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유정 Oct 21. 2023

귀국행 비행기

“베트남 가보지 않을래?” C와 함께 떠나기로 결심했을 무렵, 나는 혹독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지 6년째로 접어들었지만 가시적인 결과물이 없었고, 열정적으로 진행했던 일들이 허무하게 엎어졌으며, 야심차게 도전했던 공모전들은 응모하는 족족 떨어졌다. 글을 써서 돈을 벌긴 했으나 생계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당장 돈이 되는 글을 써야 했기에 정작 쓰고 싶은 글은 쓰지도 못했으며, 그런 상황 속에서 겨우겨우 완성한 작품들은 세상으로 내보낼 기회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회사 다니는 동안 알뜰살뜰 모아두었던 돈까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고생스러운 길이 될 것은 예상했으나 끊임없이 의심하게 될 줄은 몰랐다. 과연 나에게 재능이란 게 있기는 한 것인지, 이 선택이 맞는 것인지, 계속 버텨도 괜찮은 것인지. 해마다 고민하고 날마다 걱정하고 때마다 번민했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는 몸에 붙어 있는 살부터 훔쳐갔다. 왜 살이 빠졌냐고 물으면 그냥 웃어주었다. 어떻게 해야 살이 빠지냐고 물으면 글을 쓰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체험에 근거한 비법을 알려줘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반문했다.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살이 더 찌지 않아?”


답보 상태에 놓인 현실만으로도 벅찰 지경인데 건강까지 나빠질 기미가 보이자 초조함이 밀려왔다. 도전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때로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했다. 너무 늦기 전에 그만두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글을 쓰지 않으면 다른 일을 해야 했다. 예전에 하던 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다시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다시 할 수도 없었다. 경력이 단절된 나를 굳이 채용할 회사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십대부터 시작된 진로 고민을 삼십대까지 하게 되다니.


고뇌가 깊어질수록 숨통이 조여들었다. 우두커니 앉아서 한숨만 토해봤자 뾰족한 수가 나올 리 없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부터 식혀야 했다. 낯선 곳에 가면 최소한 기분전환은 될 터였다. 글과 헤어지기로 작정했으니 이별 여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베트남에 가서 훌훌 털어버리자. 앞날에 대한 모색은 그 다음에 해도 돼. 일정이 정해지자마자 항공권부터 구입했다. 서울·인천 출발, 호치민 도착. 이메일로 받은 전자항공권을 보니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어졌다.     





4월의 호치민은 지글지글 끓었다. 미지근한 봄에서 뜨거운 여름으로 넘어온 몸은 작열하는 태양과 들러붙는 습기에 쉬이 적응하지 못했다. 요란스러운 오토바이 행렬에 정신이 혼곤해졌지만, 호흡할 때마다 들락거리는 생소한 공기만으로도 희열이 느껴졌다. 비장한 마음으로 떠나온 탓에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괜한 기우였다. 낯선 곳이 좋은 이유는 새롭기 때문이었다. 오감을 자극하는 새로움이 사방에 널려 있는데다가 C와 늘 함께 있다 보니 집에 두고 온 현실을 곱씹거나 되새길 여유가 없었다. 


고대 베트남의 수도 후에, 어여쁜 항구도시 호이안, 선선한 고원도시 달랏을 여행하는 동안 C와 나는 유적지를 방문하고, 축제를 즐기고, 시장을 구경하고, 왕궁을 거닐고, 골목을 탐험하고, 예술품을 감상하고, 반나절 투어에 참여했다. 극단적 단맛과 궁극의 쓴맛이 조화를 이룬 커피에 기꺼이 중독됐고, 진한 육수와 보들보들한 면이 합일의 경지에 이룬 쌀국수에 흔쾌히 매료됐다. 


이렇게 좋은 곳에 왜 이제야 왔을까. 동남아시아가 궁금해서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를 여행했지만 이상하게도 베트남엔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끌리지 않는 곳이었기에 당연히 여행지 후보에 오른 적도 없었다. C와 함께 가는 것이 아니었다면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나라였건만,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는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찾아올 것을. 마음이 여유로울 때 왔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C와 나는 다른 지역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같은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최대한 비슷한 항공편을 골랐음에도 열 몇 시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C보다 하루 일찍 도착한 나는 C보다 하루 일찍 떠나야 했다.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혼자 공항으로 갔다. 탑승할 비행기는 자정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어둠의 농도가 짙어지고 있었지만 공항은 출국하려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마냥 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비행기에 올랐다. 잠잘 준비를 하느라 소란스러웠던 기내는 소등과 동시에 조용해졌다. 


