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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사랑한미술관 Sep 14. 2020

의미 강박에 빠진 당신에게

<서러운 빛> P21 갤러리 &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jQEQPJGeA7Y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정체성」 등의 소설을 통해 일관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해왔습니다. 그의 소설들은 이 메시지에 대한 여러가지 변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 메시지란 '한없이 가볍고 무의미한 우리 존재와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자'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최근작인 소설 「무의미의 축제」는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 네 주인공이 겪는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며 종국에는 제목 그대로 '무의미의 축제'에 도달하는 이야기인데요. 그 중에서 샤를이 친구들에게 들려준, 스탈린의 자고새 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스탈린은 그의 협력자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길 즐겼는데 하루는 자고새 사냥에 나가 13킬로미터를 걷다가 나무 위에 앉은 자고새 스물네 마리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탄창을 열두 개밖에 갖고 오지 않았던 그는 열두 마리를 먼저 죽인 다음, 다시 집까지 13킬로미터를 돌아가 탄창 열두 개를 더 챙겨와서 같은 나무에 앉아 있던 나머지 자고새들을 죽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느 누구도 웃지 않았고 모두 이를 스탈린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하나의 '의미'만을 좇는 획일화된 사회에서 농담은 더 이상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거짓말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죠. 엄숙하고 무거운 '의미'의 세계에서 가볍고 무의미한 '농담'은 용납되지 못합니다.


지나치게 의미 부여를 하는 세계에서는 스탈린의 협력자들이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오히려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스탈린도 이 사실을 깨닫고는 칸트보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더 진실에 가까웠다고 인정합니다. 칸트는 우리에게 드러난 세계 뒤편에, 우리는 알 수 없는 진짜 세계가 실재한다고 생각한 반면, 쇼펜하우어는 우리에게 드러난 세계 뒤에는 어떠한 실재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탈린은 사람들마다 각자에게 드러난 세계가 존재하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세상은 혼돈에 빠졌고 본인은 그 혼돈에 질서를 부여해 단 하나의 드러난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세계는 농담이 거짓말로 받아들여지는 세계였고 그 모습을 보면서 그는 회의에 빠지고 자신의 의지가 약해짐을 느낍니다.


결국 엄숙하고 무거운 '의미'의 세계는 실패했고 이 사실은 농담처럼 하찮고 가볍고 의미 없는 것들의 가치를 역설합니다. 밀란 쿤데라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의미만을 좇다 본질을 놓치지 말고 하찮고 가볍고 무의미한 것을 인정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죠.


얼마전 갤러리 P21에서 열린 전시 <서러운 빛>은 권현빈, 오종, 한진 세 명의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나타남과 동시에 사라지고 마는 무형의 존재들을 포착한 전시였습니다. 이 존재들은 일시적이고 희미하고 연약하다는 점에서 밀란 쿤데라가 소설에서 다루는 '하찮고 무의미한 것'들을 떠올리게 했는데요.


권현빈 작가는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빛과 구름의 그림자, 길고양이나 바람의 흔적을 돌에 새기거나 그렸는데 그 돌 역시 지금은 강하고 단단하지만 결국에는 연약한 모래가 될 거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종 작가의 설치 작품은 가느다란 실, 미세한 광택을 가진 안료, 가벼운 체인 등으로 만들어져 작품 그 자체로 매우 희미하여 잘 보이지 않고 연약해서 쉽게 끊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한진 작가는 겹겹의 공기를 화면에 쌓아 올리거나 밤의 빛을 화폭에 담으며 금새 사라질 것들을 좀더 오래 붙잡아 두고자 했습니다.


여러분은 평소에 '의미'에 대해 얼마나 자주 생각하시나요? 인생의 의미, 직업의 의미, 사랑의 의미 등 무슨 단어에든 '의미' 자를 붙이면 진지한 태도로 '그것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정답은 쉽게 떠오르지 않고 그사이 인생은 흘러가죠. 고민이 길어질 땐 엄숙하고 무거운 '의미'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하찮고 무의미한 것들을 사랑해보는 건 어떤가요? 소설 속 라몽의 말을 빌리면 하찮고 무의미한 것들은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서도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존재하는 그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우리에게 해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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