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꾸준 Oct 28. 2022

그림 그리기

2022-08-15(월)_제시어 글쓰기

제시어 

-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

- 육체파

- 매각허가 결정

- 중략








우람은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에 놀랐다. 어제 함께 식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결혼을 앞둔 행복한 예비신랑이었다. 예비신부와 함께 결혼 전 등산을 위해 이 산장을 찾아왔다고 했다.


"경우 형님이 자살했다구요...?"


우람은 산장 주인에게 되물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아."


산장 주인은 본인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떨고 있었다. 본인의 산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아직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우람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고, 산장 주인은 설명했다. 예비 신부였던 서희가 잠을 자다가 눈을 떠보니, 예비 신랑인 경우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희가 혼자 산장 이곳 저곳을 찾아보다가 산장 주인의 방에 들렀고, 이에 산장 주인 부부도 함께 경우를 찾아 나섰다고 한다.


"근데 산장 어디를 찾아봐도 안 보이는 거야. 비는 쏟아지지, 밤이라 앞은 잘 안 보이지.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

"그럼 결국 경우 형님을 찾지 못한 건가요?"

"찾았지, 근데 찾은 곳이..."

"어디죠?"

산장 주인은 테라스 쪽을 가리켰다.

"테라스요?"

"아니, 테라스 밖을 봐."


우람은 테라스 밖을 내다보았다. 테라스 바깥은 산으로 둘러싼 풍경이었다. 우람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산장의 테라스 쪽은 가파른 절벽이었다. 우람은 허리를 숙여 좀 더 아래쪽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비가 쏟아져 잘 보이지 않았다. 산장 주인은 우람의 옆에 서서 손전등으로 절벽 아래를 비췄다. 산장 주인이 손전등을 비춘 곳에 사람 발처럼 생긴 형체가 보였다.


"경우형인가요?"

"아마도. 그가 입고 있던 옷차림과 똑같다고 하더라고."

"서희가 그래요?"

"응."


우람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손전등이 비추는 형체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우람은 불과 몇 시간 전 저녁식사를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


"걱정 마세요. 일기예보를 보니깐 내일 아침이면 비가 그칠 겁니다."


산장 주인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을 했다. 본인이 이 곳에서 20년간 산장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폭우와 태풍을 만났지만, 이 곳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식당에 모인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산장의 3층은 산장 주인 부부가 살았고, 2층을 객실로 사용했다. 201호에 묵고 있는 우람이 말을 꺼냈다.


"우리 이렇게 모인 것도 정말 인연이네요. 저는 이우람이라고 합니다. 28살이구요. 서울 살아요. 두 분은요?"


우람은 경우와 서희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경우가 먼저 대답했다.


"아, 저는 최경우라고 하고, 31살입니다."

"저는, 김서희라고 해요. 27살이에요."


우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은 연인 사이냐고 물었다. 너무 다정해 보인다며 부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고맙습니다. 네 저희는 올해 10월에 결혼할 예정이랍니다."


서희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우람의 말에 답했다. 산장 주인의 아내가 끓인 김치찌개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산장 주인은 식탁에 앉은 사람들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흰 쌀밥을 밥그릇 가득 퍼서 나눠주었다.


"아, 얘는 부모님이 산행을 가셨는데, 아직 안 돌아오셨다고 하네요. 비가 많이 오는데 걱정이네요."


산장 주인이 말했다.


"저는 세라에요. 임세라. 영어 이름도 세라에요. 세라 임."


세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소개했다.


"세라는 몇 살이야?"

"13살이요."


우람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부모님은 곧 돌아오실 거라고 말하며 전화는 해 보았냐고 물었다.


"핸드폰 안 터져요."


우람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해 보았다. 인터넷 앱을 켜보기도 하고, 와이파이를 꺼보기도 하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전화가 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런가. 사장님 여기 따로 유선 전화는 없나요?"


산장 주인은 우람의 물음에 대답했다.


"아, 여기 비 많이 오면 전화나 인터넷이 잘 안 터지고 그러더라고. 통신사들도 고쳐줄 생각이 없나 봐. 너무 산 속이고 사용량도 많지 않으니까."


