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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들판의 나무보다 못해

젊어서 부지런히 놀러다녀

손을 맞잡은 두 영혼

인생의 황혼, 쇼파 위의 정지된 시간

식사 후 쇼파에 앉아 두 손을 꼬옥 잡고 계시는 노인 할머니 두 분. 두 분 모두 치매가 심하지 않으시나 한 분은 조금씩 치매가 진행되는 것 같다. 몇 년 전에 다친 머리가 아프시다고 며칠째 두통을 호소하고 계신다.

방에서 나오실 때나 들어가실 때 손을 잡고 다니시는 모습이 참 곱다. 앉아 계시는 두 분 옆에 가만히 앉아본다. 그들의 손가락은 서로 맞물려 있다. 마치 서로가 아니면 이 세상에 의지할 것이 없다는 듯이. 그 손에는 수십 년의 세월이 새겨져 있다. 농사일로 굳어진 손가락 마디, 주름진 손등, 희미해진 결혼반지 자국. 모두 그들이 함께 걸어온 길의 증거다.

김순자 할머니(85)의 눈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무엇을 보고 있을까? 아마도 그녀의 눈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닌, 먼 과거의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을 것이다. 20대 초반, 봄날 마을 우물가에서 처음 만난 남편과의 추억. 시집와서 처음으로 지은 보리밥과 남편이 칭찬해주던 순간.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남편이 들고 온 미역국. 둘째, 셋째가 태어나고 바쁘게 농사짓고 아이들 키우며 보냈던 세월. 그것들은 점점 희미해지지만, 그래도 가끔씩 선명하게 떠오른다.

박명자 할머니(82)는 그저 순자 할머니의 손을 꼭 쥐고 있다. 그녀에게 그 손은 안전하다는 신호다. 낯선 이 장소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서, 그 손만은 분명하고 확실하다. 그녀는 평생을 마을 우체국에서 일했다. 매일 아침 사람들의 편지를 분류하고, 택배를 받고, 월급날이면 마을 어르신들에게 연금을 나눠주던 그 시절이 가끔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이들을 낳지 못했지만, 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그녀를 '우체국 이모'라고 부르며 따랐다.

잊혀지는 기억, 남겨지는 상처

김순자 할머니: "젊은 선생님은 젊어서 많이 놀러 다녀. 우리처럼 늙으면 아무 소용 없어."


관리자: "아니예요. 어르신들이 계셔서 우리 젊은 사람들이 살아가죠."


김순자 할머니: "아니야. 나무는 나이가 많아 죽으면 장작으로라도 쓰지. 사람은 아무 소용 없어, 아무것도 못해..."


관리자: "어르신, 그러지 마요. 슬퍼져요."


김순자 할머니: "아니야. 우리 말 들어요. 젊어서 놀러도 다니고, 그리고 남편도 좀 써먹어."

"나무는 나이가 많아 죽으면 장작으로라도 쓰지. 사람은 아무 소용 없어."

이 말에는 경도 치매 노인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가장 큰 마음의 상처가 담겨 있다. 자신이 무용하다는, 쓸모없다는 절망적인 자기 인식. 평생 가족을 부양하고, 사회에 기여하고,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며 살아온 이들에게, 이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현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요양원의 일상은 이런 무용감을 더욱 강화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식사를 하고, 같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젊었을 때의 자율성과 결정권은 사라지고, 누군가의 지시와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삶. 이것은 단순한 신체적 의존을 넘어 정신적, 감정적 의존으로 이어진다.

기억의 미로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

봄이지만 하늘이 잔뜩 고독하다. 나의 마음도 아주 많이 고독하다.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태어나 본인의 원하는 조건이 아닌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들.

누군가는 열심히 살아가는 인생. 누군가는 대충 살아가는 인생. 누군가는 수없이 누군가를 원망하며 살아가는 인생. 누군가는 마음에 칼을 갈고 살아가는 인생. 누군가는 아무 의미 없이 즐기며 살아가는 인생.

김순자 할머니의 눈에 먼 기억이 스친다. 겨울이면 온 가족이 이불 하나에 모여 자던 시절. 남편이 도시에 일하러 가고 혼자 세 아이를 키우며 농사짓던 고된 나날들. 큰아들이 서울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동네잔치를 벌이던 날. 딸의 결혼식에서 눈물을 참으며 웃던 순간. 그리고 남편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을 때, 혼자 남겨진 적막한 방에서 밤새 울던 기억. 모두 선명하게 떠오르지만, 어제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박명자 할머니는 가끔 자신이 아직 우체국에서 일한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복을 찾고, 편지를 분류해야 한다며 안절부절못한다. 수십 년간 매일 반복해온 일과가 그녀의 몸에 깊이 배어 있다. 잠시 정신이 돌아오면, 자신이 요양원에 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한다. 우체국장으로 은퇴한 그녀에게,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다.

치매 노인들에게 가장 잔인한 것은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사이의 괴리다. 한때 아이들을 키우던 어머니, 마을에서 존경받던 우체국장, 가정을 꾸려나가던, 대대로 내려오는 농사일을 책임지던 여성들. 그 모든 정체성이 흐려지고, 이제는 그저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만이 남는다.

기억이 흐려질수록 이 정체성의 혼란은 더욱 심해진다. 가끔 과거의 강한 자아가 불쑥 튀어나와 현재의 약한 자아와 충돌한다. 이 충돌은 분노, 좌절, 부정, 우울 등 다양한 감정적 반응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의 고통스러운 외침이다.

