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먹으면 말지, 냅둬!"
겨울 아침, 요양원의 복도는 쓸쓸하게 조용하다. 창밖으로는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세상은 순백의 이불을 덮고 있지만, 이 건물 안의 현실은 그리 하얗지만은 않다. 301호 문 앞에 서서 나는 잠시 망설인다. 어제부터 식사를 거부하신 김만수 할아버지(87)의 방이다.
"안 먹으면 말지, 냅둬!"
다른 관리인들의 원색적인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들은 지쳤다. 매일 반복되는 설득, 매일 같은 거부, 그리고 끝없는 돌봄의 무게. 책임져야 할 환자는 많은데, 시간과 손길은 부족하다. 하지만 그 말들이 진심일 리 없다. 다만 힘든 현실 앞에서 흘러나온 자기 방어일 뿐.
살그머니 노인의 방으로 들어간다. 창가에 놓인 침대 위에 할아버지가 누워 계신다. 두 눈을 꼭 감고, 입을 굳게 다문 채. 마치 세상과의 연결을 끊고 싶다는 듯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겨울 햇살이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을 비춘다. 그 주름 하나하나에는 87년의 세월이 새겨져 있다.
김만수 할아버지는 6개월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이곳에 오셨다. 오른쪽 팔다리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지만, 의식은 또렷하다. 아내는 10년 전 먼저 떠났고, 아들은 해외에 산다. 한 달에 한 번, 영상통화가 그나마의 가족 만남이다. 할아버지가 이곳에 온 첫 날, 그는 아들에게 말했다.
"걱정 마라. 곧 나아서 집으로 갈 거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할아버지의 눈에서 희망의 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어제부터는 식사를 거부하셨다. 물도 거의 마시지 않으신다. 이대로 가다간 탈수 증세로 더 위험해질 수 있다.
나: "어르신, 저에요. 눈 좀 떠보세요."
노인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간다.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이다. 조금만 기다려 주면 될 것을, 조금만 안아 주면 될 것을...
나: "어르신, 왜 식사 안하셨어요?"
노인은 손으로 가위표를 친다. 그리고 나에게 가지 말고 당신 옆에 있으라고 한다.
그럴 수 없는 현실. 처음 해보는 육체적인 노동이지만 하루 하루 시간이 갈 수록 떠나지 못하고 온갖 치욕을 참으며 보내는 세월인데. 내가 노인에게 쓸데없는 사랑을 주었을까? 책임지지 못하는 사랑을 하였을까?
나: "어르신, 내가 계속 어르신 곁에만 있을 수 없어요. 다른 방의 어르신께도 가봐야 해요. 그러니 내가 안 와도 식사 꼭 하셔야 해요."
노인은 싫다고 눈을 감아 버린다.
이를 어쩌랴. 허리가 안 좋아 힘들어 하셔서 식사라도 하셔야 하는데 마음 한구석이 슬프다.
나: "어르신, 식사 계속 안하시면 저 이제 안 올 거예요. 저 만나시려면 식사 하시고 계셔요. 금방 올게요."
노인은 끝내 눈을 뜨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항상 눈을 감고 계시는 노인, 얼마나 배가 고프실까. 하루 종일 1인용 환자 침대에 누워 계시는데 조금만 안아 줄 수는 없는 걸까? 식사를 드리면서 "다 드셔야 해요"라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그럼 웃으시며 다 드시고 다 드셨다고 자랑하시는데...
하얀 눈길이 싫다. 눈이 온 세상은 흰색이지만 그건 거짓이다. 세상은 회색빛으로 돌아간다.
다음 날, 나는 다시 김만수 할아버지의 방문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두 눈을 감고 계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써 보기로 했다. 조용히 의자를 끌어다 침대 옆에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15분, 그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었다.
