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오더는 스타벅스 어플로 음료를 주문할 수 있는 기능이다. 돌체라떼를 주문했다는 고객의 사이렌 오더는 방금이 아니라 3분 전에 들어왔었고, 제조가 완료되어 이제 뚜껑만 닫으면 되는 상태였다. 유감스럽게도 연유는 이미 그녀가 주문 넣었던 정량인 3펌프가 들어가 있었다. '연유시럽 한번 뺀 돌체라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음료를 버리고 다시 만들어야 했다.
"죄송해요, 고객님. 이미 제조가 되어서 지금 바로 나와요."
"네? 연유 한 번만 빼달라니까요?"
"음료가 이미 제조가 다 돼서요."
"다시 만들면 되잖아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맞다.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다. 한잔 더 원하는 커스텀으로 주문만 넣는다면야. 주문만 더 넣는다면 10잔, 100잔도 만들어줄 수 있다.
"죄송하지만 이미 주문 넣어주신 대로 제조가 완성이 돼서, 다시 만들어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른 데서는 되던데요?"
스타벅스는 일관된 경험을 추구한다. 수퍼바이저 진급 후 첫 교육을 받을 때, 강사 파트너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여러분이 매뉴얼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파트너가 고객으로부터 여기는 왜 안 되냐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 고객이 다른 매장에서 음료를 정말 다시 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내게는 이 악의 고리를 끊어낼 의무가 있었다. 그런 중책을 수행하라고 수퍼바이저가 바리스타보다 시급 500원을 더 받는 거 아니겠는가.
"죄송합니다 고객님. 음료가 이미 제조되었기에 다시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혹시 덜 달게 드시고 싶으시면, 우유를 조금 더 넣어 드릴까요?"
"저기요. 그럼 커피맛이 덜 나잖아요. 제 돈 내고 싱겁게 먹어야 돼요?"
"고객님. 그래도 다시 만들어드리는 건 어렵습니다."
"제가 스타벅스 한두 번 다녀본 줄 알아요? 원래 다 되는 거 알아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하, 진짜... 아니 그거 하나 다시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저희는 고객님께서 주문 넣어주신 그대로..."
"아니, 됐고요."
그녀는 말을 끊은 뒤 커피머신 건너에 있는 나를 잠시 빤히 쳐다봤다. 죄수번호 확인하는 교도관처럼 매서운 시선이 앞치마 명찰에 박힌 닉네임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HAESOL님. 그냥 다시 만들어주시죠? VOC(고객의 소리) 올려드릴까요?"
족욕탕 수심처럼 얕은 내 인내심의 한계가 VOC라는 단어에서 끝나버렸다. 고객의 요구가 타당했는지 타당하지 않았는지를 떠나서, 그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기 전까진 논쟁이었다. 더 이상은 논쟁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를 협박하고 있었다. 논쟁과 협박은 다르다. 한 명의 매장 관리자로서 고객에게우리의 정책과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드릴 의무는 있지만 협박당할 의무는 없다.
"네. 올리세요."
그녀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음료 픽업대에 올려진 돌체라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매장을 나섰다. 달달한 연유와 부드러운 무지방 우유, 그리고 씁쓸한 에스프레소가 어우러지는 이 음료는 그녀의 식도가 아닌 싱크대 배수관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운명을 맞이했다.
만약 그녀가 돌체 라떼를 빨대로 기분 좋게 쭉 한두 모금 빨아들인 뒤 내게 말을 걸었더라면. 그래서 그녀가 입 안 가득 퍼졌던 연유의 달달함 덕분에 "아, 그렇죠. 제가 다음에 잘 확인해 보고 넣을게요!" 하며 매장을 나섰다면. 웃으면서 나가는 그녀에게 "또 오세요, 고객님." 하고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현실은 돌체 라떼가 배수관을 타고 내려가 똥물과 섞이기도 전에 VOC가 등록되었다.
