 강아지가 새끼를 낳아, 그중 한 마리를 받아온 것이다. 인생의 모든 것이 무섭도록 우연의 산물이다. 물론 취향이 반영된 선택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한껏 올라간 눈이 콤플렉스라) 남편처럼 눈이 처지고 착하게 생긴 사람을 좋아했고, 작은 강아지는 너무 약해 보이고, 안았을 때 너무 가벼워서 안는 것 같지도 않은 느낌이 꺼려져 대형견 품종을 선호했다. 여기에 남편을 만난 타이밍(타지에서 외롭게 혼자 있을 때)도, 강아지가 태어난 타이밍(부모님 집에서 독립해서 혼자 살 때)까지 다 절묘하다.
승진 시험도 운을 피할 수 없다. 승진 시험에도 근평(근무평정)점수는 꽤 중요한데 동일 계급인 피평정자가 많으면 근평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나는 같은 계급이 없는 상황이거나, 같은 계급이어도 근평을 받을 때 유리한 조건(주무부서라든지 서무업무담당 같은) 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시험의 경우 경사 시험 때 내가 선택한 ‘실무 2’ 과목이 너무 어렵게 나와서, 나를 포함, 실무 2를 선택한 사람이 대거 불합격했다. 1년 간 공부한 것이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절차탁마하여 다음 해 시험에서 ‘실무 2’를 100점을 맞았더니 상대평가로 바뀌어 보정점수가 60점대가 되어 버렸지만 다행히 승진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경위 시험은 첫 시험에서 바로 합격했는데 비결은 (시험을 잘 봐서가 아니라) 선발인원이 많았던 것이 이유였다. 승진 인원이 매년 동일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어느 해는 많이 뽑고 어느 해는 적게 뽑곤 한다. 내가 주력으로 준비한 해에 해당 계급 승진 정원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고를 피한 운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여기고 그 사실에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운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사고를 피한 운이 있었던 적도 몇 차례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주로 운전에 관한 것이 많은데 퇴근하는데 옆 차로에서 주행하던 차가 갑자기 내 차를 충격하였고 그 충격으로 내 차는 화단으로 된 중앙분리대를 간신히 피해 반대편 차선을 넘어가 정지하였는데 당시 반대쪽에 차량이 오지 않아 추가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또 아침에 출근하려고 차에 탔는데 안 챙긴 물건이 생각나 다시 집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내 차가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급한 마음에 주차모드로 기아를 변속하지 않고 나간 모양이었다. 식겁을 하고 뛰어가서 움직이는 차 안으로 들어가서 간신히 차를 정지시켰다. 차 각도가 조금만 더 내리막 쪽을 향해 있었어도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찔하다.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천운이었다.
눈이 많이 오던 겨울, 본가에 가던 중 차가 빙판길에서 굴러 인삼밭으로 떨어져 허리에 통증이 있었지만 입원할 정도로 큰 사고는 아니었다. 이후에는 눈이 올 때는(특히 빙판길) 되도록 운전을 자제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신혼여행 때는 빗길에 차가 미끄러져 사고가 나서(다행히 단독사고였고 우리도 다치지 않았다) 차를 폐차하기도 했다. 근처 우체국에 가서 큰 짐은 택배로 부치고 남은 신혼여행 일정은 렌트카로 다녔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신혼여행이 되었다.
나쁜 운을 피하는 천운 카드가 다 소진되지 않았기를 바라며, 소중하게 만난 인연과 몇 번의 합격 경험과 몇 번의 교통사고에도 아직 무사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