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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성 작가 Oct 28. 2019

Equality and Equity

교육의 절대적 공정과 상대적 공정. 정의로운 공정은 무엇인가

"재성아, 너는 수시로는 어려워. 수상 실적도 없고 내신도 썩 좋지 않아. 그냥 정시로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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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시 출신이다. 다시 말 해 수능 한 방으로 대학에 왔다. 나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모의고사의 전교등수 = 내신의 반등수였다. 딱히 수상 실적도 없었다. 말했다시피 내신도 대단히 좋은 편은 아니었다. 단지 모의고사는 운 좋으면 서울대를 갈 정도 나오고, 보통은 연대 갈 정도는 나왔다. 나에게 잘 맞는 전략은 정시였다. 그렇게 나는 정시로 시험을 봤고, 원하는 곳에 정시로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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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 3때 학교 교육을 제외한 일체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 흔한 학원도, 주변 사람들도 한번씩은 하던 과외도, 그리고 당시 열풍이 불기 시작했던 메가스터디 등의 온라인 강의도 듣지 않았다 .혼자 계획을 짜고 그 계획을 독하게 지켰다. 자랑하려는게 아니다. 나는 그래야 하는 사람이었다. 남이 설명해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유형보다, 내가 스스로 하나씩 파 내려가야 이해가 온전히 되고 성적이 오르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이런 형태였기 때문에 대학에 가서는 수백-수천 페이지의 원서 시험 범위 중에서 교수님이 찍어주는 내용을 집중해서 공부했어야 했는데 무식하게 꾸역꾸역 전체 범위를 하나하나 공부하다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점수는 오히려 잘 나오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냥 우연찮게 교습을 받지 않는 방향이 내게 맞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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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직업이 다양화가 되었다지만, 여전히 교육과 좋은 대학은 우리 사회에서 더 나은 기회를 보장해주는 가장 보편적 장치가 맞다.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버는 기회를 주는건 아니라 하더라도 한단계 더 나은 기회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큰 장치다. 내가 그렇게 고 3때 우겨서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했다면? 아마도 큰 확률로 지금과는 꽤 다른 삶을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영어 실력도 지금보다 한참 못했을 것이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도 지금과 매우 달랐겠지. 나 스스로의 능력이 아니라 내가 어떤 환경에 속해있었기에 지금 갖추게 된 많은 사항들을 나는 갖추지 못한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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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는 얼핏 보면 '공정'해 보인다. 하지만 절대적으로는 공정해 보이는 그 싸움이 조금만 생각해보면 진짜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총칼 다 들고 갑옷까지 갖춘 다음 전장에 뛰어들고, 누군가는 맨몸에 나무 막대기 하나 늘고 배틀로얄을 하라고 하는게 공정하다고 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거 그냥 상대방 죽이면 끝나는 게임이니 얼마나 공정해?' 라고 말하고 있는 꼴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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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더 높은 교육과 더 나은 생활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더 수준높은 교육의 기회를 받고,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그 시간이 10년 넘게 쌓이면 제 아무리 타고난 능력이 별로라 하더라도 그런 좋은 환경에 노출되지 않았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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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3 때 사교육을 받지 않고, 투지로 공부해서 목표를 이루었다지만 내가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 때부터 최고수준의 교육을 받았다면 나는 어땠을까? 아마 내가 목표로 했던 학교에 진학하는데 내가 고 3때에 쏟아부었던 노력만큼을 붓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어쩌면 더 좋은 점수로 부모님과 내가 모두 동의할만한 서울대 의대에 진학도 가능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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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어학연수 등을 다녀온 적이 없다. 그럼에도 영어로 일 하는게 아주 고통스럽지는 않게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 오르기까지 나는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나는 정규 영어 교육은 중1때부터 받았고, 영어 역시 별도의 과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학원은 다녔다. 하지만 문법과 독해 위주 교육이었다. 나는 약 1만시간 CNN과 아리랑 TV를 듣고 따라 읽는 훈련을 첫 단추로 (다시 말하지만 해당 건으로 영어를 마스터 한게 아니라 그걸 첫 단추로) 우연히 외국인들과 일할 기회에서 그나마 조금은 나아진 영어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런 내가 어린 시절부터 영어 회화 교육을 받고 청소년기에 1년이라도 외국에서 생활했다면? 아마도 30대가 넘어 영어로 인해 고통받았던 내 고통의 정도는 다소 경감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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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재능, 배경, 노력의 3박자가 어우러져 그 성과가 나타나게 된다. 정시 확대는 겉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의 정도가 엇비슷하다는 전제 하에, 배경이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서민 가정과 중산층 이상의 가정의 차이는 이미 그 차이를 벌려놓고 시작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는 시작부터 맨발로 자갈밭을 뛰는데, 옆에선 SUV를 타고 질주하는 일을 보고 '결승선까지 들어오기만 하면 되잖아' 라며 공정하다 생각하지는 않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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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예외적인 케이스였던 내가 보더라도 정시 교육 확대는 Equality에 부합하지 Equity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과연 마지막 결과물 하나가 같다는 이유로 이를 공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막대기 하나 없이 맨 몸으로 콜로세움에 들어가는 자와, 철갑옷에 온갖 무기를 들고 콜로세움으로 향하는 자. 이 싸움이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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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나는 배경에서 강남 학생들과 비교해서 다소 못미치는 환경이었던게 맞다. 대신 종종 아이큐 검사하면 147 정도는 나오고 당시 고3 시절 내가 했던 노력은 어지간한 고3 학생들이 공부하는 절대 시간의 2배 이상이었다. 그 밀도까지 따지면 비교도 못할 수준. 그만큼 재능과 노력에서 비벼볼만 했으니 결과가 나온거다. 결과는 대부분의 경우 거짓말을 잘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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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함을 위해 정시확대 라는 말은 그래서 맞지 않는다.
정시제도의 혜택으로 대학을 입학했고 그로 인해 지금 나름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나 조차도 이에 대해 공정한 제도라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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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교육제도에서 정시 확대를 재고해주시길 바란다.
진정으로 '공정'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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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재성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부를 졸업하고 맥킨지 앤 컴퍼니 (McKinsey & Company) 컨설턴트로 재직했다.

현재 제일기획에서 디지털 미디어 전략을 짜고 있다.

저서로는 행동의 완결,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시즌 I,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시즌 II 가 있다.


https://youtu.be/qj7xOkAj8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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