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정말 불이 꺼지면 어떡하지?
며칠 후면 36개월, 만 3세가 되는 우리 아이는 우주를 좋아한다. 한동안 공룡 관련 책을 열심히 보더니, 이제 다시 우주 책에 관심을 가지며 보고 있다. 그러던 와중, 태양의 플레어(flare, 태양 표면의 폭발 현상) 사진을 보더니 불이 났다며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는 아빠에게 비장하게 이야기한다.
해님 불 꺼야 돼!
참고로 우리 아이가 본 책에는 아래 사진과 같은 플레어 사진이 있었다. 불을 끄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태양에 불을 끌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아이에게 타이르듯이 이야기해 준다. 태양에 불을 끄면 안 된다고. 그러니 아이가 이어서 하는 말
해님 불 꺼지면 지구가 될 거야!
당연히 온다. 다만, 인류는 그것을 볼 수 없을 뿐.
아래 그림과 같이 현재 태양의 나이는 약 46억 년으로, '주계열성(main sequence star)' 단계에 있다. 주계열성은 중심의 수소 원자가 핵융합을 해서 헬륨을 만드는 별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생성되며 우리 아이가 끄고 싶어 하는 불이 나는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태양에서 방출하는 에너지를 통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태양의 수소 원자는 한정되어 있다. 약 64억 년이 지나면, 수소 핵융합이 끝나고, 헬륨 연소가 시작된다. 하지만 태양은 헬륨이 온전히 융합되기에 밀도가 낮고 온도 역시 낮다. 따라서 태양의 외부층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적색거성(Red Giant)으로 변화하게 된다. 적색거성 단계에서 태양의 크기는 지구의 궤도에까지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때 지구라는 천체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태양이 지금보다 규모가 컸다면 적색거성이 아닌 초신성 폭발을 거쳐 블랙홀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태양은 그 정도 규모에는 이르지 못하고 헬륨 융합 단계에서 마지막 생의 불꽃을 활활 태운다. 헬륨이 융합되며 발생하는 에너지로 태양의 외부 층은 우주 공간으로 분출되며 밝은 성운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남은 핵은 외부로 노출되며 백색 왜성이 된다. 그리고 백색 왜성 단계에서는 에너지를 생성하지 않으며, 서서히 식어간다. 점점 태양은 어두워지게 되고 우주 상에서 잊히게 된다. 그렇게 항성으로서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적색거성 단계에서 태양은 지구까지 팽창할 것이기에, 지구는 태양으로 빨려 들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전에 이미 지구상의 생명체는 이미 전멸했을 것이다. 태양은 내부 수소 연료를 태우며 10억 년마다 밝기가 약 10%씩 높아진다. 즉, 지구는 자연스럽게 태양의 영향을 받아 뜨거워진다.
아마 지구는 7억 년이 지나면 물을 기반으로 진화한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행성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지구는 점점 뜨거워져 물이 증발할 것이고, 시일이 더 지나면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하지 않는 행성이 된다. 이 시기를 학자들은 8억 년 후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쯤 되면 지구는 금성과 유사한 환경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어쩌면 화성 이주 계획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 액체 상태의 물이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행성을 의미하는 거주 가능 지역이 지구를 지나 화성으로 갈 것이고, 물을 필요로 하는 지구의 생명체에게는 화성이 적합한 생존 장소가 될 수 있다. 물론 화성도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지구가 그랬던 것처럼 화성도 뜨거워지게 되며 지구의 운명을 따라갈 것이기에.
물론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생명은 길어야 100년 지속될 것이고, 인류의 역사가 7억 년 뒤는커녕 1천만 년이라도 지속될지 의문이기에. 그럼에도 이러한 상상은 우리에게 하나의 유희거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인생의 허무함도 느낄 수 있게 한다.
태양에 불을 꺼야 한다는 우리 아들. 하지만 직접 불 끄긴 무서운가 보다.
해님 불 꺼야 해! 119 전화해야 돼!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건지 119에 전화해야 한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다. 어느새 부쩍 성장한 모습을 보며 감탄하며, 대화를 이어나가 본다.
아빠 : 그럼 도둑 나오면 어디 전화해야 해?
아들 : 경찰! 112!
아니 112까지 알고 있다니! 그럼 112와 콤보로 나오는 그것도 한 번 물어보자.
아빠 : (112에 한 번 더 깜놀!) 그럼 간첩이 나타나면 어디 전화해야 해?
아들 : 간첩이 뭐야?
아빠 : 도둑보다 더 나쁜 사람이야. 113에 전화해야 해.
아들 : 113!
라떼는 간첩신고까지 콤보로 배웠는데, 이제 간첩신고 관련 포스터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아빠는 너보다 조금 더 큰 6살 때 웅변학원을 다니며 반공정신을 키웠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