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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정한 Feb 03. 2016

감기

PAPER BOX_42

In Japan

덩그러니  놓인 의자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칠 벗겨진 오래된 나무

그래도 한 자리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의자.

BGM_La Vie En Rose-Louis Armstrong


감기

                                    J PARK

그냥

감기에 걸린 듯

넘어갈 수 있으면


따뜻한 물에

감기약 몇 알 먹고

세 밤만 자고 일어나서

나을 수 있다면


늙지 않을 것만 같던 할머니의

차가워지는 발과 핏줄 굵은 손을 보면

3살, 나를 업고 동네 구경을 시켜주신

사랑

그 마음을 이해하고만 싶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매일 아침, 세월이 말해주는 부지런함

가득 들고

운동 겸 물 길어 오시는 할머니의 모습.

이제는 지팡이 하나에 다리를 의지하고

병원 가시는 모습 그 모습이

구석진 마음을

아프게 뜯어낸다.


소하는

억속에


옛 추억

살아온 흔적들만 가득하게

이야깃거리가 되고


자꾸만

줄어드는 최근의 기억이

감기 걸린 듯

콜록댄다.


내가 가진 시간.

그보다

시속 78Km 더 빠른

할머니의 시간 속에

나라는 존재

느리게

느리게 대입해


그 시간에 내가 있고

그 시간이 조금은 느리게

보다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사랑. 그 마음을

조금씩 보태 본다.

감기약 한 알

감소한 기억에 약이 되듯.


그 사람의 몸에서 나는 향기

가끔은 예전의 추억을 되살려 줍니다.

진하지도, 그리 연하지도 않은 향기는

그때의 기억을 환기하기에 충분합니다.


할머니와 같이 자란 분들이라면,

혹은 어릴 때에 그런 추억이 있다면

한  번쯤은 느껴보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밖에 나갈 때면

여름엔 그늘로 다니라고,

겨울엔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고,

마스크 끼고 목도리 항상 두르고 다니라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집에 들어와 인사를 하면

항상 먼저 물으시는 것은

밥은 먹었냐고,

추운 날엔 얼른 들어와서 몸 녹이라고

더운 날은 얼른 선풍기 바람 쐬라고

더워도 수고했다고, 추워도 수고했다고

항상 말씀하십니다.


좋은 것만 먹이려고

항상 맛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남겨두시고

아픈 곳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죽부터 쒀 주십니다.


나의 기억에 없는 일들을

다 기억하시고 있고,

어릴 때의 모습이고, 행동이고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했던 말들까지 다 기억하고 계시니까요.


80이 가까워지는 그 세월 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으시고

또, 그 일들을 극복해내신 그 생활들을 듣고 있으면

가만히, 그 기억에 할머니께서 느끼신 감정이 어땠을까,

그 수많은 세월 속에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4배 가까이 저보다 많이 사신 할머니의 생활을 겪지는 못했다만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봅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아픈 곳도 많아지고

기억이 더뎌지는 게 당연한 것이지만,

예전 같지 않은 할머니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정말 많이 아픕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용돈 조금씩 떼어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홍시랑

인절미 단팥 크로켓 단감 귤

몇 개씩 사드리는 것 밖에 없어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세상 반세기 훌쩍 넘게 살다 보면

나도 그 마음을 이해하겠지 하며 

지금 본인이 할 수 있는 것  하나하나씩

집중하며, 돌려드립니다.


또한 어느 누구나 그렇겠지만

참으로 사랑한다는 말.

행복하자고, 아프지 말고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소중합니다.

그래서 더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PS : 할머니라는 존재가 주는 힘이 얼마나 큰지, 깨닫기 전에 조금은 더 집중하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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