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비로소 알아가는 것들 [1]
지금 들리는 음악 - 응답하라 1988 중 '이젠 잊기로 해요'
지금 생각나는 영화 - 오픈 유어 아이즈(Open Your Eyes, 1997)
'퇴사'를 하고 시간 부자가 된 나는 무엇인가를 써보려고 한다.
머리를 눈동자를 그리고 쥐고 있는 펜을 빙그르르 돌린다.
단 하루도 지역 의료보험을 내지 않았던 20년의 직장생활에서 분명히 쓸만한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달 동안 고민한 결과, 생각보다 나의 기억력은 좋지 않았다. 그 생활의 소재는 먼 과거 속 상상이야기로만 쓰였고, 등장인물 속 주인공이 나조차도 현실감 없이 읽혔다.
반면, ['퇴사'후, 보이는 것들]이라 쓰고 그 아래로 나열해 본 목록들.
일이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힘들어서, 지쳐서.... 보고도 보지 못했던 것들, 그냥 지나쳐버린 것들,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비로소 알아가고 있다.
아침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 눈을 뜬다.
5시 30분에 맞춰둔 핸드폰 알람을 찾아서 끈다. 나의 핸드폰 아침 알람 소리는 한 번도 울리지 못한다.
서방은 늘 나에게 말한다.
"너는 왜 알람을 맞춰? 어차피 안 듣고 일어나면서.. 한 번도 너의 알람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
생각해보니 직장 생활하면서 몸이 무지하게 아플 때, 전날 술독에 빠졌다 나온 그런 며칠을 제외하곤 알람을 듣고 일어난 적이 없다. 그러나 언제나 내 알람은 그 전날 저녁에 맞춰졌다. 한 번을 울리지 못하고 늘 나에 의해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하고, 잠자기 전 알람을 더 이상 맞출 필요가 없다. 혼자서 완전 대박이라며, 좋다며 즐거워했다.
아침 눈을 뜬다. 5시 15분이다. 아뿔싸. 눈이 떠진다.
새벽 3시까지 잠을 안 자고, TV도 보고, 책도 보고 [시간 부자] 코스프레를 한다. 아침 눈을 뜬다. 5시 17분이다.
3주가 흘러도 눈이 자꾸 떠진다. 5시 30분을 넘지 못한다.
2달이 지나면서, 아침 눈을 뜨려고 하는 찰나에 이성으로 '뜨지 마'라고 내 눈동자에 명령을 한다. 이미 정신은 깨어졌지만, 눈만 뜨지 않은 상황이 불편함 그 자체다.
출근 아침 , 울리지도 않은 알람을 먼저 끄고 피곤한 몸을 일으켰던 것은, 회사에 늦지 않게 가기 위해서는 꼭 그렇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20년간 강박관념 같은 거였다.
사회생활 초년생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행동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러한 행동이 의도적인 아닌 나와 하나가 된 습관으로 된 것이...
'퇴사'전에 미리 알았다면 몇 년간이라도 아니 몇 달동 안 만이라도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을 텐데.....라고 잠시 생각해본다.
그러나 아마도 나는 '퇴사'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본능과 이성을 이기는 이러한 강한 습관이 나에게 있었다는 것은 '퇴사'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달 전까지는 '졸리다'는 본능을 이기더니,
이젠 일부러 '뜨지 마' 하는 이성을 이기는 이 강한 행동습관을 처음 대면하며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키운 습관이지만 이제야 깨닫고, 어떻게 서로 아는 척을 해야 할지 몰라 서먹하게 바라보는 중이다.
20년 동안 지각을 안 하게 해 준 내 행동습관에게 우선 '수고했다'라고 말해주고, 가능한 계속 함께 가자고 부탁해본다.
다시 알람을 자기 전에 맞추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도 맞춘 알람이 울리기 전에 나는 눈을 떴고, 동시에 알람을 껐다.
여전히 내 알람 소리는 들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