우람은 세라를 안심시켜주려고 애를 썼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곧 돌아오실 거라는 확신할 수 없는 말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우람은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경우와 서희에게 화재를 돌렸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어요?"


경우와 서희는 서로 마주 보고는 누가 말할지 무언의 눈빛을 주고 받더니 경우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3년 전 소개팅에서 만났으며, 경우는 서희를 보자마자 결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와, 처음 봤을 때부터요?"


"네, 너무 이뻐서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서희가 저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제가 엄청 끈질기게 노력했죠."


서희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경우는 첫 데이트에 고백했던 이야기, 처음 여행 갔던 이야기, 그리고 최근에 프러포즈까지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김치찌개를 모두 먹고 나자 산장 주인 부부가 그릇들을 치웠다. 우람이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사장님, 잘 먹었습니다. 김치찌개가 정말 맛있었어요. 김치찌개만 따로 팔아도 되겠어요. 사모님 솜씨가 정말 기가 막힙니다."

"아이고, 고마워요."


산장 주인의 부인은 미소 지으며 감사 인사를 전하고는 냄비와 그릇들을 치웠다.


"육포랑 맥주도 있으니까, 드시고 싶으면 드셔요."

"아 정말요? 맥주도 공짜입니까?"

"맥주랑 육포는 아쉽지만 유료입니다."

"아, 역시 그렇죠? 하하"


산장 주인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우람은 맥주 한 캔과 육포를 구매했다. 경우와 서희에게도 맥주와 육포를 권했다. 세라는 미성년자는 술을 마실 수 없기에 방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우람은 혹시 혼자 있는 게 무서우면 여기에 있어도 된다고 말하며, 주스도 있다고 했다. 세라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토마토 주스도 있어요?"

"토마토 주스? 잠깐만. 찾아볼게."


우람은 가지런히 정렬된 음료수 냉장고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토마토 주스는 없고, 포도랑 오렌지 그리고 망고주스 있어."

"그럼 포도 주스 주세요."


우람은 작은 팩이 들어있는 포도 주스를 세라 앞에 내려두었다. 그리고 육포를 뜯어 식탁 위에 펼쳐두었다. 캔맥주를 시원하게 따고는 입맛을 다셨다. 경우와 서희가 있는 쪽을 향해 자신의 캔맥주를 살짝 내밀었다. 세 사람은 가볍게 짠을 하고 각자 고개를 돌려 맥주를 한 모금씩 마시려고 했다. 그 때 세라도 자신의 포도 주스를 살짝 내밀었다.


"그래, 세라도 짠 할까?"


캔맥주 세 캔과 포도 주스 하나가 서로 부딪혔다.


-


"그러니까, 이 경매가 진짜 좋아. 경매 공부를 해야 돼. 누구나 할 수 있어."

"그래요 형님?"

"그럼, 나 경매 안 했으면 아직도 집도 없고 차도 없이 공장에서 기계처럼 일하고 있었을 걸."

"얼마나 버셨는데요 형님?"


술기운이 오른 우람은 경우를 형님이라 불렀다. 서희는 피곤하다며 세라와 함께 먼저 2층의 숙소로 올라갔다. 식당에는 우람과 경우만이 남아서 각자 5번째 캔맥주를 뜯었다. 육포와 마른 오징어, 땅콩 등 다양한 안주의 껍데기들이 식탁 위를 채웠다.


"경매 한 번 할 때마다 적어도 2에서 3은 벌어."

"2억에서 3억이요?"

"아니, 그 정도면 지금 집 안 샀지."

"아 2천에서 3천 정도요?"

"응 보통 그래."


경매 나온 집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구매한 후에 리모델링을 해서 다시 팔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근데 그만큼 조심해야 하는 것들도 많다고 했다. 우람은 경우의 말을 모두 이해하진 못했지만, 정성껏 고개를 끄덕였다.


"아 형님, 저는 이 머리 보다는 육체 쪽이 발달한 육체파라 다 이해는 못하겠지만, 여하튼 투자가 필요한 거네요."

