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식사 시간이세요.
기억의 바다에서 길을 잃은 이들, 과거와 현재 사이를 부유하는 영혼들. 그들의 마지막 여정은 어떤 모습일까. 세상과의 연결이 하나둘 끊어져가는 순간에도, 그들의 내면에는 여전히 생생한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누군가의 어머니로, 아버지로, 평생을 살아온 그들의 마지막 걸음걸음은 어떨까
김순자 할머니(87)는 오늘 아침에도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왔다. 주름진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복도를 걸어간다. 주름진 얼굴에는 무언가를 찾는 간절함이 가득하다. 그녀는 오늘도 집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40년 전에 살았던 그 집을.
"어머니, 어디 가세요? 아침 식사 시간이에요."
간호사의 부드러운 손길이 그녀의 어깨에 닿자, 할머니는 잠시 멈춰 선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이 간호사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기색이 없다. 그저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집에 가야 해요.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에요. 밥을 차려야 하는데..."
그녀의 아이들은 이미 60대다. 하지만 김순자 할머니의 시간은 거기서 멈췄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때, 남편이 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던 그때. 그녀에게 지금은 1970년대다.
요양원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복도를 밝게 비춘다. 그 빛 속에서 김 할머니의 하얀 머리칼이 은빛으로 빛난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느리지만, 어딘가를 향한 의지만은 단단하다.
옆방의 박상철 할아버지(92)는 침대 위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던 그는 이제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지 못한다. 가끔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른다. "적군이 온다! 모두 엎드려!" 90년이 넘은 그의 몸은 여전히 그 전쟁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요양원의 식당에서는 아침 식사가 진행 중이다. 스무 명 남짓한 노인들이 테이블에 앉아 있다. 그중 절반은 스스로 식사를 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도움이 필요하다. 간병인 최미영 씨(52)는 이정숙 할머니(89)의 입에 죽을 떠먹이고 있다.
"할머니, 한 숟가락만 더 드세요. 아침에 약도 드셔야 해요."
이 할머니의 눈은 공허하다. 마치 유리구슬처럼 빛나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듯하다. 그녀는 3년 전부터 말을 하지 않는다. 가끔 웃거나 울 뿐이다. 오늘 아침에는 웃고 있다.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창가에 앉은 윤명준 할아버지(85)는 바깥을 응시하고 있다. 그는 대학 교수였다. 평생 책을 가까이했던 그는 치매 진단을 받은 후에도 한동안 책을 읽으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글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다만 창밖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다.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파킨슨병도 함께 진행 중이다.
복도 끝 방에서는 정영순 할머니(94)가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다. 그녀는 요양원에서 가장 오래 산 주민이다. 7년 전에 들어와 지금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몸이 말라 있어 마치 나뭇가지 같다. 피부는 얇아져 종이처럼 바스락거린다. 그녀의 숨소리는 마치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지나가는 소리 같다. 미세하고 가늘다.
간호사 장미나(38)는 정 할머니의 혈압을 체크한다. 낮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다. 그녀의 심장은 마지막 힘을 다해 뛰고 있다. 장 간호사는 할머니의 이마에 부드럽게 손을 댄다. 체온도 낮다.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정 할머니가 이번 겨울을 넘길 수 있을지, 장 간호사의 마음에 걱정이 한 뭉큼 쌓인다.
요양원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아침 식사, 약 복용, 가벼운 활동, 점심, 낮잠, 저녁, 취침. 이 단순한 루틴이 반복된다. 하지만 노인들에게는 이 시간이 어떻게 느껴질까? 김순자 할머니에게는 하루가 1970년대와 현재 사이를 오가는 혼란스러운 여행이다. 박상철 할아버지에게는 전쟁의 악몽과 평화로운 순간이 번갈아 찾아오는 롤러코스터다. 이정숙 할머니에게는... 아무도 모른다. 그녀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후 시간, 김순자 할머니는 창가에 앉아 있다. 그녀의 손에는 낡은 사진첩이 들려있다. 그녀는 사진 속 얼굴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사진 위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가 이 얼굴들과 연결되어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갑자기 김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진다. 마치 무언가를 알아본 듯하다. 사진첩을 들고 있던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갑수야...갑수야..."
그녀의 입에서 이름이 새어 나온다. 남편의 이름이다. 40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사진 속에서 그를 알아본 것일까? 아니면 창밖의 누군가를 그로 착각한 것일까?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투명한 물방울이 주름진 뺨을 타고 내려온다.
