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좋은 이유는 ‘다름’을 경험하기 때문이었다. ‘다름’에는 문화나 언어뿐만 아니라 자연환경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막의 건조함, 아열대의 열기, 열대몬순의 폭우는 머리가 아닌 피부가 먼저 인식했다. 살갗이 갈라지거나 타들어가거나 축축해지는 느낌이 너무나 생생했던 터라 다른 시공간에 놓여 있음을 매 순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기후가 다르면 계절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는데도 낯선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어지러웠다. 각인된 계절의 이미지는 확고했으나 그것이 정해진 규칙은 아니었다. 하나의 계절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었다. 나에게 보여주는 얼굴과 다른 지역에 사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얼굴이 달랐다. 심지어 한 계절 안에 여러 얼굴이 나타나는 일도 흔했다.
기이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경험은 스위스에서 시작됐다. 7월에 방문한 스위스는 찌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연신 부채질을 해야 할 만큼은 뜨거웠다. 여름 날씨는 어디든 비슷한 것 같았기에 고도가 높은 지역으로 가면 기온이 낮아진다는 말이 과장처럼 들렸다. 이렇게 더운데 산에 올라간다고 극단적으로 추워질 리가 있나. 상대적으로 시원하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거겠지.
인터라켄에서 산악열차를 타는 순간까지도 텔레비전과 사진에서 본 풍경을 진짜로 보게 되리라는 기대는 없었다. 설경과 여름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고, 상상할 수 있는 조합도 아니었다. 동네 뒷산조차 오르지 않던 사람에게 해발 4천 미터는 가늠이 불가능한 높이였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맑고 선명한 풍경에 취해 있는 동안 몸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한 번에 쭉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환승을 해야 했는데, 내릴 때마다 피부에 닿는 공기의 질감이 달라졌다. 햇빛은 쨍쨍한 반면, 대기는 쌀쌀했다. 한여름에 에어컨을 끌어안고 있는 것 마냥 몸이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한참을 더 가야 했기 때문에 중간에 내린 마을에서 두툼한 맨투맨 티셔츠를 구입했다.
열차의 종착지인 융프라우는 장엄한 백색이었다. 중간 중간 눈이 조금씩 쌓여 있는 광경을 예상했다가 압도적인 설경과 마주하고 나니 말문이 막혀버렸다. 사방이 온통 눈으로 덮여 있는 것도 모자라 하늘마저 회청색이었던 탓에 한파에 갇혀버린 기분이 들었다. 높은 고도 탓에 조금만 걸어도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한 것 마냥 숨이 찼다. 마음은 저만치 가 있는데 몸은 여전히 이곳에 있었다. 뽀드득뽀드득 울음소리를 내는 차가운 냉기가 옷 속을 파고드는데도 정신이 들기는커녕 어지럽기만 했다. 이곳은 여름일까 겨울일까. 만년설로 뒤덮인 곳에서 계절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모호한 상태에 놓여 있다 보니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내가 살고 있는 계절은 여름이 맞는 걸까. 내가 서 있는 곳이 내가 진짜로 살고 있는 계절이 아닐까.
세계지도를 펼칠 때마다 유난히 눈에 띄는 나라들이 있었다. 인도도 그중 하나였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만 쭉 살아온 나에게 넓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풍경은 향신료 냄새만큼이나 생소했다. 미국과 중국이 국토 면적은 더 컸지만, 특정 도시에만 머물렀던 탓에 압도적인 크기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에 반해 인도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끊임없이 이동했기 때문에 드넓은 땅덩이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동거리가 길어질수록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도 늘어났다. 여행하러 온 것인지 차를 타러 온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마다 넓은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면 늘 감탄하곤 했다. 한 나라 안에 이토록 다양한 기후가 존재할 수 있다니!
멋모르고 떠난 첫 번째 여행에서 40도가 넘는 불볕더위를 경험했던 터라 두 번째 여행 시기는 신중하게 골랐다. 성수기를 피해 3월에 날아간 뭄바이는 이미 한여름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더위를 먹고 나니 남부 지역을 둘러보겠다는 계획을 실천할 자신이 없었다. 고심 끝에 원래의 루트를 포기하고 북쪽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뭄바이, 아우랑가바드, 엘로라, 뿌네, 아메다바드, 우다이푸르, 푸쉬카르, 델리까지 그악스럽게 따라오던 더위는 암리차르에 도착한 이후로는 한풀 꺾이는가 싶더니 달하우지에 도착한 뒤로는 완전히 사라졌다.
히말라야 산맥 산악지대에 있는 달하우지는 한낮에도 서늘했다. 밤에는 이불을 두 개나 덮고 자야 할 정도였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기후를 먼저 의식한 건 머리가 아닌 몸이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빴고 가만히 있어도 어지러웠다. 반팔티를 입고 긴팔 셔츠를 입고 도톰한 재킷까지 입었는데도 오톨도톨한 닭살은 사라지지 않았다. 감기에 걸리기 딱 좋은 상태였지만 조용하고 깨끗한 분위기에 반해서 며칠을 더 머물렀다. 워낙 작은 동네였던 탓에 익숙한 얼굴들이 금방 생겼다. 아는 체하는 상인들도 있었고, 말을 거는 동네 주민들도 있었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물어보는 도서관 사서도 있었다. 반평생을 달하우지에서 살아온 영국인 할머니의 집에 초대도 받았고, 휴가를 즐기러 온 인도 사람들도 만났다.
세상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산간 마을에선 바쁘게 움직일 일도, 급하게 처리할 일도 없었다. 여행 중에는 어쩔 수 없이 긴장하기 마련인데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어깨가 경직된 적이 없었다. 오르막길을 걸어도 숨이 가쁘지 않게 된 이후로는 경계심마저 사라졌다. 인도에 온 이후로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른 지역이 폭염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달력은 4월임을 말해주고 있었으나 봄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인도의 4월은 여름이었다. 동시에 가을이기도 했다.
한 달 사이에 세 개의 계절을 겪고 나니 내가 어떤 계절을 살고 있는지 꼬집어서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계절이 바뀌는 순서도 명확하지 않았다. 가을에 태어난 내가 실제로 살아온 계절의 순서는 ‘가을-겨울-봄-여름’이었다. 여행하기 전에는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계절을 산다고 생각했었다. 계절이 바뀌는 순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여기가 봄이라고 해서 저기도 봄인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여름 안에 있다고 해서 나도 여름 안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의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가을은 파종의 계절이 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길이와 순서가 제각기 다른 자기만의 계절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내가 살고 있는 계절을 안다고 말할 순 없지만, 혼자만 뒤처진 것 같고 혼자만 서투른 것 같아서 속상해질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조금 긴 혹한의 시기를 견디고 있는 중이라고. 이 계절이 지나가면 반드시 다른 계절이 찾아올 거라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 성장해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