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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진 Mar 13. 2024

늦은 겨울밤, 불 꺼진 세상을 달린다.


'금요일 밤의 야근'


으레 직장인이라면 3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아침에 운동을 하는 자, 저녁에 운동을 하는 자, 운동을 하지 않는 자. 나는 다행스럽게도 저녁에 운동을 하는 종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가 신나게 공기를 가르고 있으면 복잡했던 생각과 잡념이 사라지고 좋은 기분만 남는다.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 해소 겸 운동을 나간다. 하지만 모든 날을 뛸 수 있는 건 아니다. 직장인에겐 야근이라는 철천지 원수와도 같은 파트너가 있다. 이 녀석과는 결별하고 싶어도 정 때문인지 헤어질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야근과 함께한다.


금요일 퇴근 시간쯤이었다. 한통의 전화가 울린다. '띠링~띠링~' 그때 사무실의 모두는 생각했을 것이다. "누가 금요일 퇴근시간에 전화를 해.. 미쳤나 봐.." 그리고 직급 순인지 연차 순인지는 몰라도 윗사람부터 내 앞에서 모습을 감춘다. 얼떨결에 가장 늦게 준비하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 늦은 후회였다. 전화 속 사람은 오늘까지 꼭 나가야 하는 보고서가 있는데 오늘까지 꼭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걸 왜 지금 말해.."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꾹 눌렀다. 그리고 부장님을 쳐다보며 눈빛으로 SOS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부장님은 서류 가방을 힘차게 들어 올리더니 "수고해!" 한마디 하고 가버리셨다. 정말 매정한 사람.. 나는 그렇게 치맥의 꿈을 잠시 접어둔 채 야근을 하게 되었다.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왔다. 밤 10시다. 기분은 안 좋았지만 그래도 내일은 휴일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문뜩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달릴까?" 이 생각은 맥주로 샤워 예정이었던 내 간의 건강을 지켰으니 지킨 김에 더욱 건강해져 볼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즉각 행동으로 옮겨져 나는 야간 러닝을 시작했다.






'불 꺼진 공원의 살기'


내가 평소에 뛰는 공원은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해있으며, 그 가운데 큰 축구장이 있고, 그 주위를 도보와 러닝 트랙이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그래서 보통 축구 경기가 끝나는 시간에는 공원에 모든 불이 소등된다. 그야말로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는 암흑천지라는 말이 어울린다. 나는 용감하게도 그런 트랙에 몸을 실었다. 준비! 땅! 달리기 시작한 나는 곧바로 온몸에 소름을 느꼈다. 텅 빈 축구장이 주는 공허함이 갑자기 나를 덮쳤고 즉각 공포로 이어졌다. 드넓은 암흑이 계속해서 팽창했고 나는 끊임없이 작아졌다. '잡. 아. 먹. 힌. 다.' 실로 엄청난 공포였다. 나는 전속력으로 트랙을 빠져나왔다. 누가 내 모습을 봤다면 마치 뒤에 큰 코끼리라도 따라오는 듯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헉헉.." 그날따라 겨울바람조차도 더 날카롭게 느껴졌다. 나는 장소를 변경하기로 마음먹었다.





'가로수와 달'


겁쟁이의 도피가 이어졌다. 그대로 쭉 달려 나오니 세상 안전해 보이는 보도블록이 나왔다. 사람이 없는 건 동일했지만 가로등이 곳곳에 있어서 겁쟁이 코스로 딱이었다. 그곳에서만큼은 나도 어둠을 물리치는 슈퍼히어로가 된듯한 착각을 하며 달린다. 한참을 달리니 보도블럭에 규칙적으로 놓여진 가로수 군락이 보인다. 그리고 그 나뭇가지 사이로 달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달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것 같았다. 한발자국, 한발자국을 앞으로 나아갈때마다 달은 나뭇가지에 걸렸다, 빠졌다를 반복했다. 아까의 공포는 다 잊고 동심으로 돌아간 듯 계속 달을 나무에 걸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달아 미안해... 그래도 덕분에 키로수(Km)는 채웠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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