천천히 할아버지의 눈이 열렸다. 마치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오늘은 죽 끓여왔어요. 한 숟가락만 드셔 보실래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작은 승리의 순간이었다. 숟가락을 들어 조심스럽게 할아버지의 입에 가져다 대었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죽을 드셨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마침내 그릇의 절반을 비웠다.
"할아버지, 정말 잘 하셨어요."
할아버지의 눈에서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단순한 식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 존중받고 싶은 갈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접촉에 대한 갈증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도 오래 가지 못했다. 다른 방의 호출벨 소리가 울렸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놓아야 했다.
"할아버지, 잠시만요. 다른 분이 부르셔서..."
할아버지의 눈에서 이해의 빛과 함께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그의 곁에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밤새 내린 흰 눈이 우리 가슴에 쌓이면 세상은 하얀 천사가 되어줄까?
신의 손길은 우리 가슴에 미치지 않는 것일까, 아님 이미 우리를 버리셨을까. 이젠 나에게 맞는 옷으로 갈아입을 시간이다. 서서히 준비를 해야겠다.
의식이 있는 노인이 치욕스러운 대접을 받았을 때 그 마음은 "내가 언제 죽나"일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단 한 가지,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자. 날마다 내가 하는 다짐, 오늘 꼭 한 번씩은 안아드리자. 그러면 언제 떠나도 내 마음에 짐은 덜어질 것 같은 이기적인 욕심이 심장 가득하다.
다가온 청룡의 해, 모두가 상처 입지 않고 각자의 길을 묵묵히 가다 편안한 곳에 이르러 인생이라는 열차에서 하차하면 좋겠다.
일주일 후, 김만수 할아버지의 방에 들어가니 침대가 비어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할아버지는 아들이 해외에서 돌아와 집으로 모셔갔다고 한다. 아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아버지를 돌보기로 결정했다고.
안도의 한숨과 함께,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왔다. 아침에 할아버지께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했다. 모든 노인들이 그런 행운을 누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김만수 할아버지는 마지막 여정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떠나버린 그는 편안함에 이르렀을까? 모두의 가슴에 씻겨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길 원했을까? 평소 잘 알지 못했던 그는 알 수 없는 아련함으로 남는다.
우리 모두는 편안한가?
주님, 이 세상의 모든 노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의 주름진 손에 닿을 따뜻한 손길을 허락하소서. 그들의 지친 눈동자에 비칠 이해의 빛을 허락하소서. 그들의 외로운 가슴에 채워질 사랑을 허락하소서.
우리는 종종 잊습니다. 그들도 한때 우리처럼 꿈 많고 힘찬 청춘이었음을. 그들도 사랑하고, 웃고, 울고, 노래하던 사람들이었음을. 그들의 주름 하나하나는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를 헤쳐 온 증표임을.
주님, 우리에게 인내를 주소서. 가끔은 지치고 힘들더라도, 그들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우리가 제공하는 케어가 단순한 신체적 돌봄을 넘어, 그들의 영혼까지 어루만질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주님, 저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제가 일의 무게에 눌려 인간성을 잃지 않게 하소서. 제가 시간의 압박 속에서도 잠시 멈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게 하소서. 제가 단지 '관리인'이 아닌, 그들 삶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될 수 있게 하소서.
주님,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그 자리에 있게 될 것임을 깨닫게 하소서. 오늘 우리가 노인들에게 보이는 태도가, 내일 우리가 받게 될 대우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이미 떠난 모든 영혼들에게 평화를 허락하소서. 그들이 남긴 발자국과 가르침이 우리 삶에 계속해서 빛을 비추게 하소서.
아멘.
인생의 마지막 챕터를 살아가는 이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깊은 유대가 있다. 그것은 단순한 직업적 관계를 넘어선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다.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존엄성을 지키려는 공동의 노력.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모두 조금씩 성장하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해 간다. 노인들은 우리에게 과거를 선물하고, 우리는 그들에게 현재를 선물한다. 그리고 그 교환 속에서, 우리 모두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