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다 치고' 정신
반복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위력에 대해 깨달은 이후 나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삶의 질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아주 높은 수준의 성공을 만들어내었다. 교과서적이라고 할 정도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내가 마치 처음부터 아주 치밀하게 계획적으로 한 것 같은 착각이 나도 들정도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실패할까 봐 겁이 났었다. 왜냐하면 살아오면서 이런 루틴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안의 소리가 계속 들렸다. 네가 할 수 있을까, 너는 결코 아침에 스스로 일찍 일어나 본 적이 없잖아, 너는 이 구역 올빼미 대장이잖아, 밤의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 있겠어 등등. 그래서 나는 파일럿이라는 개념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그냥 한 번 해보는 것이다. 해보고 안되면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정한 기간이 9일이었다. 9일만 해보기로. 그런데 그 9일을 성공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다. 엄청 어설프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하긴 한 거였다. 그리고 그다음 9일이 성공하더니 결국 99일을 넘어서 100일이 된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허들 낮추기였다. 그것을 나는 '했다 치고' 정신이라고 부른다. 새벽에 일어나서 다시 잠들더래도 일어났으면 그냥 '했다 쳤다'라고 하기로 했다. 물론 실제로는 다시 잠들지는 않았다. 그냥 나를 달랜 것이었다. 일어나기만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도 된다고 부드럽게 타이른 것이다. 심리적 저항감을 일단 낮춘 것이다. 운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운동을 가기 싫으면 그냥 가서 헬스장 문고리에 손만 얹어도 했다 쳤다. 당연히 헬스장 문에 손을 대면 문을 열게 되고 운동은 자동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독서도 같은 메커니즘을 적용했다. 책 읽기가 싫은 감정이 들면 그냥 그 책을 펴보는 것만으로도 독서를 했다 쳤다.
이 '했다 쳤다'의 효과는 엄청났다. 시작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돌아가고 매몰 비용의 효과 때문에 지속하게 되는 것이다. 이 '했다 치고'는 허들을 그냥 낮추는 것이 아니라 아주 얇은 종이장 마냥 하찮게 만들어서 쉽게 시작하게 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모든 것을 지속할 수 있었다. 마음은 항상 가벼웠고 즐거웠다. 시작할 때 '했다 치고'를 생각하면 엄청 쉬워 보여서 일단 하긴 한다. 그런데 막상 시작되면 그렇게 대충 하지 않게 된다. 그것들이 계속 연결되는 것이다. '했다 치고'는 진짜 시작을 하게 하는 마법 같은 문장이다.
지난 4개월 '했다 치고'의 정신으로 하나하나 작게 시작하고 그것을 반복하고 지속적으로 실행하다 보니 시간은 누적이 되어 엄청난 루틴을 나에게 선사했다. 다음과 같다.
새벽 4시에 기상하고 묵주기도를 한다. 새벽 5시에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10분 스트레칭을 하고 새벽 6시 30분까지 독서를 한다. 그리고 새벽 7시에 출근하고 점심까지 딱 4시간 집중적으로 업무를 마친다. 점심을 먹고 잔업을 하고 오후 4시에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샤워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하다가 밤 9시 30분에 취침한다. 이 루틴은 지금 보면 정말 칸트, 무라카미 하루키 버금가는 정도지만 이 모든 것이 '했다 치고' 정신으로 만들어진 엄청난 결과물인 것이다. 심리적 저항감을 낮추고 일단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나의 '했다 치고'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