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울, 서울 아가씨를 만나다.
# 2. 방황하는 자의 외로움
아무런 의미 없는 시간들은 계속됐다. 삶에 주인공으로 살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하며 좌절하는 게 아니라 돈 없는 신세에 무너졌다. 초점 없는 눈빛과 축 처진 어깨, 어딜봐도 패배자의 모습이었다. 안타깝게도 원인을 찾지 않았고 인생은 원래 그런 줄 알았다. 눈빛이 살아나고 활력이 넘칠 때는 월급이 들어와 통장이 가득찼을때였다. 친구들과 만나 즐길 생각으로 잠시 행복했다.
내 인생에 다음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면 그만이었다. 철학적으로 아주 훌륭한 생각이지만 쾌락에 한정된 안타까운 생각이었다. 화려한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자극적인 음식과 독한 술을 곁들이는 시간이 끝나면 지독한 고독의 시간이 찾아왔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한 칸의 좁은 방에 어둠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지만 엄습해오는 무언가에 대한 상실감은 나를 괴롭혔다. 믿을 만한 빽도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모든 걸 날려버리는 내가 한없이 가여워 보였다.
돈이 없는 주말에는 자연스레 집에만 있었다. 정오가 지나서야 겨우 일어나 컵라면 하나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하늘이 어스름해지면 어김없이 친구들의 전화가 왔다. "나와, 소주나 한 잔 하자." 어제 숙취가 채 가시지 않았는데 주술에 걸린 듯 긍정의 신호를 보낸다. 통장에는 돈이 없지만 나에게는 신용 카드가 있었다. 든든한 신용 카드를 챙겨들고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하루는 온종일 집에 있었던 적이 있다. 온갖 상념에 사로잡히다가 나라는 존재를 지우고 싶은 상태까지 이어졌다. 삶 자체를 부정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엉망진창인 방을 보면 더 그랬다. 청소를 하고 집안이 깨끗해 지면 마음은 조금 잦아들었다. 그러나 다른 감정이 나를 가만히 두지 못했다. 외로움...내가 가장 싫어했던 감정이었다. 무일푼인 비루한 내 삶에서 연애는 사치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사랑은 대학 캠퍼스의 낭만을 느낄때나 하는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한 달 벌어 한 달 겨우 살아내는 내 처지에 연애는 언감생심이었다.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포기하지도 못하겠고, 한 편으로는 사랑을 전제로 한 연애까지 하고 싶은 이율배반적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다행히 친구들도 하나씩 주변 사람들의 소개로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저절로 친구들의 만남은 뜸해졌다. 집에 있는 시간들이 늘었고 나의 외로움은 풍선처럼 부풀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촌놈에다 모아 둔 돈도 없고 월급도 쥐꼬리만한 남자를 만나 줄 천사같은 여자가 어딘가에 있을까? 운동은 전혀 하지 않고 방탕한 생활에 찌들어 살이 찐 내모습을 보고 반해줄 사람이 있을까? 조그만 방에서 스스로를 조금씩 갈아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점점 작아졌고 삶의 재미를 잃어갔다.
어느날 티비를 보다가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다. 곧장 을지로에 있는 애견샵으로 향했고 현금으로 거금을 주고 강아지를 한 마리 데리고 왔다. 강아지가 내 방에 온 첫날 우리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강아지에 푹 빠져 친구들이 불러도 나가지 않았다. 내 월급은 이제 술값이 아닌 강아지에게 옮겨갔다. 힘든 날도 즐거운 날도 강아지는 늘 한결 같이 나를 반겼다. 연애 따위는 필요없었다. 같이 먹고 자고 산책하고 강아지가 최고의 파트너였다. 그렇게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내 삶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좋은 날만 계속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 나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반려견과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고 싶어서 이사를 계획했다. 부동산 지식이 전무한 나는 용감 했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고 덜컥 전세 계약을 하고 계약금까지 보냈다. 그리고는 지금 살던 집 주인에게 나가겠다고 보증금을 달라고 찾아갔다. 집주인은 아직 전세계약이 만료되지 않았고 세입자를 구하기 전에는 돈을 주지 못하겠다고 했다.
내 돈을 달라는 건데 도무지 이해 안되는 집주인 말에 손이 벌벌 떨리고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억울한 마음과 흥분된 상태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부모님의 말을 듣고 난 후 나의 실수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계약금을 날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내 형편으로 계약금을 날리면 삶이 흔들릴 수 있는 정도였다. 집주인을 붙잡고 사정을 해도 소용없는 상황이라 나는 계약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좋은 집에서 반려견과 행복하게 살려고 했다가 오히려 강아지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계약금을 잃은 나는 더 이상 강아지를 키울 형편이 안되었다. 결국 사랑스런 나의 파트너를 다른 사람에게 입양 보냈고 다시 홀로 차가운 조그만 방에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