꼬물거리며 담요를 덮고 있는데 옆 좌석에 앉은 여자가 신발을 벗더니 내 좌석 쪽으로 다리를 뻗었다. 남의 자리를 침범하는 것도 모자라 발로 내 허벅지를 밀어내기까지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정중하게 부탁했다. 저기요, 발 좀 치워주세요. 여자는 못 들은 체 하며 눈을 감았다. 말이 안 통하면 힘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허벅지를 누르고 있는 무례한 발을 거칠게 밀어냈다. 슬며시 실눈을 뜬 여자는 의자 위에 억지로 걸쳐 놓았던 두 발을 마지못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몇 초 만에 곯아떨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고 있는 여자의 옆얼굴을 보니 기가 찼다. 화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지만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와 옆자리 여자의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끊임없이 신경을 긁어댔다. 참다못해 담요를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썼다. 희붐했던 어둠이 먹물처럼 진해졌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음과도 단절됐다.


담요로 둘러싸인 세상은 적막했다. 갑갑한 공기를 몇 차례 호흡하니 뜨거운 덩어리 같은 것이 울컥 올라왔다. 코가 찡해지면서 눈시울이 화끈거렸다. 도망치듯 떠나왔던 곳으로 떠밀리듯 돌아가고 있구나. 장맛비처럼 툭툭 떨어지던 눈물은 어느새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굵은 빗줄기처럼 뺨을 적셨다. 여행하는 동안 모든 종류의 미련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지만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다. 글쟁이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리라는 다짐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었을 뿐, 티끌만큼의 진심도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내려놓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서러웠다. 뜨거운 눈물이 지나간 자리가 쓰라렸으나 닦아낼 기운조차 없었다. 그렇게 담요를 뒤집어 쓴 채로 소리 없이 울었다. 인천공항에 착륙할 때까지.     




집에 오자마자 기절하듯 뻗어버렸다. 퉁퉁 부은 눈으로 밤을 지새운 몸은 익숙한 자리에 눕혀놓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땐 이미 저녁이었다. 푹 잔 것 같기는 한데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몸이 조금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띵한 것 같기도 한 것이 컨디션이 영 이상했다. 밥맛이 없었지만 꾸역꾸역 저녁을 먹은 뒤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열이 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한밤중이 되어서였다. 보통 하룻밤 지나고 나면 열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어쩐 일인지 상태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일은 없었지만 열이 점점 더 오르는 듯해서 동네 병원을 찾아갔다. 처방받은 약을 며칠 동안 먹었는데도 열은 내려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목도 안 아프고, 기침도 안 나오고, 코고 안 막히고, 콧물도 안 나오는데, 도대체 왜 열이 나는 걸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풍토병이었다. 뎅기열이나 말라리아에 걸렸을지도 몰라. 베트남 여행 중에 모기에 물린 적은 없었다. 열이 나는 것 말곤 비슷한 증상도 없었다. 불안해서 다시 동네 병원을 찾아갔다.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온화했던 선생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혼잡한 종합병원에서 감염내과는 그나마 덜 붐비는 축에 속하는 곳이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체온을 확인하던 선생님은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며칠 동안 고열이 났다고 하셨죠? 그런데 지금은 열이 많이 떨어진 상태예요. 제 생각엔 힘든 고비를 다 넘기신 것 같네요. 이삼일 정도 지나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다소 극단적인 상황까지 상상했던 터라 당혹감이 밀려왔다. 약만 먹으면 되는 건가요?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안 드셔도 될 것 같습니다. 며칠 지켜보시다가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다시 오세요.” 




    

병원에 다녀온 지 삼일 째 되는 날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컨디션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체중까지 줄다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지쳤다.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도 힘에 부쳤다.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내는 상황에선 책을 읽는 것 외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지고 있던 책을 읽고 나니 새로운 책을 읽고 싶어졌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휘청휘청 도서관으로 갔다. 몇 권의 책을 짊어지고 다시 휘청휘청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는 사이, 잃어버렸던 입맛을 되찾았다. 홀쭉했던 얼굴에 살이 올랐고, 퀭하던 눈에도 생기가 돌았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힘이 생기는 게 느껴졌다. 몸이 회복되고 있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마음이 무겁지도, 머리가 뜨겁지도 않았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노트북을 펼치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부에 고여 있던 상념과 심상이 빨리 내보내 달라며 아우성쳤다. 조심스럽게 연 문서는 광야를 연상시켰다. 길이 없는 곳을 걸어가는 일은 여전히 암담했지만, 어느 방향으로든 일단 가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지 뭐. 키보드에 손을 얹고 쓰고 지우고 쓰고 고치고 쓰고 고민하길 반복했다. 자음과 모음이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문단이 되고, 문단이 모여 한 편의 글이 될 때까지.        


        

이전 24화 굿바이, 아날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