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도

믿음과의 싸움도, 믿는 사람들과의 논쟁도 아닌,

by 모도 헤도헨

어쩌다 성당에 다니게 되었나, 돌아본다. 성당과 관련된 기억은 코로나 이전까진 부스러기 같은 흔적들뿐이다.

가령, 이런 것들.

열 살 때 친척의 혼례미사에 참석했던 것. (너무 길고 지루해서 힘들었다.)

유럽여행 때 성당에 들어서면 막연히 좋은 기운을 느꼈던 것. (그땐 어딜 가나 그랬던 것 같기도..)

그리고 젖먹이 막내를 데리고 육아 관련 강연을 들으러 갔던 날 잠시 성당에 들렀던 것. (아기가 시끄럽다는 눈총에 5분 만에 돌아나와, 괜히 지치고 속상했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려니 억울해서 눈앞에 보이는 성당에 들어갔다. 혼자 위로 받고 나왔었다.)


그러다 코로나. 세상이 멈추고 재편되는 동안, 나도 두 명의 언니를 만나고 삶의 다른 길로 들어섰다.





"피정에 가봐. 짧은 피정도 있으니까 꼭 가봐."

며칠 동안 이어진 기나긴 카톡 대화, 전화 통화 후에 A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천주교인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을 덧붙였다.


A언니는 대학 때 활동했던 동아리(선교단체) 선배였다. 언니도 나도 선교단체에서 만난 형제와 결혼했기 때문에, 건너건너 소식도 듣고 연락이 가느다랗게 이어지고는 있었다. 언니가 외국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 정도가 다였는데, 동아리 단톡방에서 차별금지법/동성애 논쟁이 있은 후 언니랑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가끔은 사람들이 각자 다 다른 걸 보고 다른 걸 믿는,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세대도 문화도, 사는 곳도 계급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놀랄 때도 있다. 15년 만에 연락이 닿은 언니와의 대화는 그런 반가움을 상기시켰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경을 근거로 어떤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게 괴로웠던 나는 언니와 얘기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와 터놓고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서로 영향 받은 책과 인물을 소개하고 추천했고, 육아 우울증의 경험도 나누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천주교로 개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니는 원래 천주교 가정에서 자랐다가 학창시절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는 걸 알아서 그 소식에 그다지 놀라진 않았다. 그런데 그 과정이 조금 인상적이었다. 어느 주일 갑자기, 교회에 가던 길에 남편이 차를 돌려 성당으로 갔다는 것이다. 남편은 모태신앙으로 독실한 개신교 가정에서 자랐는데, 그날 그 미사에서 처음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라는 예배'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성당에서 미사를 드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사연이나 그때까지 그가 예배에서 느낀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내가 판단하거나, 혹은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완전히 개인적인 경험이 누군가에게 어떤 힌트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일지도 모르고.


나는 두 종교의 신앙생활이 어떻게 다른지, 언니의 신앙인으로서의 삶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등을 물었다. 언니의 답은 대체로 참 좋다, 나에게 맞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 경험이 궁금했다. 모든 관성적인 것에 의문을 제기하던 코로나 원년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은 어렵겠다 싶었다. 아주 작은 교회에 온 가족이 성실히 다니는 것은, 교회에게나 가족에게나 대체불가능한 신앙생활 이상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 와중에 피정에 다녀왔다. 개종이라는 문이 여전히 보이지 않을 만큼 저 멀리에 있었지만, 열어두어야지, 하고 조용히 일기에 적어두었다.





"어머나.. 감동.. 지난번에 모도 만났을 때.. 모도가 천주교를 믿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그냥 마음속으로 작게 기도 드렸거든. 그 기도를 들어주셨구나, 하는 마음에.."

천주교에 입교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K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 말에 나도 놀랐다. 언니가 기도했던 내용은, 그때 나로선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힘겨운 개종 과정에서 누군가는 나를 기다려주었다는 사실에 조금 울컥했다.


K언니는 대학 때 활동했던 사이코드라마 학회 선배다. 공연을 해야 해서 2년 정도는 찐하게 얽혀 지냈는데, 졸업 후에는 소식만 건너 듣고, 따로 만나진 못했다. 그러다 2021년에, 카톡 생일 알림 덕에 인사하다 번갯불에 콩 볶듯 약속을 잡았다. 15년 만에 만났는데.. 그냥 편하고 좋았다.


하지만 그보다 그날이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은, 언니랑 대화하면서 눈빛이나, 이야기 하나하나가 하나님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정말 하나님이 묻어난다. 옳은 말들로 설교하지 않아도,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않아도, 기적의 경험을 늘어놓지 않아도, 하나님을 떠오르게 하고, 바래버린 보석 같은 마음을 기억하게 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으면 하는 오랜 바람을 꺼내보게 한다.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나는 그냥 그 가운데 녹아들다 왔다.


대학 때도 사실 언니는 성당 관련한 얘기를 종종 했었다. K언니가 거의 유일했다. 천주교 신자들의 과묵함 때문인지, 나의 듣는 귀 없음이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누가 천주교 신자인지 혹은 그들의 믿음이 어떠한지에 대해 들은 기억이 없다. 사실 내 주위에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 그리고 그들의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감동적인 믿음의 사연들이 가득했기에, 따로 관심을 가질 틈도 었었다.


그런데.. 이후로도 나는 계속 교회에 다녔고, 여러 신자들과 관계를 맺었고, 내 인생에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언니와 가진 만남이 준 영적인 감흥이 실로 '오랜만'이어서 당황스러웠다. 물론 기쁘기도 했다. 하나님, 당신이 살아계시긴 한 거냐고,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쳐서 (묻기는커녕 말도 걸지 않고) 혼잣말처럼 되뇌기만 하던 때였으니까.


천주교엔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말에 동의한 적 없지만, 역시 종교나 교리가 문제가 아니라고 새삼 확신했다. 세상적으로 '잘 나가고' 있는 언니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다짐하고 시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2년 쯤 뒤, 내가 세례 받을 때 언니는 수녀가 되었다.) 내가 진짜 원하던, 하나님께 구하던 삶이, 그때 내 마음이 아스라하게 떠올라, 쿵 하고 내 눈앞에 떨어졌다.


삶의 전환기, 아무것도 답보되지 못한 상태, 생기가 달아난 몸처럼 마음도 갈피를 못 잡고 축축 늘어지던 때, 나는 하나님의 인도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부서져버린 믿음 때문에 구하지도 못하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고개만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언니를 만나고 얼마간 새로워진 마음으로, 고개를 들고 밝은 곳을 찾아가야겠다는 당연한 결론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내 삶에 필요한 것은, 믿음과의 싸움도, 믿는 사람들과의 논쟁도 아니고, 동행하는 순례자, 그리고 인도자라는 걸 절절하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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