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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빵 한 조각

그건 우정일 수도 따뜻한 손길일 수도 마침내 사랑일 수도

사랑의 빵 한 조각

요양원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항상 느껴지는 그 특유의 냄새. 소독약과 노인들의 체취가 섞인 묘한 냄새가 오늘도 나를 맞이한다. 복도를 걸어가다 보면 휠체어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시는 분들, TV 앞에 모여 있지만 무슨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고 그저 앉아 계신 분들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김순자 할머니가 눈에 들어 온다. 초기 치매를 조금 지나신 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환하게 웃으신다. 때로는 내 이름을 기억하시기도, 때로는 잊으시기도 하지만 그 미소만큼은 변함이 없다.

"할머니, 오늘 점심 뭐 드셨어요?"

할머니는 고개를 흔드신다. 뭘 드셨는지 기억이 안 나시는 건지, 아니면 별로 드시지 못하셨다는 뜻인지. 요양원의 식단표를 보면 영양가 있는 식사라고 적혀 있지만, 실상은 그저 '죽지 않을 만큼'의 양이다. 노인들의 식판에 담긴 음식은 언제나 소량이고, 간식이라 해봐야 설탕물에 가까운 주스나 작은 과자 한 조각이 전부다.

오늘은 특별히 빵을 하나 가져왔다. 할머니의 얼굴이 밝아진다. 하지만 할머니는 빵을 한 입 베어 물더니 나머지를 내게 건네신다.

"너 먹어. 맛있어."

이미 수십 번 겪은 일이지만, 매번 가슴이 아프다. 할머니는 분명 배고프실 텐데, 왜 자신의 것을 나눠주시려는 걸까? 다른 직원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사랑받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예요. 노인들은 뭔가를 줄 수 있을 때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세요. 하지만 습관이 될까봐 저희는 받지 말라고 해요."

직원의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곳의 요양보호사들은 매일 중노동을 하며 수십 명의 노인들을 돌본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지치고 힘들다. 노인 한 분 한 분에게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주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할머니, 전 먹었어요. 할머니 드세요."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신다. 나는 빵을 반으로 나눠 한쪽을 먹고, 나머지를 할머니께 다시 건넨다. 할머니의 눈빛이 환해진다. 함께 나눠 먹는 것, 그것만으로도 할머니는 행복해하신다.

요양원은 모순의 공간이다. 노인들을 돌본다고 하지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하는 곳, 생명을 연장시키지만 삶의 질은 보장하지 못하는 곳. 그럼에도 요양보호사들이 없다면 이 노인들은 갈 곳이 없다. 가족들도 24시간 돌볼 여력이 없는 현실에서, 요양원은 필요악과도 같은 존재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으니 할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신다.


"내가 젊었을 때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살았어. 지금은 다 바뀌었네..."

말끝을 흐리시는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맺힌다. 갑자기 할머니의 표정이 달라진다.

"우리 아들... 오늘 올까? 명절인데..."

오늘은 명절도 아닌데, 할머니의 머릿속 달력은 이미 오래전에 멈춰있다. 3년 전에 한 번 다녀간 아들의 방문을 아직도 기다리고 계신다.

"내가 밥을 많이 해놔야 하는데... 아들이 나갔다 오면 배고플텐데..."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내 손을 꼭 움켜쥔다. 그 손에는 한평생 자식을 위해 일하며 생긴 굳은살이 가득하다. 어쩌면 빵을 나눠주시려는 것도 평생 누군가를 먹이는 데 익숙한 어머니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우리 딸도... 보고 싶어. 지난번에 왔을 때 많이 말랐더라고... 밥은 잘 먹고 다니나 모르겠어..."

말씀을 이어가시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떨려온다. 자식에 대한 걱정은 치매도 지우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요양원 벽 너머로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식들을 찾으시는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안아드렸다. 이 순간, 깨달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스템의 변화도, 더 많은 시설도 아닌, 그저 '사랑'이라는 것을. 자식을 향한 할머니의 그리움처럼 순수하고 무조건적인 그 사랑.


노인들은 먹을 것보다 사랑에 더 굶주려 있다.

빵 한 조각을 나눠주는 그 작은 행위 속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자존감이 담겨 있다.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인정받고 싶고, 자신들의 노력이 가치 있다고 느끼고 싶어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저 자리에 앉아 있을지 모른다. 그때 내 곁에는 누가 있을까? 내가 지금 베푸는 사랑이 언젠가 내게 돌아올까?

효(孝)는 단순히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것이다. 요양원의 벽 너머에 계신 우리의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오늘도 한 조각의 사랑을 기다리고 계신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빵 한 조각이 아니라, 그 빵에 담긴 마음이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은 결국 '사랑'뿐이다. 사랑만이 이 차가운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 있고, 사랑만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할머니, 내일은 더 맛있는 빵 나눠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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