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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정 Oct 16. 2023

붉은 낮, 푸른 밤

사막은 생과 사의 경계였다. 순수한 침묵이자 무결한 고독이었다. 사방이 트여 있었지만 길은 없었다. 방향을 잃는 순간 고립되는 공간은 위험했다. 동시에 매혹적이었다. 그 땅을 밟게 된다면 금빛 모래가 굽이굽이 연이어진 황량한 신비로움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극단의 적막 속에서 바람이 뜨겁게 포효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요르단 여행을 결심한 계기는 페트라였지만, 기대를 증폭시킨 요소는 사막이었다. 남부에 있는 와디럼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었다. 어떤 사막을 보더라도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 아름다운 사막이란 표현은 기대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충분했다. 척박함 속에서 피어오른 아름다움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대자연 앞에서 느껴지는 경이로움 같은 것일까. 아니면 어디서도 보지 못한 기이한 조화로움 같은 것일까.





와디럼을 둘러보기 위해 1박 2일 코스의 투어를 신청했다. 참가자는 여섯 명 뿐이었다. 벨기에에서 온 커플, 아일랜드에서 온 남자, 독일에서 온 여자, 스위스에서 온 여자, 그리고 나. 멋진 지프를 기대했건만 우리를 맞이한 건 먼지를 뒤집어 쓴 낡은 트럭이었다. 햇볕을 막기 위해 담요를 지붕처럼 매달아 놓은 짐칸에는 나무로 만든 의자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으나 사방이 뚫려 있어 경치 감상엔 적합했다.


새카만 머리카락과 두툼한 눈썹을 가진 베두인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차례로 짐칸에 올랐다. 달리는 트럭 위에서 몸이 상하좌우로 요란하게 흔들렸다. 부드러운 모래가 깔려 있을 줄 알았던 지면은 투박한 돌멩이로 가득했다. 중심을 잡기 위에 안간힘을 쓰느라 처음엔 눈에 들어오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요령을 터득하고 나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기 다른 바위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산, 거칠고 뻣뻣한 식물들로 채워진 메마른 풍경이.


트럭을 세운 가이드는 눈앞에 보이는 바위산을 가리켰다. “올라가고 싶은 사람은 올라갔다 와.” 농담하는 줄 알고 피식 웃고 있는데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바위로 다가간 사람들은 암벽을 타듯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기겁하는 동안 그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갔다. 위태로워 보이긴 했지만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사방을 둘러보니 바위산이 도처에 있었다. 높은 곳에 오르지 않으면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하긴 힘들 것 같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정도는 시도해 보지 뭐. 조심스럽게 바위로 다가갔다. 표면이 거친 편이어서 미끄럽지는 않았다. 먼저 올라간 사람들을 따라서 한발 한발 내딛었다. 늦게 출발한데다가 바위산에 오르는 건 처음이었던 탓에 마지막 사람이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중간 지점에서 허우적거렸다. 다시 내려가고 싶었지만 먼저 도착한 일행의 응원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었다.


간신히 정상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박수를 쳐주었다. 그러나 떠들썩했던 박수 소리가 끝나자마자 사막 전체가 거대한 침묵으로 바뀌었다. 대도시에서 태어나 대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에게 소음은 어디를 가든지 따라붙는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인적이 드문 산에도 새소리나 벌레 소리는 들리기 마련이었고, 인적이 뜸한 바다에도 파도 소리는 들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사막은 달랐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사막은 완벽한 정적이 흐르는 곳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과 마주하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소란스러운 세상에 이토록 적요로운 공간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가이드는 바위산에서 내려온 우리를 모래산으로 데려갔다. 입자가 고운 붉은 모래는 밟을 때마다 발을 쑥 끌어당겼다. 경사면을 오를 땐 모래와 함께 몸이 뒤로 쏠려서 물속을 걸을 때처럼 힘을 주어야 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본 붉은 모래와 바위는 기이하게 아름다웠다. 비현실적인 풍경은 지구가 아닌 화성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가본 적도 없는 행성이 떠오른 이유는 영롱한 붉은 빛깔 때문이었다.


모래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사람 얼굴 모양의 바위를 구경하고 또 하나의 바위산에 올라가고 거대한 바위 사이를 통과하고 나서야 사막 한가운데 세운 텐트에 도착했다. 나란히 붙어 있는 세 개의 검정색 텐트는 우리가 머물 숙소였다. 하나는 식당 겸 거실 역할을 하는 곳이었고 나머지 두 개는 침실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간이 화장실도 있었는데, 간단히 씻을 수 있는 작은 물탱크도 있었다. 샤워 생각이 간절했지만 양치와 세수하기도 빠듯한 물을 함부로 낭비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손만 깨끗하게 씻은 다음, 그늘에 앉아 빈둥거리기 시작했다. 


