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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Nov 08. 2023

<MBC를 날리면> : 속상해서 어떡하나

나는, 현시대를 사는 사람이니까

0.

무협지를 읽는 기분이었다.

책장은 쉬이 넘어갔고, 머릿속으로 수많은 영상들이 지나갔다.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1.

나온 지 한 달도 안 된 책이다. (2023년 10월 11일 출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책, 그러니까 신간이라든지 아니면 숨겨진 보물이라든지 그런 책을 굳이 소개하듯 리뷰 하겠다고 덤벼든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 일이 내 영역은 아닌데 어쩌다 근처에 가려니, 어색하지만 왠지 뿌듯하기도 하다. 아주 조금 더 쓸모 있는 글이 되려나 싶어서.



2.

책이 나왔다는 소식, 제목과 내용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듣고 바로 구매했다. 며칠 책장 위에 두었다가, 책을 펼치고 이틀 만에 읽었다.


재미있었다. 내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텔레비전을 그닥 보지 않고 살았고, 방송사랑 별로 상관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에서, 특히 내 나이 또래에서 mbc는 배경처럼 깔려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객관적인 외부 사건과 개인적인 일화, 인생의 여건이 뒤얽혀 떠올랐다. 내 일인 듯 아닌 듯, 나와 관련이 있는 듯 없는 듯했다. '나'라는 개인과 내가 아닌 외부 세계, 그렇게 선을 딱 그어 구별할 수 없는, 내가 속한 시대와 사회의 배경이었다.


시사에 눈을 뜬 대학 무렵부터, 본격적으로는 mb정권부터 mbc의 수많은 굵직한 특종(황우석 스캔들, 광우병 보도, 검사와 스폰서, 4대강의 비밀, 김학의 성접대, 대통령 전용기 민간인 탑승 등등)과 사건들(PD수첩 제작진들 기소, 낙하산 사장 김재철 사장의 '조인트', 노조의 투쟁과 이용마/최승호/박성제 등의 해직, '마봉춘'으로 불리다 ‘엠빙신’이 된 시절, 김민식 PD의 '김장겸은 물러가라' 라이브와 최승호의 사장 취임, 최근의 바이든-날리면 사태까지)이 다 내 기억에 있었다. 아니, 내 삶에 있었다. 삶의 어떤 순간과 함께, 혹은 언저리에 걸쳐져서. 또렷하게 혹은 흐릿하게.



3.

그 일들을 사안별, 시간순으로 맥락을 짚어가며 엮어주니, 한 시대가, 나의 한 시절이, 더불어 어떤 상식의 영역까지 싹 정리가 되었다. 이렇게까지 말끔하게 되는 거였나 싶었다.


잘 써서 그렇겠지. '기자라 그런가?' 하는 생각이 자꾸 날 정도로, 쉽고 정확하게, 군더더기 없이 썼다. 사건일지를 보듯 전후상황이 그려지고, 기승전결 있는 이야기처럼 흐름을 타게 된다.


얼핏 자기(혹은 mbc) 자랑이나 자기(/mbc) 변명인가 싶다가도, 그 이야기의 필요성을 짚어주면 설득되고, 핵심 내용만 건조하게 서술하니, 자기 객관화가 잘 된, 그러면서 충분히 자기 입장을 설명하는 글로 읽혔다.



4.

지난 대선이 끝나고, 나도 어떤 사람들처럼 한동안 뉴스에서 도망쳤다. 세상이 돌아가는 최소한의 정보라도 체크해야지 하다가도, 쌓아올린 것이 무너지고 나아가던 것이 역행하고 상식에 반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걸 보며 마음이 번잡해지곤 했다. 당장은 해결책도, 답도, 출구도 없으니 귀라도 닫고 싶었다.

