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요일 Jan 17. 2020

사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힘들다

퇴사 후 비로소 알아가는 것들[2]

사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힘들다

지금 들리는 음악 - '수상한 그녀' 중 '나성에 가면' 

지금 생각나는 책 - 구병모 님의 '위저드 베이커리' 


늘 뭔가를 쓰기 전에 나는 음악, 책 그리고 영화를 생각한다. 

왜 지금 이 음악이 들리고, 이 책 또는 영화가 생각나는지를 나 자신에게 가끔 물어본다. 

이유는..... 좋아하는 것에 이유가 없듯이, 그냥 떠오르는 생각들엔 이유는 없다. 


[2] 사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힘들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끔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도대체 뭔가를 사려고 이렇게 돈을 버는 걸까? 돈을 버니, 이렇게 사대는 걸까?'  


언젠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이런 말을 한다. 

'저는요, 온라인 쇼핑몰이 가끔 무서워요.  늦은 11시에 결제를 하고, 다음날 출근하려고 문을 열면 물건이 벌써 와 있어요. 제가 새벽 6시에 출근하는데....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  

들으면서 나도 그런 같은 생각을 했었다고 함께 동의했다. 

그 편한 구매 프로세스를 갖춘 온라인 쇼핑몰 덕분에  소비 재품이 떨어지기도 전에 결제버튼을 클릭하고, 좀 싸다 싶으면 한두 개가 필요한 것도 수십 개 패키지를 클릭 한 번에 구매완료를 한다. 

시간이 없다, 힘들다. 바쁜 업무 등을 이유로 이렇게 구매한 물건들은 문자로 온 택배 사진을 보면서 '왔구나' 하는 정도 확인하고 지나쳤다.


작년 8월 나는 20년의 사회생활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장 하고 싶었던 하루 종일 책만 보기, 지나간 tv 시리즈 모아서 밤새 보기. 하루 종일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  찾아보기의 생활을 한다.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 동시에 집안 여기저기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 내가 알고 있지 않았던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우렁각시처럼 늘 내가 회사 가고 없을 때만 왔단 간 엄마만이 아는 것들이었을까?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서 집안 청소를 해주셨을 때,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들이었을까? 


발코니 벽에 붙어있는 광속에 차곡차곡 기둥처럼 천장까지 닿도록 쌓여 있는 두루마리 휴지, 키친타월. 특히 179개의 각 휴지들 (우리 집은 나와 서방 이렇게 성인 2명만 산다), 세탁기 세제와 섬유유연제가 담긴 들 수도 없는 큰 박스들,  

커피 장사하려고 했었나.. 1kg짜리 원두가 겹겹이.  원두는 홀빈 상태로의 유통기한이 길다고 한다지만... 쌓여 있는 이 원두들은 건너올 수 없는 다리를 넘은 지 이미 오래전이다. 수십 박스가 넘는 캡슐 원두도 밀봉상태로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이상이 된 것 들이다.

냉장고와 냉동고, 김치냉장고와 냉동고에도 뭐가 이렇게 많은 걸까? 유통기간보다 이들을 몇 년 전에 샀을까? 하는 기억을 해야 한다. 옷장 곳곳에 택도 떼지 않은 물건들, 박스도 열지 않은 마스크팩과 세럼도 발견된다. 


퇴사를 하고서,  가끔 드는 생각이 생겼다.

' 그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 언제, 어떻게  이렇게 많이 살 수 있었을까? 매일 피곤하여 몸도 꼼짝 못 했던 것 같은데... '  그러면서 계속 찾아서 정리하고, 찾아서  계속 버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제 얼마 동안은 절대 사지 말아야 하는 것들. 한 번에 절대 많이 사면 안 되는 것 중 최고는 냉동만두라는 것, 1주일 2번만 그것도 정해진 시간에 버려야 하는 재활용 버리기는 최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들을 알아간다.


최근에는 마켓에 가서 시장을 볼 때,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를 하려고 할 때, TV에서 홈쇼핑을 보면서 핸드폰을 찾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상상을 한다. 

구매한 물건들을 포장한 쓰레기 비닐, 박스들을 하나하나 구분해서 재활용 버리기를 하고 있는 나,  택배박스 한 개 한 개를 모두 판판하게 펴서 정리하여 버리는 내 모습을.. 

그리고 '유통기간에 맞춰서 반드시 사용을 해야 한다.' '쌓여있는 물건들은 구식이 된다. '라고 외우고 있는 내 머릿속을...


오늘도 나는 거실의 허름한 소파를 보면서 구매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 소파를 사는 것보다 이 헌 쇼파를 아파트에서 버리는 일이 더 힘들 거야!!'라고 말하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