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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마케터 Oct 20. 2022

엄마와 제주 여행

2022년 1월


엄마의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 자식들과 자주 여행을 다니고 싶어 한다. 몇 년 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도 가고 싶다고 했다. 30년 이상 테니스를 친 엄마라서 건강은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릎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는 테니스도 못 치는 상황이 오니 엄마가 하루라도 젊고 건강할 때 함께 여행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설 연휴에 엄마와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엄마가 내게 무슨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나는 엄마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듣는 둥 마는 둥 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에 최대한 집중하기로 했다. 


대화할 때 눈을 마주치기, 

함께 있는 시간 외에 최대한 다른 일정을 만들지 않기 등.


또 한 가지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엄마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우리 딸과 하는 거라면 엄마는 뭐든지 좋아'라고 얘기하는 엄마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찾아보는 여행을 만들기로 했다. 여행 전 엄마에게해 보고 싶은 것 세 가지를 고르라고 했다. 


엄마가 첫 번째로 고른 것은 은반지 만들기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꽃꽂이 자격증도 있는 엄마는 손으로 무언가를 잘 만든다. 여행 첫날 제주도에 도착해 간단히 식사를 하고 주얼리 공방으로 향했다.

얇은 은반지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손가락 크기를 재는 것부터 시작했다. 은반지 안쪽에 글씨를 새겨주는데 엄마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새겼다. 아가들 팔찌나 목걸이에 전화번호와 이름을 새겨주는 것처럼 말이다. 웃어 넘겼지만, 왠지 마음이 짠했다. 엄마에게 전화번호와 이름이 새겨진 무언가를 늘 착용해야 하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하고 싶은 건 라탄 가방 만들기였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선생님과의 만남. 만들기가 시작됐다. 엄마는 원래 정해져 있는 가방 바닥보다 조금 더 넓은 가방을 원했다. 선생님은 처음에 안 된다고 했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한 번 더 얘기해 결국 엄마가 원하는 대로 바닥이 조금 더 넓은 가방을 만들었다.


세 번째로 엄마가 선택한 곳은 산방산 탄산온천이었다. 2시간가량 엄마와 함께 각자의 취향에 맞는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그리고 마지막엔 때를 빡빡 밀었다.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등을 맡겼다. 수영복을 미리 챙기지 못해 노천탕에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서 꼭 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엄마의 강점을 분석해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점 혁명'이란 책을 사 갔다. 첫날 저녁 일찍 쉬면서 엄마에게 강점 혁명의 있는 코드로 엄마의 강점을 분석해 보았다. 졸린 와중에도 엄마는 끝까지 해 냈고, 엄마의 다섯 가지 강점 테마를 마침내 찾아냈다. 다음 날 아침 다섯 가지를 읽어줬더니 엄마는 매우 재미있어하면서 '맞아, 맞아'를 연발했다.


4박 5일의 여행이 무사히 끝났다. 예전에는 엄마와 몇 시간조차 함께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말만 하면 싸웠기 때문이다. 엄마가 건네는 모든 대화에 날 선 말로 받아치며 날카롭게 굴었다. 엄마는 애착이 많은 큰 딸이라 그런지 내 눈치를 많이 봤다.

이번 여행에서는 엄마를 편안하게 해 주고 싶었다. ‘한 번도 안 싸우리라’ 굳게 마음먹고 갔지만, 결국 한 번은 싸웠다. <해녀의 부엌>이라는 공연과 식사가 있는 프로그램을 예약했는데 다른 곳으로 잘못 가는 바람에 공연을 놓쳤다. 중간에 들어갈 수가 없어 공연이 끝나길 기다리는 과정에서 엄마와 다투고 말았다. 금방 풀어졌지만, 그 한 번도 참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도 나도 꽤 편안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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