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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Jun 24. 2024

8주. 천천히 선생님

내 안에서 언제나 아웃사이더이자 마이너리티였던 목소리

운동으로서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고, 생각보다 할 만하다는 데 기분이 좋았었다. 물론 런데이 훈련코스를 따랐을 때의 이야기다. 1분 달리고 2분 걷는 걸 한 세트로 5회 전후, 그러다 1분 30초 달리고 2분 걷기를 5회 전후, 그다음은 2분 달리고... 이런 식.


멋모르고 하라는 대로 하다가, 힘들다고 느껴지는 타이밍이 늦어지고 페이스가 좋아지는 걸 보자, 내 쪽에서도 자기주장이 생겼다. 이렇게 해보겠습니다, 저렇게 해도 될 것 같은데요?


결과는 무릎 부상이었고, 타격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에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쉬면서 생각이 앞서갔다. 좌절감에 지지 않으려고 더 많이 꿈을 꾸고 더 이를 갈았다. 근력운동도 했지만.


무릎의 눈치를 보며 다시 달리면서 성장과 상승세의 리듬을 놓쳤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 사나흘 만에 달리면, 딱 제자리걸음이었다. 이전의 훈련을 딛고 올라선다는 체감이 없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고 했던 훈련을 반복해서 했는데도, 여전히 3분, 3분 30초를 달리고 나면 숨이 찼다. 벌써 이렇게 힘들면 어떻게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지? 아니, 당장 다음 훈련을 해낼 수 있을까?


그렇게 마음이 급해졌다. 몸보다 생각이, 그리고 마음까지 앞섰다.





한 번은 무릎 주변 근육의 힘이 약해서, 또 한 번은 실망스러운 자신을 견디는 힘이 약해서 고비를 겪었다. 내가 그것을 '고비'라 칭하는 이유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주 글을 쓰고 나서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글을 쓰는 일은 정리이기도 했지만 선언이기도 했다.


차곡차곡 성장해서 놀랄 만한 목표를 성취하겠다는 마음을 정중히 퇴장시키자, 내 안에서 언제나 아웃사이더이자 마이너리티였던 목소리가 가만히 보였다. 한번 엄청 천천히 달려보면 어때?


달리기 관련 책이나 영상에서 자주 언급됐던 'LSD'(Long Slow Distance)가 스쳤다. 이미 느리게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욱더 느리게, 아주 천천히 달렸다. 런데이 코치가 누누이 말했던, '달리면서 옆 사람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이렇게 달리는 게 걷는 거랑 다를 게 뭐야, 싶을 정도로.

  


쉬운 연속 달리기의 목적은 훈련 프로그램의 더 강도 높은 훈련에 부하를 더 많이 추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유산소 기초 체력을 조성하는 것이다.
쉬운 연속 달리기를 통해 운동량이 축적되면 지구력이 향상되고 모세혈관과 미토콘드리아가 늘어나며 장거리 달리기의 경우 미래의 목표 거리를 완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ㅡ크리스 네이피어, <달리기의 과학>



그러니까 만약 내가 달리면서 지나치는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다 치면(전혀 그러지 않을 수는 없는데), '달리는 나'를 보며 자극을 받는 게 아니라, '음? 뭐 하는 거지?' 의아해할 만도 하게 달렸다.


그랬더니 3분이 지나도 숨이 차지 않았고, 5분이 지나도 힘들지 않았다. 10분을 달려도 계속 달릴 수 있었고, 15분쯤에도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나가떨어지면 안 되니까) 1-2분쯤 걸었다. 그리고 한 번 더 그렇게, 30분을 달렸다. 속옷을 흠뻑 적실 정도로 땀이 났지만(날씨 탓도 있겠다), 녹초가 되지 않았다. 아, 런데이 코치를 비롯해서 여러 트레이너가 말했었지. 달리기 후 '더 달려도 될 것 같은데?' 싶을 정도로 달리라고. 오랜만에 그런 느낌이었다.


이 기록이 의아하고도 자극적이어서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렇게 달렸다. 무릎의 심기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이런 식으로라면 하루 일과로서 달리기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와 싸우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고,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도 달리기의 속도와 거리를 늘려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10월에 있을 10킬로 마라톤 경주를 괴롭지 않게 완주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그제야 내가 꿈꾸지 않았던 방식으로 다른 궤도에 올랐다는 걸 깨달았고, 내 마음도 사뿐, 다른 궤도를 탔다.




요약

달리기가 힘들다면 아주 천천히 달리자(LSD). 더 멀리, 더 오래, 그리고 더 길게 달릴 수 있을 것이다.


가보자고!


한두 번은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게 달리고, 두세 번은 천천히 달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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