밤이 깊어간다. 요양원은 침묵에 잠긴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잠들었지만, 몇몇은 여전히 깨어 있다. 치매는 종종 수면 패턴을 뒤흔든다. 박상철 할아버지는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복도를 헤맨다. 그는 자신의 중대원들을 찾고 있다.
야간 당직 간호사 신영철(45)이 그를 부드럽게 방으로 안내한다. "할아버지, 이제 휴식 시간입니다. 내일 아침에 또 확인하러 가시죠." 신기하게도 이 말이 박 할아버지를 진정시킨다. 그는 순순히 침대로 돌아간다.
정영순 할머니의 방에서 경보음이 울린다. 신 간호사가 달려간다. 할머니의 산소 포화도가 떨어졌다. 신 간호사는 산소 공급 장치를 조정하고, 할머니의 자세를 바꿔준다. 정 할머니의 호흡이 조금 편안해진다. 그녀의 눈이 살짝 떠진다. 그 눈에는 무엇이 보일까? 94년의 긴 세월이 지나온 그 눈에는, 이제 무엇이 비칠까?
몇 주 후, 정영순 할머니는 평화롭게 숨을 거둔다. 아침 햇살이 그녀의 방을 가득 채운 날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녀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있었다고 간호사들은 말한다. 마치 오랜 여행 끝에 마침내 집에 돌아온 것처럼.
김순자 할머니는 정 할머니의 빈 침대를 바라본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무언가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날 저녁, 그녀는 평소보다 조용하다. 창밖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할머니, 무슨 생각을 하세요?" 간호사가 묻는다.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어요."
순간적인 명료함이 그녀의 눈에 깃든다. 마치 안개가 잠시 걷힌 것처럼. 그리고 그 말이 마지막 선물이었다는 듯, 그녀는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녀의 눈은 다시 혼란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그녀는 완전히 여기 있었다. 완전히 깨어 있었다. 완전히 알고 있었다.
치매 노인들의 마지막 여정은 종종 이런 순간들로 채워진다. 완전한 명료함과 깊은 혼돈 사이의 춤. 과거와 현재 사이의 흐릿한 경계. 그리고 때때로, 아주 짧게 찾아오는 선명한 인식의 순간들. 그것은 마치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빛 같다. 짧지만 강렬하게 빛나다가, 다시 어둠에 잠긴다.
오늘도 저는 그들의 눈을 들여다봅니다. 초점 없는 그 눈동자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읽으려 합니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지치지만, 저는 계속해서 들여다봅니다. 왜냐하면 가끔, 아주 가끔, 그 눈동자가 저를 알아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그들의 몸을 씻기고, 먹이고, 입히는 일.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보살핌 이상입니다. 그것은 제가 그들에게 건네는 작은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당신은 여전히 소중합니다.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 여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모든 영혼에게 평화를 주소서. 김순자 할머니가 영원히 집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게 하소서. 박상철 할아버지가 더 이상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지 않게 하소서. 이정숙 할머니의 공허한 눈동자에 빛이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고 정영순 할머니... 그녀는 이제 평화를 찾았을까요?
때로는 제가 과연 충분히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더 많은 시간을, 더 많은 관심을,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을까요? 그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 있을까요? 그들의 마지막 순간들이 평화롭고 존엄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아주 가끔은, 저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언젠가 제가 그 자리에 누워있을 때, 누군가가 저에게도 같은 존중과 존엄을 보여주기를. 누군가가 저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주기를. 누군가가 저의 손을 잡아주기를.
오늘 밤, 모든 영혼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내일, 또 다른 날이 밝아올 때, 제게 다시 한번 인내와 연민의 마음을 허락해 주소서. 그들을 위해, 그리고 제 자신을 위해.
치매 노인들의 마지막 여정은 단순히 쇠약해지는 육체와 흐려지는 기억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엄성에 관한 이야기이며,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할 수 있는 현실이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우리와 다를지 모르지만, 그들의 영혼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빛을 알아보고, 그것이 완전히 꺼지기 전까지 존중하고 보살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의 마지막 여정이 두려움과 혼란이 아닌, 평화와 존엄으로 가득 차기를 바랄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차례가 왔을 때, 같은 존중과 존엄으로 대해지기를 희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