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글로벌 디지털 세상에서 일하기
by 시민케이 Feb 05. 2018

워라밸이 걱정된다고?

글로벌 회사들의 WLB (Work Life Balance)

"걱정되는 '워라밸' 신드롬"

 2018년 1월 마지막 주에 국내 한 일간지에 실린 칼럼의 제목이다. (클릭수 1도 올려주기 싫어 링크도 걸지 않는다.)  그것도 무려 그 일간지 경제부장이 쓴 글이다.

간단히 요약해보면 이렇다. 가족들과 스페인 여행을 갔더니 한국인이 넘쳐나더라. '워라밸'에 '욜로'에 빠져 청년들이 흥청망청 돈을 해외여행에 쓰고 있더라. 우리는 이럴 때가 아니다. 선배 세대에 누 끼치지 마라. 문재인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정책이 이런 잘못된 관행을 더 부추길 거다. 인생의 가치는 일에 있지 여가를 즐기는 데 있지 않다. 괜히 선진국 따라가다가 다 잃는다...


이 글의 저자가 현 정부에 반대하는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썼을 수도 있다. 아니면 생각보다 많은 한국의 중노년층들이 가지고 있는 대기업 친화적인 태도를 글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차라리 이 두 경우 중 하나였으면 한다. 만일 한국 유수 일간지의 경제부장이 진심으로 한국 경제를 우려하며 자신의 논지를 편 것이라면, 나는 좀 우울해질 것만 같다.


무려 15년 전의 일이다. 국내 대기업에서 해외 지사를 위한 IT 프로젝트를 했다. 마케팅 부서까지 총동원되는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외산 솔루션 기반이었고 미국과 프랑스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프로젝트이었기에 외국 컨설턴트들도 같이 참여했다. 프로젝트라는 것이 다 그렇듯, 시간과 인력에 쫓겼고 한국 직원들은 당연히 밤 근무는 물론이고 주말 근무도 불사했다. 당연히 외국 컨설턴트들은 이해를 못했다. 미국, 호주, 프랑스에서 온 컨설턴트들은 왜 프로젝트 일정을 이렇게 빡빡하게 잡았냐며 이 일정에는 도저히 힘들다는 얘기를 반복했고 당연히 출퇴근은 정시였다.

그저 담배 피우며 서양 애들은 일에 대한 열정이 없다며 불평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던 우리 한국 직원들이 입을 못 다물게 한 사건은 정작 프로젝트 마지막에 찾아왔다. 시스템의 오픈을 1달 남겨놓은 시점, 프랑스 컨설턴트가 결혼한다고 우리에게 알려왔다. 다들 뜨아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래, 결혼한다니 1-2주 정도는 참아주자고 한껏 너그러운 표정을 지었다.

 "I feel sorry that I can't finish the project"

"응? 무슨 소리? 결혼 휴가 갔다 와서 프로젝트 같이 마무리해야지!"

"나 허니문 휴가 2달 동안 가는데 어떻게 프로젝트를 마무리해~ "

일생에 한 번뿐인 신혼여행을 어떻게 1주 만에 갔다 오냐고 되묻는 그 친구 앞에서 모두 할 말을 잃었던 기억이 있다.


글로벌 회사들의 워크 라이프 밸런스 (워라밸)

물론 위의 경우는 극단적인 예다. 평일 점심을 2시간 먹는 게 보통인 프랑스 회사원들을 어찌 본보기로 삼을 수 있을까. 외국 회사들이라고 모두가 워크 라이프 밸런스 (Work-Life Balnace), 즉 일과 개인 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나라와 회사의 크기 그리고 산업에 따라 그 정도가 상이한 것은 당연하다.

특히 선진국 외의 나라들에서, 그리고 전통적인 2차 산업 (흔히 굴뚝이라 부르는)에서는 워라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금 일하는 글로벌 회사에서는 여러 나라의 직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컨퍼런스 콜이 많은 편인데, 아무래도 미국 본사의 시간에 맞추다 보니 우리나라 시간으로 아침 일찍 콜이 잡히곤 한다. 하루는 콜에 들어갔는데 인도 직원과 나만 들어와 있어, 너무 아침 일찍이라 피곤하다 했더니 자기는 새벽 3시라 해서 머쓱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들여다보고 때로는 배우고 때로는 반면교사해야 할 곳은 남들보다 앞서가는 기업들이어야 할터.

