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실망은, 디폴트 값이었다.
교회를 다니며 괴로울 때, 왜 내게 다른 교회는 선택지에 없었을까.
이를테면, 30년 경력의 교사와 같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가 더 이상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겠다고 느낄 때, 다른 학교에 간다고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학교에 다 가보지 않았어도, 그간의 직접 경험을 통해, 그리고 수많은 동료 교사들을 통해 학교마다 다르다 해도 그 차이를 소거한 공통점을 안다.
우리나라에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교파도 여럿이고, 교인 수나 외적인 차이도 어마하고, 예배의 분위기나 전체적인 분위기, 소모임의 체계나 행사의 종류, 말씀과 사역의 중점 등이 다 다르다. 그중에 나와 맞는 교회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고, 실제로 그런 노력을 기울이던 때도 있었다. (물론 딱 맞는 교회, 흠 없이 완벽한 교회를 찾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교회는 없으니까. 그런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이제는 이효리가 <라디오스타>에 나와 (더 연애해봤자, 더 좋은 남자 찾아봤자) '그놈이 그놈이다'라고 말했을 때 단박에, 깔끔하게 이해되는 그런 상태였다.
그게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할 때마다 나는 쉽게 곤혹스러워졌다. 직관처럼 파악되는 그것은 너무... 길고 복잡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매끈하게 설명할수록 틀린 그림이 되었다. 내 생각을 완벽하게 설명해서 완전하게 이해받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영원한 숙제가 될 텐데. 나는 오늘 거친 스케치를 그려볼 생각이다.
육아로 인한 번아웃으로 우울증을 겪었을 때 많은 것들이 흔들렸다. 그동안 확신했던 것, 익숙했던 것들을 폐기해야 했다. 그것들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거나, 의심스럽거나, 소용이 없었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부터 살아온 방식, 인생관, 세계관까지. 신앙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하나님이 계신가?
아니, 신이란 존재가 있긴 할까?
내가 배운 하나님이 그 신이 맞을까?
때로는 무시하고 되어가는 대로 놔두고 싶었고, 때로는 몸부림치듯 답을 구했다. 그래봤자, 이런 류의 질문이 보통 늘 그렇듯이, 한걸음 더 갈 정도의 조촐한 답밖에 얻지 못했다. 어쨌거나 내 삶을 어루만진 신의 손길,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하나님은 나에게 실재였다, 다른 길이 있는지 없는지 나로선 모르겠지만, 내게 보여진 길, 예수님을 따르는 순례자의 길을 조금 더 가보자,는.
그제야, 수많은 구도자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때까지는 (종교와 관계없이) 신앙적으로 성숙하든, 얼마나 깊은 영성을 가졌든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안타깝지만 구원은 못 받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내가 어떻게 알지?
신이/혹은 진리가 있을까?
있다고 한들 인간이 알 수 있을까?
알았다고, 깨달았다고, 보았다고 말하는 서로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있는데,
한 개인으로서, 그중 무엇이 맞다고 혹은 틀리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나는 나의 경험에 대해서만 솔직하게, 그리고 최대한 분별하여 말해볼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나의 정체성을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서 '종교와 관계없이 구도자의 삶을 사는, 영성을 쫓는 사람들'에 더 가까이 두면서, '교회의 오만과 배타성'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비신자들에게 늘 회자되는 이 말은, 사실 내게 변론 가능한 사안이었다. 진리는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분명히 오직 자신만을 섬기라 했고, 예수님은 나 외에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없다고 했다. 하나님을 믿는 데 진심인 우리에게 이 부분에서 타협은 불가능하다. 그것을 오만하다고 한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사람에 대해서 거만하지 않으면 되지.
하지만 이제 나는 기독교인이면서 불자인 정현경 교수 같은 사람들의 주장이 옳은지는 모르겠고 이상하긴 했으나, 틀렸고 위험하다고 매도하고 싶지 않았다. 서로 다른 종교를 후하게 인정하려는 사람들을 섣부르고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그 길이 무엇이든 열어두고 갈 수 있다면 가고 싶었다. 배울 수 있다면 배우고 싶었다.
오히려, 다른 믿음은 틀렸다고 하는 확신에 찬 교회의 가르침이, 어디서든 아무 때고 큰소리로 외치는 기도 소리가 이전과는 다르게 나를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게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지는 천주교였다. (그리스정교회나 성공회도 가능하겠지만.)
나에게 성당에 가서도, 비슷한 이유로 혹은 다른 이유로 실망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그곳에도, 인간이 모인 어느 조직처럼, 그리고 성직자나 성도에게 들이댈 수 있는 잣대로 보자면 때로 참기 어려울 정도로, 부조리와 악이 있을 것이었다. 영화 <다우트>, <스포트라이트>, <베네데타>에서 보듯이.
또 내가 있을 구체적인 성당에서, 실제로 만나고 부딪히는 성직자나 교인들에게 실망하고 상처받을 일이 생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길고 진한 교회생활을 통해 얻은 교훈이었다. 불완전하고 연약하고 악한 인간은 디폴트 값으로 설정해두어야 한다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 타인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조금 더 너그럽다는, 혹은 무심하다는 점(선입견일 수도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만으로도 성당의 문을 두드릴 이유가 되었다.
게다가, 내 인생에 천주교나 천주교 신자에 대한 경험은 개신교(+신자)에 비하면 백지에 가까울 정도였는데, 그 백지의 어떤 흔적들은 나를 인도했던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