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지잡대 청년이 서울로 향하다.
# 6. 마지막 탈출기회
사수의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교묘하고 악랄해졌다. 말을 못 알아듣겠으니 사투리를 쓰지 말라고 하고, 어깨 너머로 배우고 싶어 옆에 서 있으면 못하게 했다. 점심시간이나 저녁 술자리에도 일부로 따돌리거나 몰래 하는 게 느껴졌다. 순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나는 이때부터 독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인턴 평가 기간 동안 나를 제외한 3인은 야단을 맞거나 주눅 든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에게 3개월은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매일 밤 다음날 회사 가기가 두려워 잠을 설쳤다. 기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어도 시간은 흘렀다. 드디어 최종 과제 평가만 남았다. 금요일 퇴근 무렵 인턴 4명에게 도면 1장씩을 나눠주었다. 마지막 과제였고 월요일 출근하면서 제출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실무 평가에서 누가 봐도 꼴찌는 나였다. 최종 과제에 내 인생이 걸렸다. 사활을 걸어야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도면을 펼치고 과제에 몰입했다. 이틀밤을 지새웠고 식사는 건너뛰었다. 일요일 저녁에 도면은 완성됐고 그제야 나는 도면 밖으로 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았다. 최종 2인에 뽑히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으니 결과에 승복하려고 했다. 그게 내 실력이고 운명이기에. 최종 결과 발표는 화요일 오전에 있었다. 인턴 4명은 부서장 방으로 호출됐다.
"3개월 동안 고생 많았고 4명 모두 열심히 잘해줬습니다. 2명만 남게 되어 매우 아쉽지만 떨어졌다고 해서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젊고 많은 기회가 여러분께 있습니다. 그리고 업계에 남아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니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부서장의 인사말과 함께 최종 2인을 발표했다. 그때가 끌려다니는 삶으로부터 마지막 탈출 기회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운명은 언제나 어긋나기 마련이다.
최종 과제를 큰 점수 차이로 1등을 하고 나는 최종 2인에 포함됐다. 이틀간 식음을 전폐하고 밤까지 지새워가며 만든 도면과 2~3시간 들여서 만든 도면은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정성의 차이가 보였다. 노력과 정성의 승리였다. 내 삶의 전반기는 이미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때 정해졌다. 내가 선택했고 선택한 삶을 살게 됐다. 나는 그렇게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