최근 앞서간다 하는 글로벌 회사들은 긴 근무시간과 단순한 금전적 인센티브만으로는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 깨닫고 워크 라이프 밸런스 (WLB, Work Life Balance)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 WLB 프로그램은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과 조화를 배려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직원들을 관리하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유연 근무제, 모바일 데스크, 재택근무

가족 육아/탁아 지원, 출산 및 육아 휴직제

스트레스 등 건강과 여가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EAP (Employee Assistance Program)

 평생경력 관리 - 회사 내 성장 및 퇴직 상담, 퇴직자 교육

와 같이 구체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단순히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것뿐 아니라 직원 개개인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도록 노력하는 게 WLB, 즉 워라밸이 지향하는 바.

위의 일간지 경제부장이 알면 경천동지 하고 세상이 뒤집어질 일이다.


WLB, 워라밸은 궁극적으로 기업을 위한 프로그램

앞서의 신문 칼럼뿐 아니라 많은 언론에서 하는 말이다 -  워라밸이 직원들이 더 놀고 여가를 즐기게 해주는 의미 말고 뭐가 있느냐, 생산성을 높여서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깎아 먹을 때가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글로벌 회사들이 너무나 착해서, 우리는 많이 벌었으니 세상과 개인들을 위해서 이바지하겠다는 굳은 신념에 가득 차서 WLB, 워라밸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회사의 경제적 이익과 순익에 민감한 회사들이 그들이다. 그들이 워라밸을 추구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워라밸이 회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첫째, 생산성.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기업의 생산성을 갉아먹는다고 주장하는 많은 이들에게. 수십 년간의 조사  결과에 더해서 최근 스탠퍼드 연구팀은 근무 시간과 생산성을 개인과 많은 기업 차원에서 연구한 결과 결론을 내렸다. 근로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산성을 낮춘다.

근로 시간과 생산성

생산성뿐 아니라 오래 일할 수록 개인의 건강이 위협받고 이는 거꾸로 기업에서 사고의 위험을 높여준다. 즉, 당장 높아 보이는 생산성이 중장기적으로 개인뿐 아니라 회사에 독이 된다.

둘째, 기업과 업무의 가치. 모두가 그렇게나 얘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것은 창의성. 창의성은 책상 앞에 혹은 기계 앞에서 일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거창한 창의성은 고사하고 매일의 업무를 조금 더 개선하고 잘 수행하는 데에 여가가 너무나 중요하다.

셋째, 좋은 직원의 고용과 유지. 예전과 다르게 세상은 복잡하고 다양해졌고 인재들은 다양한 보상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걸 글로벌 회사들은 알고 있다. 기존처럼 승진과 돈만으로는 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다양한 인재들을 데려오고 회사에 만족하며 일하게 하긴 어렵다는 것을.


신뢰에 기반한 균형은 필요

물론 워라밸이 모든 것의 해법은 될 수 없을 거다. 현실적으로 워라밸 이전에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근무 시간 단축은커녕 야근 수당도 제대로 못 받는 중소기업 직원들이 대부분인 현실은 어떻게 할지, 제대로 된 코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워라밸은 고사하고 최저임금에도 휘청거리는 기업들에겐 어떤 가이드를 줄지.


그리고 기존 업무 시간과 방식에 익숙했던 직원들이 어떻게 행동할까에 대한 기업들의 걱정도 이해가 안 가지는 않는다. 한국 기업의 직원들 우리 모두 월급 루팡이 되어본 적이 있지 않나. 어차피 늦게까지 야근할 거 쉬엄쉬엄 하지 모드. 모든 힘과 노력을 다해서 회사의 제도와 허점을 이용해서 내 이익을 얻어야지 모드.  직원들의 이런 모드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근무 시간만 적어지지 않을까 하고 회사는 걱정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올바른 제도와 시스템은 조직을 움직이고 사람들의 행동을 바꾼다. 회사가 먼저 직원들을 믿고, 겉으로 보이는 근무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직원들이 열정을 가지고 일할 거라고 가정하고 제도를 만들면 어떨까.

거꾸로 하면 안 되냐, 직원들이 먼저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냐고 물을 기업과 그에 호응하는 언론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회사가 갑이지 않은가.

keyword
magazine 글로벌 디지털 세상에서 일하기
Playful heart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