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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Apr 22. 2024

살충의 추억

순도 100의 모성애는 결국

벌레 싫어하기 대회라도 있다면 금메달을 딸 자신이 있다. 자랑은 아니고, 꽤 부끄럽다. 지적으로, 심적으로 나름대로 극복해보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안 되더라. 그냥... 벌레 없는 매트릭스로 가고 싶다.


어릴 때 벌레를 보고 까무러칠 것처럼 놀라면, 엄마는 저벅저벅 와서 손으로 텁, 하고 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까지는 아니어도)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이미 밝혔듯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한테 바락바락 대든 바로 그날에 벌레가 나와서 소리를 지르면, 엄마는 저벅저벅 와서 역시 손으로 텁, 하고 잡고는 "네가 더 무섭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내 방을 떠났다. 엄마의 든든한 뒷모습을 보노라면, 사춘기의 반항심은 쪼그라들곤 했다.


다 커서 돈을 벌 때에도, 한밤에 집에서 자던 아기 조카들을 다 깨울 만큼 비명을 질렀다. 엄마는 이번에도 저벅저벅, 텁, 하고서 내게 들이대는("으허억!") 시늉을 하며 말했다. "얘가 너를 무서워하지, 네가 얘를 무서워하냐."


엄마처럼 손으로 잡지는 못하고 휴지를 둘둘 말아야 했지만, 내가 소리 지르면 후다닥 달려와 타박 없이 벌레를 잡아주는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사랑의 마음으로 방역을 철저히 했고, 그 때문인지 신혼집에는 벌레가 출몰하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어-쩌다' 그런 일이 남편이 없을 때 일어나면, 나는 하루 종일 '현장'에서 가장 먼 곳에 붙박이처럼 얼어 있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찾아내 해결하길 요청했다. 운 좋게 가능한 날도 있었고, 아닌 날도 있었다. 아닌 날에는 남편이 이중, 삼중으로 컴배트 같은 것들을 붙였지만, 나는 며칠 괴로웠다.


이러니 아이가 생겼을 때, 오만 가지 근심걱정 사이에서 '아이랑 둘이 있을 때 벌레가 나타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응당 그날은 오고야 말았고,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던 비명도 눌러 삼키고, 온몸에 식은땀을 폭발시킨 채, 울면서 벌레를 잡았던 것이다. 이런 게 모성애구나! 내가 그토록 선명하게 모성애를 느낀 적은 없었다. 순도 100의 모성애였다.





지성인으로서, 언제까지나 모성애에 의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언제나, 번번이 끔찍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나였던 것이다. 사랑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변화된 행동을 가능하게 할 뿐인 걸까?


어쨌거나 나는 첫째와 둘째를 생태어린이집에 보냈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함께 자랐으면 하는 바람, 자연 안에서 가장 생기 있고 아이답고 행복할 거란 믿음...과 나란히, 그 모든 자연에 익숙해져서 나처럼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


(나는 잠자리와 메뚜기는 만질 수도 있고, 거미는 조금 무섭지만 혐오하지는 않고, 파리는 무서워하지도 혐오스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모기만큼은 손으로도 잡는다. 오래 궁구한 끝에, 유년의 때에 얼마나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그들을 접했는지가 차이를 만든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은 수시로 텃밭활동을 하고, 사육장의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이런저런 생물 관찰하기와 키우기 활동을 했다. 달팽이를 볼 때마다 데려오고, 길바닥에 나온 지렁이를 손으로 옮겨주고, 선물이라며 내민 고이 접은 나뭇잎을 펼치면 애벌레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속으로 기겁했지만, 겉으로는 없는 진심이 티 나지 않게 열성적으로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이 사람을 언제까지나 속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엄마가 벌레와 벌레를 비롯한 이래저래 움직이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싫어하는 걸 넘어서 무서워한다는 걸 눈치챘다.


벌레를 싫어하는 것, 징그럽게 여기는 것, 혐오스러워하는 것, 그래서 무서워하고 피하는 것을 모델링하지 않도록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노력했는데도 말이다. 이성을 붙들고 비명은 삼켰어도, 순간적으로 경직되는 몸과 얼굴에 이는 경악의 표정, 덜덜 떨면서 벌레와 마주거하거나 남편을 필사적으로 부르며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아이들은 의아한 얼굴로 묻곤 했다.




엄마, 이게 무서워?




나는 한편으로 들켰다 싶고, 엄마로서 어쩐지 부끄러운 한편, 마치 절대반지를 발견한 것만 같은 기쁨을 조용히 느꼈다. 그러니까, '교육'의 힘을, 교육의 결과로 나를 닮지 않은 자식을 눈앞에서 본 것이었다.





얼마 전엔 긴장이 풀렸던지, 오랜만에 나타난 바퀴벌레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세 아이들이 놀라서 뛰쳐 왔다. (남편은 부재중)


비명의 원인이 벌레라는 걸 알고는, 탄식이 이어졌다. "엄마, 진짜 깜짝 놀랐잖아." "난 또..." 그러면서 뭐가 그렇게 끔찍하다는 거냐며 관찰을... 나는 바들바들 떨며 울 것 같은 얼굴로 신문지를 찾았다. 이대로 없어지면 한동안 괴로울 것이다. 꾹꾹 눌러놓고 남편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엄마, 내가 잡아줄게.




나의 13세 첫째가 휴지를 가지고 저벅저벅 걸어와, 바퀴벌레를 잡은 다음 변기에 넣었다. 그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자기 할 일을 하러 갔다. 나는 그녀에게서 후광을 보았다.


그날 밤만큼은, 내가 이리도 자식을 잘 키웠단 말인가, 하고 행복의 말들을 곱씹고 곱씹었다. 벌레 없는 매트릭스였다면 몰랐을 진실의 맛이었다.



달팽이 하나에 추억과, 달팽이 하나에 사랑과, 달팽이 하나에 쓸쓸함과, 글과, 어머니와 딸… 아름다운 말 하나씩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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