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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둔족추장 Nov 10. 2019

그렇게 우리는 함께 어른이 된다

유랑육아, 홀로서기를 배우는 야생의 아이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를 기억한다. 너무나 작고 가냘픈 몸뚱이를 가진,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어린 생명이 내 에 안겨졌을 때. 나는 그때 벅차오르는 감동과 함께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어떻게 이 작은 짐승을 사람으로 만들지?' 하지만 감동과 두려움도 잠시,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나는 짠내 나는 육아 고행길로 등 떠밀려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을 홀로 지나는 느낌이었다. 퇴근도, 복지도, 파업도, 정년도 없는 극한직업을 체험하며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흘렸다는 눈물을 나도 흘려보았다.


하지만 영원히 돌봐줘야 할 것 같았던 작은 아이가 스스로 두 발로 서고, 걷고, 말을 하고, 밥을 먹는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다. 아이는 끊임없이 자라주었고, 이제는 내 품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연스러운 성장이 고마우면서도 내심 서글프기도 하다는 것이다. 엄마는 이제 겨우 네게 익숙해졌는데, 너는 나를 떠나려고 하는구나. 어쩌면 나는 어머니들이 흘린다는 두 번째 눈물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육아는 독립의 과정
부모가 아닌 자연이 키우는 아이들
아이를 잘 떠나보내기 위하여



육아는 결국 독립의 과정이었다. 아이도, 어른도 종국엔 서로를 떠나보내고 홀로 서야만 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 함께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어른으로 만드는 건 부모가 아니라 아이 자신이었다. 아이는 내 것이 아닌 자연의 것이었고, 자연 안에서 아이는 그답게 성장할 뿐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어떻게 해보고 싶어도 되지 않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인격체였고, 내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의 이치에 따라 알아서 적응해 성장하는 생명체였다.


아이가 타고난 개성을 내뿜을수록 부모는 제재하고 간섭하려고 한다. 우리 부부도 그랬다. 사회 속에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경쟁사회에서 살아나가려면 하나라도 더 빨리 무엇이든 가르쳐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조바심을 내고 닦달을 했다. 하지만 물 샐 틈 없이 짜인 스케줄에 따라 부모의 관리를 받으며 사육당하 아이들은 점점 타고난 총기와 활기를 잃어갔다. 학습지와 학원은 어떤 미래도 담보해주지 못한 채 우리의 불안감만 더욱 높여갔다. 노력해도 내 맘 같지 않았고, 모두가 불행했고,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부모인 우리는 아이들의 앞에 선 사람이 아닌 뒤에서 바라보는 사람, 그들을 이끌기보다는 기다려주는 사람에 머무는 편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자연이 키우는 아이들을 그저 바라보고 기다리고 응원해주는 일, 그게 우리가 이 아이들을 낳은 소명이라고. 그리고 아이들에겐 우리가 무엇을 가르쳐주기보다는 그들이 직접 세계를 체험하는 편이 더 이로울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체득하는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살아갈 힘을 줄 것이라 믿으며. 그렇게 주말마다 자연으로 나가 텐트를 펼쳤다. 모험이었지만 행복했다.



캠핑은 인생을 축소한 모티브
과잉을 버리고 본질로 돌아가는 여정
유랑으로 시작해서 야생으로 발전한 성장기


 
너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게 나의 일이란 걸 © 둔족추장

캠핑은 인생의 모티브다. 야생의 삶은 거친 풍파와 희로애락이 반복되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어느 날은 폭우가 내리고, 어느 날은 무지개가 뜬다. 인생이 엑기스처럼 다가오는 만큼 교훈도 진하고 쓰다. 인생속성반이랄까. 우연과 좌절, 추위와 배고픔, 과잉과 결핍, 분노와 용서, 안도와 감사를 날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 아이와 부모는 지지고 볶으며 생존하는 법을 알게 된다. 육신의 고단함을 견디고 마음의 고통을 참아내며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해나가는 모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야말로 '존버'다.


캠핑은 삭제의 여정이었다. 처음에는 '유랑'에 의미를 두고 시작한 말랑한 캠핑이 점차 '생존' 캠핑으로 변해갔다. 야생의 삶 속에선 과잉이 오히려 부담이었다. 최소한의 도구만으로도 생존할 수 있는 법을 알게 되고, 그 모든 문명의 이기가 사치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노브라, 노메이크업 캠핑이 되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 돌아오기까지 내면의 다툼이 상당했더라는 말이다. 아이들은 적어도 자연에서만은 숨겨둔 야성을 마음껏 뿜어댈 수 있었다. 층간소음의 공포, 숙제의 지리멸렬함, 집과 학원을 오가는 틀에 박힌 생활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유랑육아>의 시간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부모인 우리가 아이들로부터 독립하고, 부모 마음 속의 아이가 홀로서기를 배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위해 떠난 여행길에서 우연한 선물을 주운 느낌이다. 아이들을 잘 떠나보내기 위하여, 그리고 그들이 야생과 같은 자신의 삶 속으로 스스로 잘 걸어들어갈 수 있도록 이번 주말도 우리 가족은 캠핑을 위한 짐을 쌀 것이다.


이 책이 발행될 수 있도록 조용히 빈 시간을 내어준 남편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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