"그렇지. 이번 경매도 매각허가 결정이 나서, 또 준비해야지. 팔 준비."

"대단하시네요 형님 진짜. 존경합니다. 저는 그냥 다 몸으로 때우거든요."

"젊어서는 괜찮은데, 나이 들면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 내가 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그 사람 영상 중에 17번째 영상이 있거든? 그게 이 경매 관련 바이블인데 갑자기 제목이 생각이 안 나네. 여하튼 그 책이 중간 부분은 별로 도움이 안 되고 처음하고 끝 부분이 진짜 알맹인데, 그걸 아주 잘 중략해버리고 요약한 영상이거든. 그건 진짜 꼭 봐라."

"감사합니다 형님. 이번 산행 끝나면 형님이 말씀해 주신 유튜브 채널 보면서 경매 공부 시작해야겠어요."


우람은 단호한 표정으로 공부를 결심했다. 경우는 자신도 공부 못해서 대학도 안 가고 공장에 취직해서 생산직으로 일을 열심히 했는데, 미래를 생각해서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도 우람은 대학도 나오고 나름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 충분히 잘 해낼 것이라고, 자신 같은 사람도 했으니 우람도 충분히 잘 할 것이라고 했다. 우람은 자신도 그렇게 해보겠다고 하며 여섯 번째 맥주 캔을 뜯었다. 그때 경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경우는 자신은 서희가 기다리고 다며 먼저 올라가겠다고 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저는 빗소리와 물방울이 맺힌 창문을 안주 삼아 방금 뜯은 이 맥주 한 캔 마저 마시고 올라가겠습니다."


경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숙소로 올라갔다. 우람은,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어야 겠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열었다. 통신사 표시와 전파 상태를 바라보니 한 칸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세라의 부모님께 전화를 해 볼 수 있겠다며 자리에 일어나자 간신히 버티던 한 칸은 이내 사라졌다. 우람은 다시 자리에 앉아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서희는 믿을 수 없다며, 경우가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서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꼈다. 산장 주인의 아내가 서희를 안아주었다. 산장 주인의 아내도 이내 흐느끼기 시작하면서 식당은 두 여인의 울음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제가 경우 형님이랑 마지막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분명 그때까지도 경우 형님이 자살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절대로. 저에게 부동산 경매도 추천해 주시고, 앞으로 결혼할 생활에 대해서 엄청 기대하고 계셨어요. 제가 경우 형님을 오늘 처음 만났지만, 그래서 잘 모르겠지만, 절대 자살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산장 주인이 이에 대답했다.


"그럼 누가 일부러 죽였다는 말이야? 누가? 왜?"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는... 자살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거죠."


우람은 움츠러들었다. 그가 한 말은 명백히 그저 사실이었다. 그때, 식당에 세라가 들어왔다.


"무서워서요."


세라는 산장에서 우왕좌왕하는 소리에 잠이 깼고, 1층에서 울음소리가 들려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웠다고 했다. 우람은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며, 세라에게 식탁에 와서 앉도록 권유했다. 세라는 식탁에 와서 앉았다. 세라가 입을 열었다.


"저 들었어요."


우람은 경우의 이야기를 세라도 듣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에 대한 걱정도 깊어졌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기가 너무 심심해서 그림 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근데 통화 소리가 들렸어요."

"통화?"


세라는 '여보세요?' 라는 소리가 들려 혹시 통화가 되나 싶어 자신의 휴대폰을 봤지만, 자신의 휴대폰은 여전히 먹통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부탁을 해보고자 문을 열었고, 2층 복도 끝 테라스로 걸어가는 남자를 보았다. 조명이 어두워서 누군지 잘 보지 못했다고 했다.


"경우 형님이었을 거야. 경우 형님이 휴대폰 울리면서 서희가 기다린다고 올라가셨거든. 나는 당연히 서희가 전화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서희는 조금 진정이 된 상태로 이 대화에 참여했다.


"경우 오빠랑 몇 시까지 술을 마셨어요? 외부인이 들어왔을 수도 있잖아요."