[ 사이렌오더로 항상 돌체라떼를 먹는데, 이번엔 어플 오류인지 커스텀이 안 들어갔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HAESOL파트너한테 말씀드렸더니, 스타벅스는 커스텀 변경이 절대 안 된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제가 단 거를 잘 못 먹어서 연유 한 번만 줄여줄 수 있냐고 정중히 요청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제 말은 무시하고, 맘에 안 들면 그냥 VOC를 올리라고 하더라고요. 스타벅스 좋아해서 자주 다니는데, 연유는 그렇다 쳐도 이렇게 무례한 파트너는 처음 보네요. 뭔가 조치가 필요할 것 같아요. ]
VOC가 다양한 고객에게 수차례 들어오지 않는 이상, 회사 내에서 실질적인 효력은 없다. 칭찬 VOC가 등록되면 기분이 좋을 뿐(수차례 받으면 효력이 있다)이고, 불만 VOC가 등록되면 기분이 나쁠 뿐이다. 고객이 VOC를 등록하면 매장에 바로 전달되지 않고 일차적으로 고객센터의 필터링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파트너에 대한 인신공격성 VOC는 반려된다. 즉 "H로 시작하는 파트너 얼굴 보니까 커피맛 떨어지네요." 이런 내용은 파트너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돌체 라떼 고객의 VOC는 매장에 그대로 전달됐다. 불만 VOC가 효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점장 루키에게 설명해줘야 했다. 스타벅스가 제공하는 메뉴얼을 준수했고, 군자까진 아니더라도 인간의 도리는 준수했다고 생각했기에 떳떳했다. 하지만 루키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해솔이 메뉴얼을 정확히 지킨 건 맞아요. 근데 이 고객님은 메뉴얼보다는 해솔의 태도를 문제삼은 거잖아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근데 제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 상황에서 고객님에게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해드리려고 했고요. "
"저도 해솔이 평소에 고객님들한테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해솔이 뭐 불친절하게 하거나 그러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게 최선의 조치였을까요. 저희한테 사이렌 임파워먼트(파트너는 상황에 따라 고객에게 무료로 음료를 한잔 내드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가 있는 건 아시죠?"
"그것도 결국 합리적인 상황에서나 해드릴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럼 그 상황에서 음료를 또 만들어드리는 게 맞는 건가요?"
"이 문제에 정답은 없어요. 해솔도 메뉴얼을 지켰으니까 틀렸다고는 볼 수 없죠. 근데 이런 돌발적인 상황에 닥쳤을 땐, 그 상황 이후로 일어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VOC 정도로 끝났지만, 만약 그 고객이 매장에서 안 나가고 계속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매장 관리자인 해솔이 계속 응대를 할 수밖에 없었겠죠. 다른 고객한테도 피해가 갈 거고, 해솔도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아까운 시간도 뺏겼을 거고요. 단순히 고객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라는 건 아니지만, 관리자라면 본인이 갖고 있는 권한을 통해서 더 효율적으로 응대할 수도 있다고 봐요. 다시 말하지만 이 문제는 정답이 없고, 해솔이 틀렸다고 얘기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라는 거죠."
"... 참고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점장님들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은 내 생각과 아무리 다르더라도 웬만하면 수용하려 한다. 군신유의를 따르는 선비여서가 아니라, 함께 했던 점장님들이 어느 면을 봐도 나보다 유능했기 때문이다. 다만 생각을 바꾸는 데엔 에너지가 필요하다. 타인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콜드브루 추출하는 시간처럼 느려터진 나에겐 더 큰 에너지가 필요했다. 루키의 뜻을 이해하고 그가 원하는 방향성을 체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여러분이 메뉴얼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파트너가 고객으로부터 여기는 왜 안 되냐는 말을 듣게" 된다고 했던 강사 파트너의 말과 루키의 말은 상충하는 듯 상충하지 않았다. 스타벅스는 고객이 어느 매장을 가더라도 동일한 수준의 환경과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한다. 강사 파트너의 말은 이 목표를 대변한 셈이다. 루키 또한 그런 목표 아래에서 매장 운영을 하면서도, 매장 차원에서 낼 수 있는 효율성을 지향했다. 이 효율성 안에는 파트너가 고객을 응대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향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내가 고객 응대에 스트레스받지 않기를 원했다.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루키에게 배운 대로 일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아무리 일관된 경험을 추구하더라도 하늘 아래 같은 그린은 없다. 매장의 개성이라 할 수 있는 채도는 소속 파트너들 모두에 의해 조성되고, 매장의 분위기인 명도는 점장에 의해 결정된다. 일하고 싶은 매장, 일하기 싫은 매장, 방문하고 싶은 매장, 방문하기 싫은 매장이 만들어지는 데엔점장 성향이 구심점이 된다. 사이렌 로고 간판을 껐다 키는 것처럼 쉽게 매장의 명도를 바꿀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루키는 유능한 점장이었다. 고객이 등록한 불만 VOC조차 파트너를 성장시켜 매장의 분위기를 바꾸는 수단으로 활용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