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조지 요새에 있는 박물관에 들어가자 관리인이 출입자 명부를 내밀었다. 이름을 꾹꾹 눌러쓰고 볼펜을 내려놓으려는 나에게 그가 연락처 칸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번호도 적어주세요.” 적을 수 있는 번호가 없다고 했더니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를 못한 것 같아서 다시 천천히 말해주었다. 저는 휴대폰이 없어요.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휴대폰이 없다고요?”
엄밀히 말하면 휴대폰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가져오지 않은 것뿐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피처폰을 쓰고 있었다. 피처폰 중에선 나름 최신 기종에 속했지만 외국에선 딱히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집을 나서기 직전에 전원을 꺼놓았다가 집에 돌아온 직후에 전원을 켰다. 가까운 사람들에겐 언제쯤 돌아올 예정이라고 알려줬기 때문에 오랫동안 전원이 꺼져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만한 사람은 없었다. 설령 누군가가 전화를 하더라도 받고 싶지 않은 연락일 확률이 높았으므로 휴대폰의 부재가 걱정된 적은 없었다.
세 번째 인도여행을 계획하던 시기엔 스마트폰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중이었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쓰고 있었지만 나는 꿋꿋하게 구닥다리 피처폰을 고집했다. 멀쩡한 물건을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버리고 싶지 않았고, 스마트폰의 편리함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편리함 속에는 언제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다는 장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확인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기 어렵고 연락받을 수 없다는 양해를 구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진 않았기에 언제까지나 피처폰만 쓸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시기 만큼은 최대한 늦추고 싶었다. 남들이 지금 쓴다고 나까지 지금 써야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불과 몇 년 만에 스마트폰은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여기엔 여행 방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에는 가이드북과 지도가 필수였다. 일정이 짧으면 인터넷으로 찾은 정보를 출력해서 가져가는 정도로도 충분했지만, 일정이 길면 가이드북을 구입하는 쪽이 더 나았다. 우리나라만큼 PC방이 많은 곳도, 인터넷 속도가 빠른 나라도 없었던 탓에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아날로그 모드로 전환됐다. 다른 책에 비하면 가이드북은 개정판이 빨리 나오는 편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에 비하면 업데이트 속도가 매우 느렸다. 가이드북과 지도만 의지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었다.
가장 흔하게 겪었던 건 길을 헤매는 일이었다. 지도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혹은 지도에 나온 위치를 착각해서 헤매기도 했지만, 변경된 길이 반영되지 않았거나 지도 자체의 오류로 인해 헤매기도 했다. 숙소를 구하는 일도 다르지 않았다. 처음엔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숙소 중에서 괜찮아 보이는 곳을 예약했는데, 막상 가보면 기대에 못 미칠 때가 많았다. 오히려 근처에 있는 다른 숙소나 최근에 지어진 숙소가 더 나은 경우가 허다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확인하는 작업은 귀찮고 수고로웠다. 빈방을 찾지 못할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방을 고를 수 있었기 때문에 혼자 여행하거나 장기 여행을 할 땐 대부분 발품을 팔았다. 다행스럽게도 방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제일 비싼 방에 묵어야 했던 적은 있었지만.
여행자의 일상은 부딪치며 해결해 나가는 순간들로 이루어졌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선 모든 것이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낯을 가리는 편이어서 웬만하면 스스로 처리하려 했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전개되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은 예상보다 자주 찾아왔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뭔가를 물어보려면 많은 용기와 약간의 뻔뻔함이 필요했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땐 손짓과 표정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했다. 지도를 펼쳐서 원하는 목적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노트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었다. 길 한가운데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말을 걸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기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여행을 시작했던 나에게 불편함은 여행의 일부일 뿐이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집과 같은 편안함을 기대한 적은 없었다. 설령 편안함을 느끼더라도 익숙한 공간에서 느끼는 편안함과는 결이 달랐다. 낯선 장소에 머무르기 위해선 감내해야 할 것들이 있었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으려면 감수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어느 나라를 가던지 하루는 24시간이었으나 이동하고 기다리고 시달리고 헤매고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었다. 여행을 하러 온 것인지 극기 훈련을 하러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힘들고 불편하고 꺼려지던 순간이 많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들로 인해 여행이 더 풍요로워졌다.
길을 잃는 바람에 남들이 가지 않는 곳과 현지인들만 아는 곳과 계획에 없던 곳에 갈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의사소통을 하다 보니 바디랭귀지와 눈치가 늘었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다가갔거나 혹은 먼저 손을 내밀어준 현지인들로부터 과분할 정도의 배려와 호의를 받았다. 지구 이곳저곳에서 온 여행자들과 교류하며 따끈따끈한 정보를 교환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여행은 필시 싱겁고 밋밋했을 것이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었고 사람 없는 사건도 없었다. 뜻밖의 이벤트는 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간에 기습적으로 벌어졌다. 종이책과 종이지도를 가지고 다녔던 여행은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는 나를 사람들 사이로 밀어 넣었다. 직접 가봐야 했고 직접 찾아야 했던 그 시절을 통해 나는 여행하는 법과 여행자가 되는 법, 그리고 여행자로 사는 법을 익혔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니 몇 명의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문득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본지 오래됐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변화는 이미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가이드북을 들여다보거나 카페에 앉아 수첩에 뭔가를 끼적거리거나 길에 서서 지도를 들여다보는 여행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여행이 당연해진 세상에서 나는 아날로그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체감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방문한 인도가 내 인생에서 마지막 아날로그 여행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느리고 불편한 방식에 거부감은 없었지만 그 방식을 고집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빠르고 편리한 방식으로 쉽게 넘어갈 수 없었던 건 아날로그와 이별하는 순간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익숙한 것에 대한 집착도, 과거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도 아니었다.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감정에 가까웠다. 당시엔 그저 그렇게 보였는데 지나놓고 보니 아름다웠던, 미숙하고 우왕좌왕했던 것 같은데 사실은 반짝거렸던, 영원할 줄 알았는데 찰나에 불과했던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애틋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