"이 폭우에 외부인이 들어올 리도 없고, 외부인이 들어왔으면 우리가 모를 수 없어. 1층 현관문을 잠가 뒀거든."


산장 주인이 외부인의 소행이 아닐 것이라고 단언했다. 서희는 다른 가능성을 제기했다.


"창문으로 들어왔을 수도 있잖아요. 외부인이 들어와서 우리 오빠를..."

"하지만, 외부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왔으면 물 자국이나, 흙이 묻어가 했을 거야.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아무런 흔적 없이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그리고 아까 우리가 경우를 찾으러 다닐 때도 그런 흔적들은 없었잖아."

"하지만, 하지만. 가능성은 있잖아요."

"아니야. 없다고 보는 게 맞지."


산장 주인은 단호하게 외부인의 침입 가능성을 제외했다.


"경우 오빠가 방으로 올라간 게 몇 시였죠?"

"글쎄, 잘 기억 안 나는데.. 아마도 10시 30분 쯤이었던 것 같아."

"세라가 그 남자를 본 시간은 언제야?"

"10시 32분이요."


세라는 정확히 기억해 냈다. 부모님을 기다리면서 계속해서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다고 했다. 그림 그리기 놀이도 너무 지겹고, 잠은 오지 않고, 시간은 흘러가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핸드폰도 전화가 될까 싶어 화면을 봤을 때 시간이 정확히 10시 32분이었다고 했다.


"그때 통화 내용을 혹시 들었니 세라야?"


서희는 세라에게 다시 물었다.


"정확히는 다 못 들었지만, 뭔가 다급해 보였어요. 화도 많이 난 것 같았고요. 욕도 들렸어요."


세라는 설명을 이어갔다. 자신이 들었던 내용들을 이야기 했다. '너 때문에 내 인생 망했다. 나 곧 결혼하다. 근데 이렇게 도망가 버리면 어떡하냐. 책임져라.' 같은 내용들이었어다.


"그럴 리가 없어. 경우 오빠가 아닐 거야. 경우 오빠가 인생이 왜 망해... 혹시 우람 오빠 아니야?"

"나는 경우 형님 올라가고 나서도 식당에서 30분은 더 앉아 있었어. 그런 통화를 한 내역도 없고."

"통화 내역은 지우면 되죠. 세라야. 혹시 그 남자 말고 따로 2층에 올라온 사람은 없었어?"


세라는 고개를 저었다.


"우람 오빠. 혼자 있었다고 하셨죠? 그럼 아무도 우람 오빠가 혼자 식당에 있었는지 못 봤겠네요?"

"응, 아무래도 그렇지. 뭐야? 지금 나 의심하는 거야?"

"의심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잖아요."

"그럼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계속 방안에 있었는지 어떻게 알아?"

"저는 계속 방에 있었어요. 자고 있었다고요. 뭐야. 오빠 지금 저 의심하는 거예요?"

"네가 먼저 나를 의심했잖아."


산장 주인이 두 사람을 말렸다.


"일단 진정해 둘 다. 세라도 있는데 뭐 하는 거야?"


서희는 우람에게 등을 돌렸다. 서희의 어깨가 들썩들썩 하더니 이내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을 잃었는데, 자기가 범인으로 의심까지 받으니 너무 서럽다며 통곡했다. 우람은 자신이 잠시 흥분했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서희는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세라는 식탁에 앉아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일단 지금은 밤이 너무 늦었고, 비도 너무 많이 오니 내일 아침이 되기까지 기다리자고."


산장 주인은 서희를 달래며 이야기했다.


"우리 오빠는 지금 저 차가운 곳에서 비 맞으면서 있는데 어떡해요! 저는 혼자라도 오빠 구하러 갈 거예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서는 살아 있을 가능성이 없지."


서희는 진정하지 못하고 서럽게 울다가 결국 지쳐서 실신해버렸다. 산장 주인의 아내가 서희를 부축해 방으로 옮겼다.


"자네도 일단 내일 아침까지 방에서 기다리게. 혹시 모르니 방 문 잘 잠그고."