상처에서 피어나는 감사의 마음

그러다 내가 원해서 오지 않았듯이 내가 원하는 시기에 가지도 못한다.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최선을 다하여 본인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쉽지 않은 길 위에서 어쩌다 만난 돌덩이 피하지 못하고 진흙탕에서 헤매는 인생들. 그러다 얻은 상처가 어쩌면 기억상실이라는 치매로 이어지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김순자 할머니는 6·25 전쟁 때 피난길에 부모님을 잃었다. 열네 살 소녀가 홀로 살아남아 친척집을 전전하다 열여덟에 남편을 만났다. 가난했지만 서로 의지하며 농사를 지었고, 세 자녀를 키워냈다. 큰아들은 의사가 되었고, 둘째는 교사, 막내딸은 간호사가 되었다. 그녀는 자식들에게 자랑스러운 어머니였다. 지금은 선명했던 기억들이 가끔씩 안개처럼 흐려지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삶에 감사한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내가 얼마나 복이 많은지 몰라."라고 그녀는 말한다.

박명자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지 20년이 넘었다. 자식 없이 평생 우체국에서 일하며 살았던 그녀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녀의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기억이 흐려져도, 누군가 그녀에게 친절을 베풀 때마다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떠올리는 듯하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해줬는지 몰라요. 내가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평생 갚아도 모자라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쇼파 위에서 두 손을 놓지 않고 아무 표정 없이 앉아 계시는 노인 할머니들의 인생은 어땠을까? 그들이 걸어온 길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험난하고 복잡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물 한 잔을 드려도 감사하다고 두 손을 모으시고, 침대를 정리해 드려도 감사하다고 두 손을 모으신다.

처음엔 그러시나보다 생각했지만, 다음엔 함께 두 손을 모은다. 그 감사함에 감사한다.

역설적이게도, 많은 것을 잃고 있는 이 노인들에게서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감사의 마음. 그들이 보여주는 끊임없는 감사의 표현은 단순한 예의나 습관이 아니다. 그것은 사소한 것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깊은 지혜, 인생의 황혼기에 도달한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시각이다.

치매가 발전함에 따라, 많은 노인들은 과거보다 현재에 더 집중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과거에 대한 후회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 편안함, 친절함에 더 민감해진다. 그래서 작은 친절에도 큰 감사를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감사함의 전염과 삶의 교훈

감사는 전염이다. 하지만 그 전염마저도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에게만 전염된다.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당신 지금이 힘들다면, 지금이 호흡이 어렵다면 먼저 두 손을 모으고 감사를 해보라.


자동으로 호흡하게 만들어준 신께 감사

두 발로 서 있음에 감사

두 손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

상대에게 웃음을 전할 수 있음에 감사

들어와 잠을 청할 수 있는 집이 있음에 감사

물 한 잔 고플 때 마실 수 있음에 감사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 할 수 있음에 감사


아마 두 노인이 척박한 시설에서 살아가는 원천은 감사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것에 감사를 전하는 두 노인에게서 나를 돌아본다.

경도 치매 노인들이 요양원에서 겪는 마음의 상처는 깊고 복잡하다. 그것은 단순히 기억을 잃어가는 고통이 아니다. 자존감의 상실, 정체성의 혼란, 무력감, 외로움, 버려짐의 느낌 등 다층적인 감정적 고통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 상처 속에서도 이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삶의 교훈을 전한다.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법,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 관계의 중요성. 손을 꼭 잡고 있는 두 노인처럼,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그들은 몸소 보여준다.

당연하지 않은 세상에서의 감사

어제 밤, 퇴근길에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김순자 할머니와 박명자 할머니가 생각났다. 그들도 한때는 이렇게 밤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꾸었을까?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별을 세었을까? 젊음이란 누구에게나 한때 주어졌다가 흘러가는 강물 같은 것인데, 우리는 종종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한다.

오늘 아침, 난 감사하며 일어났는가? 따스한 이불,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 숨 쉬는 것조차도 경이로운 선물인데. 출근을 위해 걷는 그 길에 감사하였는가? 두 발로 내딛는 걸음걸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를 위해 운전을 해주는 직원에게 감사했는가? 모든 만남은 기적 같은 우연인데.

김순자 할머니는 오늘도 창밖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어쩌면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남편을, 어쩌면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오지 못하는 자녀들을. 박명자 할머니는 오늘도 김순자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같은 소파에 앉아 있다. 그들의 눈빛 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세상에 단 한 가지도 당연한 것은 없다. 늘 기억하자. 세상의 모든 것이 당연히 나에게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있어준 것에 감사하자. 오늘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두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들의 주름진 손을 살며시 잡아본다.

그 손에는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새겨져 있다. 전쟁과 가난, 사랑과 상실, 기쁨과 슬픔이 모두 담겨 있는 손. 그 손이 내 손을 꼭 쥐었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온다.

"할머니, 오늘도 계셔주셔서 감사해요."

김순자 할머니의 눈가에 작은 미소가 번진다. 박명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인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끝자락에서, 그들은 나에게 가장 귀중한 선물을 건네고 있다. 감사하는 법,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감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신 두 노인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그들은 들판의 나무보다 못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가장 귀중한 인생의 스승이다.


요양원을 나서는 길, 하늘에서 첫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하얀 눈송이가 내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마치 오늘 만난 두 할머니의 영혼이 내게 작은 선물을 주는 것 같다. 경도 치매 노인들의 마음 속 상처를 들여다보는 여정은 결국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그들처럼 늙고, 약해지고, 기억을 잃어갈 것이다.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만큼은 잃지 않기를. 두 손을 맞잡고 앉아 있는 노인들처럼, 우리도 서로를 붙잡고 의지하는 법을 잊지 않기를. 눈발이 점점 거세진다. 마치 하늘도 이 이야기에 동참하는 것 같다. 나무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이지만, 사실 그들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삶의 지혜를 전해주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어떤 장작보다도 가치 있는, 그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발걸음을 재촉하며, 내일도 그들의 손을 잡아줄 것을 조용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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