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제니까 회개해야 하는 걸까?
"One Way Door, Two Way Door는 아마존에서 어떤 기능을 론칭할지 말지 결정하는 방식인데, 원웨이도어는 문을 열고 나가면 끝인 거예요. 되돌이키기가 힘든 기능을 그렇게 정의하고, 투웨이도어는 아니다 싶으면 돌아올 수 있는 거예요. (중략) 인생에서도, 커리어에도 비슷한 방법을 적용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 대부분 원웨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투웨이예요."
<27년차 실리콘밸리 개발자의 인생 이야기> 3부, 한기용
1년 전 가을, 유튜브에서 이 말을 들었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 나는 교회에 다녀오면 기진맥진했다. 교회에서 하는 일이 많아서도 아니었고, 일상이 너무 빡빡해서 예배조차 버거웠기 때문도 아니었다. 35년 신앙생활 중 그런 시절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예배 내내, 그리고 교제 시간(식사시간 등등)에 내 안에서 전쟁을 치르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지?
저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하나님을 만나는 게 맞나?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는 게 맞나?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게 맞나?
이런 생각으로 끙끙 앓는 시간도 예배일까? 의미가 있을까?
바울처럼 내 소개를 해보겠다. 일곱 살 때 처음으로 교회에 간 나는 하나님을 바로 받아들였다. 믿는 게 어렵지 않았다. 모태신앙도 아니고, 부모님뿐 아니라 나의 원가족과 친척, 내가 아는 조상 중에서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나 혼자여도 꿋꿋했다.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고 생각했고, '기도의 응답'도 여러 번 받았고, 성경도, 신앙서적도 많이 읽었고, 대학시절 내내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았고 리더와 회장단으로 활동했으며, 거기서 만난 모태신앙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하고 집사 직분을 받았고, 교회에서 교사로, 성가대로 봉사했다. 그동안 내가 다닌 교회는 네 개였는데, 제일 큰 교회가 성도 100여 명, 제일 작은 교회는 10명이었다. 그러니까 큰 교회의 참석러라기보다, 대체 불가능한 일꾼이었다.
아니, 그보다 나는,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이 '크리스천'인 사람이었다. 세계관의 바탕이 기독교적 세계관이었고,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설명되는 사람이었다. 신은 과학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성경의 기록이나 성령의 역사를 믿는 것이 지성을 희생할 일이 아니었고, 모순적으로 보이는 현상에 대해 합리적으로 변론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게 날마다의 기도였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믿습니까?“에 "아멘!"을 반사적으로 외치는 사람, 목사님의 말씀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순종하는 사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의 존재나 예수님의 기적이나 기독교 교리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믿음 좋은' 사람, 기독교인이면 어쨌든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비기독교인이면 안타까워하는 사람.
더 나아가 볼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믿는 것과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과오를 저질렀고 지금 현재도 그러하며, 성직자들도 '믿음 좋은' 사람들도 성경이나 예수님의 뜻을 잘못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화론을 배격하고 창조론만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동성애는 죄라고, 고쳐야 한다고 차별금지법 철폐를 외치며 서명운동을 벌이는 신자들을 보면 괴로웠다.
그러니까, 굳이 정리하자면, 나는 하나님의 존재, 예수님의 복음을 믿는 사람이지만,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무조건 믿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도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는 불완전한 사람이니까. 그럼 반대로 '내가 더 옳고' '나 자신을 믿는' 거냐고 묻는다면, 헐, 아니 그럴 리가요. 다만 끊임없이 회의하고 궁구하는 과정이 당연하다고,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라고 이성과 지성을 주셨다고 믿었다. (물론, 동물농장의 '박서'처럼 고민 없이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견지하는 존경스러운 사람도 분명히 있다.)
후. 이 몇 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고 선을 긋는 것일까.
내가 우울증을 겪으며, 확고했던 많은 것들이 뿌리부터 흔들린 시간이 없었더라면,
코로나라는 거대한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교회에 충격받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일상을 포함해 모든 것이 멈추었던 경험을 통해, 적어도 내가 다닌 교회는 뭔가 바뀔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교회에 다니고 있었을 것 같다.
어떤 말씀은 쳐내면서, 어떤 성직자나 신자가 실망스러워도, 신앙생활이 지루하고 영성은 마른 사막 같아도,
나름대로 성경 읽고 기도하며 이런 시기도 있는 거라고 버텼을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지 나는 모르니까, 교회가 불완전하고 부족한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그곳에 나의 소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으로.
하지만 이런저런 사건, 차곡차곡 쌓였던 의문과 실망, 교회 밖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로 인해, 작게는 내가 다니던 교회, 크게는 개신교 문화가 맞지 않는 옷처럼 나를 옥죄었다.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동안, 머리가 지끈거리고 너무 숨막혔다.
내가 문제니까 회개해야 하는 걸까? 글쎄.
이것도 믿음의 시련일까? 그럴지도.
그렇다고 견뎌야 하는 걸까?
여기서,
아니! 이곳이 아닌 걸 수도 있잖아. 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곳과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잖아.
다른 곳에 가보면 되잖아.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
아니다 싶으면 돌아오면 되잖아.
하는 당연한 생각이, 심지어 놀랍게도 들었던 것이다.
그 다른 곳에 대한 선택지가, 내겐 성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