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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Jul 15. 2024

11주. 실수와 좌절로 점철된

불상사의 기록

내가 정말 왜 이럴까 싶었다. 또 무리를 하고 말았다. 사실, 내가 조금 무리를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것은, 이 정도의 무리를 내 몸이 견딜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그렇다, 정말 몰랐다.


7월부터는, 처음에 계획한 대로, 아침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두 달 동안 이리저리 해본 결과, 낮 달리기도 저녁 달리기도 밤 달리기도 이래저래 좋았다. 하지만 달리기를 '일과'로서 받아들이고 싶었고, 내 생활에는 아침 시간이 가장 안정적이었다.


마침 내가 다니는 요가원에는 일주일에 두 번 새벽요가가 있었고, 해보니 훌륭했다. 운동계획이 세워졌다. 좋아, 일주일에 서너 번 달리기를 하고, 두 번은 요가를 하면 되겠군.


한 가지 더. 틈틈이 근력운동을 하기 위해 덤벨을 샀다. 건강검진 인바디 결과, 상체의 근육량이 표준 이하였다. 하체뿐 아니라 상체 근력운동도 하기로 했다. 그래, 고루고루 탄탄하게.   


(사실 나는 근력운동을 좀 하찮게 여겼다. 근육이란 운동의 결과로 자연스레 따라오는 거지, 어떻게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나? 근육을 만들기 위해 특정 동작을 반복하는 행위는, 보통의 스포츠와 다르게, 멋있기는커녕 솔직히 좀... 바보같이 보였다. 하지만 근육/근력이 운동을 잘하기 위해 필요하고 중요한 '수단'이라는 걸 절절히 깨닫고, 평생 할 생각이 없던 그 행위를 열심히 하고 있다. 역시 그 모습은 조금 우스운 구석이 있는 것 같지만, 내 마음은 진지하다. 결코 얄팍한 목적의식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도 그런가? 하는 생각을 흐르는 땀이 뚝, 떨어질 때마다 하고 있다.)





이렇게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면, 좋아하는 운동이 생기고 기록이나 체형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 왠지 지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조깅 속도가 빨라지면 자신감이 붙기 마련이고, 근력운동으로 근육질 몸매를 갖게 되면 자신이 강해졌다는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정도 되면 '나는 조깅이 좋아', '난 근력운동이 좋아', '난 수영이 좋아' 하고 애착이 가는 종목이 생긴다.
그런데 이렇게 운동하는 습관을 들인 사람들이 마음에 맞는 운동을 찾게 되면 지나치게 철저히 연습하는 경향이 있다. (중략) 벌써 40년을 스포츠의학과 건강과학 연구에 매진하고서도 나이가 들어서 젊을 때처럼 운동하면 다칠 수 있다는 명료한 사실을 몸소 체험하고서야 실감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게을러서, 혹은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지 본인이 좋아서 한다면야 많이 할수록 더 좋은 거 아니겠냐고 쉽게 넘겨버린다. 하지만 의학과 스포츠를 함께 연구한 나는 지나치거나 잘못된 운동이 유발시키는 불상사를 너무도 많이 목격했다.

ㅡ다나카 기요지, <그 운동, 독이 됩니다>



계속되는 비 예보에, (여차하면 '우중런'도 해봐야지, 하긴 했어도) 비가 오지 않으면 일단 나가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축축 처지는 날씨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할 만했다. 샤워하기 전에 남은 힘이 아까워 운동을 보탰다. 달리기 후 요가를 하고, 요가 후 근력운동을 하면서 쾌감을 느꼈다. 이렇게 땀을 흘리는데 몸무게는 요지부동이니 먹는 것을 조금 줄여야겠다 생각했다(나는 원래 먹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으로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먹는 것에 매우 후하다). 웬만하면 공복 운동이 좋을 거라 여겼다.


지난주 어느 날, 덥고 지치는 날씨와 오랜 공복과 과한 운동이 (내 친구 수면 부족까지 더해) 묘하게 착 맞아떨어진 날, 나는 전에 없던 피로를 느꼈다. 머리가 멍하고 띵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고, 기력이 달려서 움직임이 느렸다. (저혈압과 저혈당 증세였던 듯하다.) 근육통이 고통스럽게 느껴졌고, 무릎도 다시 아팠다. 결정적으로 심장 부근에 통증이 있었다.


밥을 많이 먹어도, 낮잠과 밤잠을 충분히 자도 잘 회복이 되지 않았다(이럴 수가..!). 사나흘, 일상적인 움직임에도 출산 후처럼 온몸이 곡소리를 해댔다. 그냥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운이 없었다. 5월 1일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이런 식으로,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었다.


이 지경이 되어가는 중에도, 달리기를 시도하고 근력운동을 쉬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어떻게 된 게 아닐까? 단전에서 솟아오르는 의문에도 힘을 그러모아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했던 것은, 이런 괴로움이 '더 건강한' 내가 되기 위해 당연히 지나쳐야 할 통과의례려니,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회복은 요원하고 달리기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판단이 들자, 이게 정말 '통과의례'라 할지라도 지날 필요가 없다는(어쩌면 지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얼마나 대단하게 건강해져야 하는 건데? 나는 그냥 달리기를 좀 하고 싶을 뿐이잖아.


그러니까, 나는 또 무리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조금 잘 되어간다고 박차를 가하면서. 조급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 줄 알았는데, 더 능란하게 조급했다.





6개월 동안 달리기를 하고 매주 그 과정에 대해 글로 쓰기로 했을 때, 어쨌거나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변화와 성장의 기록이 되리라 예상했다. 이렇게 실수와 좌절로 점철된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씁쓸하다.


부끄럽고 슬프기도 하다. 마치 어쩌다 레버를 눌렀더니 먹이가 나왔다고 쉼 없이 레버를 누르는 실험용 쥐가 된 것 같다. 계단을 올라서 상금이 늘어난 것 같은데? 싶자, 죽을 만큼 고생하면서 계단을 오르내렸던 <더 8 쇼>의 참가자들도 떠오른다. 우연을 필연으로 착각했던 그들의 판단 착오보다, 필요 이상을 갈망하면서 내뿜는 열심이 더 어리석고 더 위험했다.


다른 생명체들을 보면서는 잘도 깨달으면서, 내 일이 되면 왜 다시 제로베이스가 될까? 오늘 상태가 좀 나아졌다고 또 뭔가 하려다, 가까스로 자제하면서 실소가 나왔다. 그러니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건강한 나'라든지 '꾸준히 달리는 나' 같은 어떤 상태가 아니라, 멋대로 시도하고 자꾸 실수하고 마구 망하면서, 어쩌다 기뻐하고 대체로 좌절하면서, 살아있는 느낌을 맛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약

명심하자. 무리하면 안 된다. 아쉬울 때 끝내야 내일도 달릴 수 있다.


+) 이런 이야기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으면서...

https://youtu.be/dun41xBKGZM?si=O72OWUHpFFBs0ZS5


이때까진 좋았다. 야망과 계획이 뭉게뭉게 솟을 무렵,


정신을 호되게 차리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천천히, 차근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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