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는 자식들 품으로 돌아가는 어머니
한 사람의 생이 저물어갈 때, 그 눈빛에서 초점이 사라지는 순간. 그것은 육체의 쇠약함인가, 아니면 영혼이 이미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84세의 그녀가 누워있는 곳에서, 시간은 다른 흐름으로 흘러간다.
그녀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링겔이 꽂힌 그녀의 팔은 이제 스스로 움직일 힘조차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지금 이 순간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60년 전, 갓 스물이 되어 사랑에 빠졌던 봄날을 거닐고 있었다.
"영호야, 우리 저 개울가에서 사진 한 장 찍자."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꽃을 든 그녀를 향해 젊은 남편이 미소 지었다. 햇살은 그들의 젊음 위에 쏟아져 내렸고, 세상은 온통 그들의 것이었다. 그날의 사진은 지금도 그녀의 작은 지갑 속에 구겨진 채 남아있다.
30대에 남편을 잃고, 그녀는 딸 하나를 위해 살았다. 교복을 다림질하던 새벽의 기억, 딸의 대학 입학식에서 흘렸던 뜨거운 눈물, 딸의 결혼식 날 감추려 했던 쓸쓸함. 모든 순간이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어제의 일처럼 선명했다.
"어머니, 이따 저녁에 올게요. 오늘은 미역국 끓여 올게요."
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언제였을까. 일주일 전? 한 달 전? 시간의 감각이 희미해져갔다.
삼일 만에 그녀를 만났을 때, 나는 그녀의 팔에 꽂힌 링겔을 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르신, 어디가 아프세요?"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어르신, 식사를 잘하셔야 해요. 그래야 안 아프세요. 어르신 아프시면 슬퍼요."
그래도 그녀는 미동이 없었다. 그저 앙상한 가슴만 위아래로 세세하게 움직이고 있다.
같은 병실의 환자들이 눈짓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그들의 속삭임은 병실 곳곳에 메아리쳤다.
"저 할머니 이제 가망이 없대. 폐혈증이래."
"아이고, 불쌍해라. 근데 저렇게 사는 게 뭐가 의미가 있을까?"
"자식도 자주 안 오던데..."
그들은 그녀가 모든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초점 없는 눈동자 뒤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평가, 판단, 동정의 말들을.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저녁 식사 시간, 그녀는 칫솔질을 하다 잠이 들었다. 폐혈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약이 독해서 그런다고 한다. 평상시에도 그렇게 음식을 먹다가도 잠이 들곤 했었다.
간호원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링겔의 종류가 바뀌고 노인의 팔엔 또 다른 주사바늘이 꽂혔다.
"어르신, 눈 좀 떠봐요. 계속 그렇게 감고 계실 거예요?"
간신히 뜨는 눈은 초점이 없었다. 이를 어쩌란 말인가.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얀 드레스를 곧 입을거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의 마음은 더욱 분주해졌다.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딸을 위한 기도였다.
'주님, 제 딸이 홀로 남을 때 잘 견딜 수 있게 해주세요. 저처럼 외롭지 않게 해주세요. 제가 다 못해준 사랑, 천국에서라도 계속 보낼 수 있게 해주세요.'
그녀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마음은 쉴 새 없이 딸을 위한 기도를 읊조렸다. 남편을 잃고 홀로 싸워온 세월, 그 어려움을 딸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딸이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그녀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평온했다. 두려움은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이제 긴 여정을 마치고 쉴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그리고 남편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60년 전의 젊은 남편이 저 세상에서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
'여보, 나 이제 곧 갈게. 기다리셨지요?'
그녀의 마음속에서 햇살은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나는 여러분이 보는 것처럼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초점 없는 눈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으로. 하지만 내 영혼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내 귀는 여전히 듣고 있습니다. 내 마음은 여전히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속삭이는 모든 말, "저렇게 살면 뭐하나", "불쌍하다"는 말들을 다 듣고 있습니다. 그 말들이 내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아십니까?
나도 한때는 여러분처럼 활기찼습니다. 사랑했고, 웃었고, 꿈꿨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내게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비록 지금은 말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지만
나는 단지 늙었을 뿐입니다. 내가 숨쉬는 한, 나는 여전히 이 세상의 일부입니다. 내가 의식이 있는 한, 나는 여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내 앞에서 나를 물건처럼 대하지 마세요. 내게 직접 말해주세요. 내 손을 잡아주세요. 내가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언젠가 여러분도 이 자리에 누울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떤 대우를 받고 싶으신가요? 그렇게 나를 대해주세요.
내일 아침 노인을 만났을 땐 팔에 주사 바늘도, 초점 없는 두 눈도 모두 반짝이길 하늘에 있는 신께 구해 본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열차의 종착역에 도착한다. 그 때 우리가 남기는 것은 물질이 아닌, 다른 이의 가슴속에 새겨진 따뜻한 기억이 아닐까. 생명의 의미는 그 형태나 상태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에 있음을 오늘도 되새겨본다.
두 눈이 반짝일 때 많이 만나고
두 귀가 잘 들릴 때 많이 사랑한다고 속삭여 주고
두 팔이 자유로울 때 많이 안아 주고
두 발이 자유로울 때 많이 찾아가라
그러면 인생이라는 열차의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
미련 남아 발길을 떼지 못하는 심장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