 

그러다 '어?!' 귀를 쫑긋 세우게 했던 소식을 들었다. 지난 9월 mbc 방문진 이사장인 권태선이 해임되었다가 돌아왔다는 뉴스였다. 오! 전현희 권익위원장의 역공과 함께, 뭔가 이 기막힌 역행의 시대에 균열이 일어나는 건가? 궁금해지게, 기대하게 만들었다.


방통위는 항고했는데 법원은 기각, 권태선은 두 번이나 살아 돌아왔고, 해임됐던 다른 이사도 복귀했다('법원서 살아 돌아온 방문진 이사들... 물 건너간 총선 전 MBC 장악'). 이 사태를 만드는 보이는 손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국회에서 탄핵될지도 모른다.('민주당 의총 열어 '이동관 탄핵' 논의…9일 본회의 상정 유력')



5.

내가 mbc 소식에, 그의 수난사에 이렇게 관심이 있었나? 마음을 주었던 적도, 아니 특별히 생각한다는 의식조차 한 적 없는데. 나로선 책의 내용과 별개로, 책을 읽으며 가만히 의아했다.


생각해보니, 아예 없진 않았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 내 삶을 깨우던 시절이 있었던 것, <100분 토론>이나 <PD수첩>을 챙겨 보진 않아도 좋아했던 것, 뉴스는 mbc를 고집했던 것, 어떤 프로그램이 'mbc여서'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지만, 뭐랄까, 덜 갑갑하고 동시에 너무 되바라지지 않은 분위기가 있다고(문화방송답게) 여겼던 것.


그래서 만약 mbc가 김재철 사장 때처럼 망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 의도가 빤히 보이는 수순대로 민영화/사영화 된다면, 그래서 영영 내가 아는 mbc가 아닌 어떤 방송사가 된다면.. 내 가슴 한 곳에 구멍이 나겠구나, 허하겠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민영화 코앞까지 간 ytn이나 신문사 논설위원 출신이 유력한 사장 후보가 되고 수신료도 깎인 kbs가 힘을 잃어가는 것도 안타깝지만, 이 와중에 어떤 꿀밤도 안 맞고 있는 sbs도 못마땅하지만, mbc는 그 정도 가벼운 마음이 아닐 것 같다.


이를테면, kbs는 중학교 같은 곳이다.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자 기본적인 곳이지, 애틋하거나 뭐 그렇지는 않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변화 아니고서야 없어지지 않을 테고. sbs는 별로 안 친한, 좀 사는 동네 친구 집 같은 곳이랄까. 가끔 죽이 맞아서 놀러 갈 때도 있지만, 잘된다고 특별히 기쁘지도, 안 된다고 유달리 슬프지도 않은, 어디까지나 남이다.


하지만 mbc는 친척집 같다. 가족이나 연인만큼 가깝진 않아도, 나와 연결된 곳. 좋은 일 있으면 괜스레 좋고 무슨 일 생기면 걱정된다. 망하기라도 하면... 구경만 할 수 없다. (ytn은 뭘까.. 잠깐 다닌 회사? 계속 다닐까 할 때도 있었고, 나와서도 잘되길 바랐으나, 이제는 내가 아는 그곳이 아닌 듯한. 그래서 관심에서 멀어진.)



6.

'공영방송 수난사'를 훑으며, 언론이 제자리를 찾길 기원하게 된다. (그래서 그냥 배경은 배경으로 있어주기를, 누군가의 개인사와 엮이지 말고...) 세상엔 선한 사람이 더 많다고/혹은 한 인간 안에 선함이 더 많다고, 인류는 꾸준히 발전한다고 믿고 싶다가도, 역사 내내 볼 수 있는 헛발질과 대참사를 보면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고 미리 실망을 거둔다.


그래도 나는, 현시대를 사는 사람이니까... 발을 빼고 팔짱 낀 채, 건조하고 쿨하게 상황 판단하고 평가할 입장이 아니다. 책을 사고 이렇게 몇 자 적는 것으로라도, 응원을 보내고 마음을 보탠다.






+) 2023년 12월 1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자진 사퇴했다. 그날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될 것이 확실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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