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본능과 이성을 이기는 20년 습관

퇴사 후 비로소 알아가는 것들 [1]

by 수요일
지금 들리는 음악 - 응답하라 1988 중 '이젠 잊기로 해요'
지금 생각나는 영화 - 오픈 유어 아이즈(Open Your Eyes, 1997)


'퇴사'를 하고 시간 부자가 된 나는 무엇인가를 써보려고 한다.

머리를 눈동자를 그리고 쥐고 있는 펜을 빙그르르 돌린다.

단 하루도 지역 의료보험을 내지 않았던 20년의 직장생활에서 분명히 쓸만한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달 동안 고민한 결과, 생각보다 나의 기억력은 좋지 않았다. 그 생활의 소재는 먼 과거 속 상상이야기로만 쓰였고, 등장인물 속 주인공이 나조차도 현실감 없이 읽혔다.

반면, ['퇴사'후, 보이는 것들]이라 쓰고 그 아래로 나열해 본 목록들.

일이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힘들어서, 지쳐서.... 보고도 보지 못했던 것들, 그냥 지나쳐버린 것들,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비로소 알아가고 있다.


첫째 : 본능과 이성을 이기는 20년 습관


아침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 눈을 뜬다.

5시 30분에 맞춰둔 핸드폰 알람을 찾아서 끈다. 나의 핸드폰 아침 알람 소리는 한 번도 울리지 못한다.

서방은 늘 나에게 말한다.

"너는 왜 알람을 맞춰? 어차피 안 듣고 일어나면서.. 한 번도 너의 알람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


생각해보니 직장 생활하면서 몸이 무지하게 아플 때, 전날 술독에 빠졌다 나온 그런 며칠을 제외하곤 알람을 듣고 일어난 적이 없다. 그러나 언제나 내 알람은 그 전날 저녁에 맞춰졌다. 한 번을 울리지 못하고 늘 나에 의해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하고, 잠자기 전 알람을 더 이상 맞출 필요가 없다. 혼자서 완전 대박이라며, 좋다며 즐거워했다.

아침 눈을 뜬다. 5시 15분이다. 아뿔싸. 눈이 떠진다.

새벽 3시까지 잠을 안 자고, TV도 보고, 책도 보고 [시간 부자] 코스프레를 한다. 아침 눈을 뜬다. 5시 17분이다.

3주가 흘러도 눈이 자꾸 떠진다. 5시 30분을 넘지 못한다.

2달이 지나면서, 아침 눈을 뜨려고 하는 찰나에 이성으로 '뜨지 마'라고 내 눈동자에 명령을 한다. 이미 정신은 깨어졌지만, 눈만 뜨지 않은 상황이 불편함 그 자체다.


출근 아침 , 울리지도 않은 알람을 먼저 끄고 피곤한 몸을 일으켰던 것은, 회사에 늦지 않게 가기 위해서는 꼭 그렇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20년간 강박관념 같은 거였다.

사회생활 초년생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행동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러한 행동이 의도적인 아닌 나와 하나가 된 습관으로 된 것이...

'퇴사'전에 미리 알았다면 몇 년간이라도 아니 몇 달동 안 만이라도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을 텐데.....라고 잠시 생각해본다.

그러나 아마도 나는 '퇴사'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본능과 이성을 이기는 이러한 강한 습관이 나에게 있었다는 것은 '퇴사'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달 전까지는 '졸리다'는 본능을 이기더니,

이젠 일부러 '뜨지 마' 하는 이성을 이기는 이 강한 행동습관을 처음 대면하며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키운 습관이지만 이제야 깨닫고, 어떻게 서로 아는 척을 해야 할지 몰라 서먹하게 바라보는 중이다.

20년 동안 지각을 안 하게 해 준 내 행동습관에게 우선 '수고했다'라고 말해주고, 가능한 계속 함께 가자고 부탁해본다.


다시 알람을 자기 전에 맞추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도 맞춘 알람이 울리기 전에 나는 눈을 떴고, 동시에 알람을 껐다.

여전히 내 알람 소리는 들을 수 없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