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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령 Sep 09. 2019

타진냄비와 모험생

흙그릇 안에 담긴 캠핑의 정수



베르베르인의 후손일까. 최근 우리 가족은 그동안 보지 못한 풍경을 연출하던 한 외국인 캠퍼 커플을 발견하고 문화충격에 빠졌었다. 서해 바다를 앞에 둔 노지의 땅에 어스름한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커다란 백패킹 배낭을 메고 나타난 그들은 식사시간이 늦었다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느릿느릿 텐트를 펼치더니 이내 그들만의 조리도구를 꺼내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순간 우리 부부는 그들이 꺼낸 유일한 조리도구를 보고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뚜껑이 고깔처럼 생긴 그것은 다름 아닌 '타진냄비'였기 때문이다. 


남자는 숯이나 시판 장작이라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듯 매우 신중하게 텐트 주변의 뗄 나무들을 주워 불을 피웠다. 여자는 아마도 여행길에서 누군가에게 얻은 듯한 둥근 호박을 배낭에서 꺼내 맥가이버 칼로 정성껏 다듬었다. 그리고 더 어떤 것이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들의 만찬을 책임질 타진냄비가 불에 올라간 후에도 그들은 한참 동안 더 여유를 즐겨야만 했다. 타진요리라는 것이 워낙 긴 요리시간을 요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숯불에 구운 고기를 다 먹어치운 뒤 뒷정리를 마칠 때까지도 그 타진냄비의 뚜껑을 열지 못했다.


긴 시간 동안 고요히 끓고 있던 인내의 타진냄비. © 둔족추장


흙 그릇에 담긴 캠핑의 정수


솔직히 그 커플의 타진요리가 얼마나 맛있을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만 그들의 놀라운 인내력과 상황을 즐기는 여유는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우리는 혹시 그들이 타진의 본고장인 모로코에서 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기까지 했다. 그들은 확실히 우리가 경험해왔던 캠핑 과는 너무나 다른 태도로 자신들만의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캠핑장에 오자마자 엄청난 장비들을 동원해 사이트를 꾸미고, 숯불 철망 위에 삼겹살과 각종 야채 등을 구워 빠른 시간 안에 술과 함께 위 속으로 밀어 넣는 우리 식 캠핑문화에선 상상이 잘 안되는 풍경이다. 이 문제는 사실 물질을 떠나 정신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함이 옳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식문화와 여가문화의 엄청난 차이를 인식해야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될수록 짐을 줄여야 하는 백패킹에 굳이 무거운 흙 그릇을 지고 다니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의 정신세계가 몹시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타진냄비는 집에서 이미 써 봤던 물건이기 때문에 그 기능과 효용을 잘 안다. 타진(طاجن ; 프라이팬을 뜻하는 아랍어)이란 가열하는 동안 재료에서 증발한 수분이 고깔처럼 생긴 뚜껑에 모였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원리를 용한 냄비 또는 요리방식을 말한다. 소량의 수분으로도 충분히 조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현대에는 무수분 요리처럼 원재료의 맛과 영양을 살리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타진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연안의 베르베르인들이 이 기발한 조리도구의 창시자다. 그들이 타진냄비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선사시대 암각화와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타진냄비는 꽤 오래전부터 이 부근의 문화, 역사와 함께 이어져온 살아있는 유물과 같다.


그래서 타진냄비는 어쩌면 가장 원시적인 캠핑에 적합한 도구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사막 위에 지은 베두인족의 텐트처럼 물이 부족하고, 화력이 약하고, 원재료의 영양을 최대한 잃지 않아야 하는 환경에서라면 타진냄비만큼 적합한 조리도구가 또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타진냄비 커플은 자연과 가장 가까워지기를 원하는 캠핑의 정수에 도전하고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베르베르인과 베두인족처럼 가장 극악한 환경 속의 유목생활로 자신들의 식탁을 밀어 넣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어떤 이유로 그들은 원시로의 순례를 떠난 것일까? 나는 그들만큼 신실한 수도자가 될 정도의 각성을 하진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고행을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어떤 종류의 즐거움과 기쁨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기꺼이 무거운 타진냄비를 어깨에 메게 되었을 것이다.



모범생이 아닌 모험생이 되기 위한 모험. © 둔족추장



자연 안에서 '모험생'이 되는 아이들


극단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우리는 쉽게 당황하거나 위축되곤 한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 한 번도 놓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물들은 본능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사전에 모의 연습으로 자신을 단련시킨다. 불에 데이지 않기 위해 안전한 거리 안에서 불에 다가가거나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꺼이 물에 빠져 수영을 배운는 식으로. 캠핑은 이런 아이러니한 시도에 관한 은유와 같다. 비록 다시 되돌릴 수 있고 언제든 문명의 보루로 뛰어들어올 수 있는 '설정된 상황'이지만, 우리는 때때로 우리 자신을 극한의 자연 속으로 밀어 넣는데 기꺼이 동의한다. 타진냄비 커플이 비록 극단적인 자연주의자로 보인다 하더라도 정도의 차이일 뿐, 현대인들은 오늘도 즐거운 불편을 위해 기꺼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문명의 세계에서 우리를 보호해주었던 모든 물질 이기가 사라졌을 때, 맨 몸뚱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결국 부모의 안락한 품이 사라졌을 때, 우리의 아이들이 험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교육의 문제로 귀결된다. 아이들은 위기가 닥쳐왔을 때 본능적으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하지만 안전한 보호장치가 완벽하게 둘러져 있는 현실 안에서는 이들의 능력이 발휘되고 강화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이 자연의 품으로 돌아왔을 때 환호하는 이유다. 스스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도구를 고안해내고,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불태울 수 있는 나뭇가지와 솔방울을 줍고, 이웃 텐트의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법을,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나는 타진냄비 커플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백패킹이라는 그들 여행 방식에 가장 적합한 요리법을 알고 있었다. 최소한의 것을 들고 다니며 가장 극한의 상황에 놓여야 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라면 타진냄비만큼 긴요한 조리도구는 다시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처해진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줄 아는 모험가였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서라도 이들처럼 적응하고 개척해 살아갈 줄 아는 모험가가 되길 바란다. 안전한 틀 안에서 누군가의 명령에 순응해 살아가는 모범생보다는 어떤 극한의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모험생이 되기를, 그리고 자신에게 던져진 불편함을 기꺼이 즐기고 시간을 견딜 줄 아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되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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