산장 주인이 우람에게 당부하며 방으로 올려보냈다.


"세라는 무서우면 우리 방에서 같이 잘까?"


세라는 괜찮다고 고개를 저으며 혼자 방에 있겠다고 했다. 우람도 서희도 세라도 모두 각자의 방으로 갔다. 산장 주인 부부도 3층의 방으로 올라갔다.


-


우람은 술기운에 금방 다시 잠에 들었다. 우람은 꿈을 꾸었다. 꿈에는 경우가 나왔다. 경우는 우람과 어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서있었다. 경우가 유리벽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뭔가 말을 했지만,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유리벽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소리만이 작은 북 소리처럼 들릴 뿐이었다. 우람은 무슨 소리인지 듣기 위해 노력했다. 유리 벽을 부숴버리려고 했으나 유리 벽이 너무 튼튼했다. 우람은 경우의 입모양을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입모양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우람은 문득 생각이 났다. 우람은 손으로 유리벽에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경우는 우람의 손이 보이지 않는 듯 계속해서 벽을 두드렸다. 마치 경우의 방향에서는 우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계속 해서 '둥둥' 하는 작은 북소리만이 귀에 들어왔다.


둥둥! 둥둥! 퉁퉁! 쿵쿵! 쾅쾅쾅!


큰 소리에 우람은 잠에서 깼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3시가 조금 넘었다. 천둥소리가 아주 크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들렸다. 우람은 조심스레 문 앞으로 다가갔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세요?"

"저 세라인데요."


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람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혹시 다른 사람이 있을까 하여 문 밖을 조심히 살펴보았으나 세라 뿐이었다.


"그래 세라야. 무슨 일이니?"


세라는 보여줄게 있다고 했다.


"지금 이 시간에?"


세라는 자신이 살려달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밖에 나와서 확인했다고 했다. 절벽 아래쪽에서 들리는 소리였다고 했다. 아무래도 경우가 살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진짜로 들었어?"


세라는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테라스 쪽을 내려다보니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고 했다. 우람은 그게 사실이라면 당장 산장 주인에게 장비를 빌려서라도 내려가서 구출해야 겠다고 했다. 그러자 세라가 말렸다.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라며, 같이 한 번 가서 확인해 보자고 했다.


"확실히 들었다면서?"

"혹시 제가 부모님 걱정 때문에 꿈을 꾼 걸 착각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아저씨한테만 먼저 얘기했어요. 괜히 다른 사람들까지 다 깨웠는데, 제가 잘못 보거나 잘못 들은 거면 너무 죄송할 거 같아요."


우람은 세라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우람은 함께 확인하기 위해 테라스로 향했다.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테라스에 나가자 마치 옆에 폭포가 있는 것 같이 빗소리가 컸다. 문득 우람은 이 빗소리 때문에 세라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까 경우가 있던 곳을 내려다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세라가 자신의 휴대폰의 플래시를 비췄지만, 역부족이었다. 뭔가 움직이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고 확실히 보이지가 않았다. 우람은 자신의 휴대폰을 함께 꺼내 빛을 비춰보았다. 우람은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쏟아지는 비가 우람의 뒤통수와 등을 적셨다. 우람은 아직 술 기운이 남아 있어 조금 어지러웠다.


"세라야 잘 안 보이는데? 잘못 들은 거 아닐까?"


우람은 테라스의 난관에 허리를 걸치고 숙인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까치발을 살짝 들었다. 우람은 비도 너무 많이 오고, 어두워서 확인이 되지 않는다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 순간 누군가 자신의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리는 것이 느껴지면서 자신의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 아! 아악!"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우람은 테라스 바깥쪽으로 떨어졌다. 우람의 몸이 뒤집어지면서 위쪽을 바라보았다. 우람은 세라와 눈이 마주쳤다. 세라는 우람이 떨어지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람은 순간 세라의 표정을 정확히 보았다. 분명히, 아주 명백히 세라는 이를 보이며 웃고 있었다.


"그림 그리기 놀이는 이제 너무 지겨워."

이전 05화 [작가노트] 부메랑은 반드시 돌아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