삼십 여분 정도 지났을 즈음, 가이드가 다가와 차를 한 잔 주었다. 와디럼과 닮아 있는 붉은 차는 사막에 적응하느라 긴장했던 몸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일몰 안 볼 거야?”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해가 더 이상 뜨겁지 않다는 걸 인지했다. “저 앞에 바위산 보이지? 그쪽으로 가봐.” 텐트에서 멀어질수록 원초적 자연과 가까워졌다. 홀로 사막을 걷다보니 지상에 남겨진 유일한 인간이 된 기분이 들었다. 전율에 휩싸인 채로 상념에 젖어 있는데 중첩된 몇 개의 목소리가 메아리를 일으켰다. 자세히 보니 바위산 꼭대기에서 누군가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함께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유럽인들의 성향이 원래 이런 것인지,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의 성향이 유독 이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높은 곳에 오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듯 했다. 계획에 없던 등산을 하느라 체력이 소진된 나는 바위산 옆에서 일몰을 감상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내 심정을 알 리가 없는 그들은 끊임없이 소리쳤다. “얼른 올라와! 곧 해가 질 것 같아.”


투덜거리며 오른 바위산 꼭대기에선 사막의 전경은 물론 울룩불룩한 지평선까지 보였다. 모래가 섞여 있는 거센 바람을 피하기 위해 바위틈에 자리를 잡았다. 낙타를 끌고 가는 베두인의 구슬픈 노래 소리가 긴 머리카락처럼 휘날렸다. 숨을 죽인 채로 감상에 빠져 있는 동안 하늘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막의 붉은 빛이 하늘로 번져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하늘의 푸른빛이 사막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낮게 깔려 있는 노을은 잔잔했지만 세상을 향해 뿜어내는 노랗고 붉은 빛은 격정적이었다. 그 찬란한 몸부림을 끝까지 지켜보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가이드의 류트 연주와 노래를 들었다. 맑고 청아한 류트 소리와 단조의 목소리는 슬픔의 정서로 기울어져 있었다. 황량한 사막과 어울리는 음악에 완전히 취해버린 우리는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관객의 호응에 신이 난 가이드는 텐트 중앙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고, 흥을 주체하지 못한 여행자도 가세했다. 각자 다른 선을 그리던 두 개의 춤사위는 음악 안에서 조화로워졌다. 소리와 몸짓이 만들어낸 파장은 고요한 밤을 열광적으로 흔들었다. 


광란의 시간을 보내고 텐트 밖으로 나오자 서늘한 공기가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인공적인 불빛이 없는데도 바위와 모래의 실루엣이 제법 또렷하게 보였다. 어찌된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다가 하늘이 푸르스름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검푸른 하늘 구석에 차갑게 빛나는 은백색 달이 떠 있었다. 나에게 밤은 어둠이었고, 어둠은 검은색이었다. 그러나 사막의 하늘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밤에도 색이 있다는 것을. 그 색은 오직 달빛에 의지해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을.


“텐트 안에 잠자리를 준비해 뒀으니까 지금 들어가면 돼.” 가이드의 말에 하나 둘 텐트 안으로 사라졌다. 밤하늘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던 나는 텐트 밖에서 자고 싶다고 말했다. 가이드는 조금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묵묵히 매트리스를 모래 위에 깔아주었다. “일단 여기 누워봐.” 그가 시키는 대로 매트리스 한가운데 누웠다. 그는 두툼한 담요 한 장을 휙 덮어주더니 그 위에 또 한 장의 담요를 덮어주었다. “새벽엔 추워지기 때문에 단단히 대비를 해야 해.” 두 겹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또 한 장의 담요를 덮어주었다. 세 겹의 담요가 누르는 무게로 인해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담요 안에 갇힌 형국이었는데도 가이드는 단호했다. “오늘 밤엔 바람이 심하게 불거야.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절대 담요 밖으로 나오지 마.”





밤이 깊어질수록 기온이 뚝뚝 떨어졌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으로 인해 모래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깔고 누워 있는 매트리스가 펄럭일 정도로 거셌지만, 텐트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별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었다. 드넓은 하늘을 촘촘하게 수놓은 별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별도 있었고 희미하게 빛나는 별도 있었고 깜빡거리는 별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별들이 머리 위해서 반짝이고 있었구나. 아무것도 없었던 게 아니라 보이지 않았던 거였어.


사막을 먼저 다녀온 여행자들이 말해주었다. 사막에 가면 반드시 별을 보고 와야 한다고. 어떤 장비로도 제대로 담아낼 수 없기에 직접 가서 눈으로 봐야 한다고. 와디럼에 오기 전까지는 와 닿지 않은 말이었다. 그러나 은빛 찬연한 별들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단번에 이해됐다. 사막의 하늘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득히 먼 곳에서 날아온 빛이었다.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크고 작은 빛들은 현재의 내가 볼 수 있는 과거의 우주였다. 세상의 모든 반짝임을 다 합쳐도 시공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따라갈 순 없었다. 


가슴이 저미도록 황홀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참아야 할 이유도 없었고 참고 싶지도 않아서 담요에 짓눌린 채로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차오를 때마다 아득해지던 별빛은 눈물이 흘러나올 때마다 선명해졌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어둠 속에서, 별들은 멀리서 찾아온 여행자를 부드럽게 비춰주었다. 그 벅찬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이란 눈으로 본 모든 것들을 마음 속에 차곡차곡 담아두는 것뿐이었다. 보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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