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면 다 어른이 되는 줄 알았지
나의 20대는 누구보다 격동의 시기였다고 자신할 수 있다. 야자가 싫어 사진 하겠다던 17살. 서울 가서 실습한답시고 개고생만 하고 돌아온 21살. 졸업하고 사진가 대신 회사원을 택한 23살. 작은 회사에서도 큰 회사에서도 마음 잡지 못하고 멘붕 와 인도로 훌쩍 떠나버린 28살. 어쩌면 고난은 이미 예상돼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저 모든 결정적인 순간들로부터.
서른 이전의 나는 카멜레온이었다. 주변의 환경에 자아를 맞추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주변이 흔들리면 나도 흔들렸고, 주변이 성과를 거두면 나도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속한 집단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육체적, 시간적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겉보기엔 그런대로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겐 진정한 나는 없고 나를 수식하는 것들만 남아있었다. 늘 고민했다. '나는 무엇일까', '무엇을 해야 할까' 마치 자아를 찾는 사춘기처럼 20대에 오춘기를 겪었다.
별안간 스물여덟이 되자 조급증이 났다. 서른을 앞둔 게 실감이 나면서 무서워졌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가진 것도 없고 준비한 것도 없었다. 20대는 이래저래 정신없이 패기 하나로 살아온 거 같은데, 30대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깊고도 아픈 고민들에 둘러싸였다. 자책과 후회도 많이 했다. 스물여덟에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건 당연한데 말이다.
나는 서른이나 되어서야 이 모든 고난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대의 나는 하고 싶은 건 많고 하는 방법은 모르는 사람이다. 현실을 좇다가도 이상을 좇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스스로를 믿지도 못했다. 그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었지만 뜻밖에 아주 작은 꿈들이 이뤄지기도 했다. 어떤 일은 잘될 거라 생각했는데 잘된 일도 있고, 어떤 일은 그냥 던져본 건데 잘된 일도 있었다. 정말 사소한 일에서부터 성취감을 느끼며 겨우 그제서야 '나도 할 수 있음'을 믿게 되었다.
서른인 지금은 그때보다 잃은 게 더 많다. 여행하느라 돈도 다 써버려 다시 시작하는 마당에 다니는 직장까지 변변찮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금은 무섭지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때는 없고 지금은 있는 '나'라는 중심 때문이다. 이제는 주변의 어떤 상황에도 나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조차 이렇게나 안정적인 나는 처음이다.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정말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선명해졌다.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침착하고 대수롭지 않다. 도대체 이 안정제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서른이 뭐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