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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다병 치료하고 94만원 벌었어요

145일 차 아기 육아일기

by P맘한입
영다병

나는 영다병에 걸렸다. '영다'는 '영아다중'의 줄임말로 프뢰벨 출판사에서 나온 전집이다. 이름 그대로 다중 지능 이론을 바탕으로 여러 지능을 개발시켜 준다는 영아 책이다.


글쎄, 그 책을 읽는다고 다중지능이 개발되는 건 아닌 거 같다. 하지만 프뢰벨은 워낙 전통적인 출판사이고 최고 베스트셀러인 영아다중은 이미 검증되었으므로 나는 영아다중 전집은 꼭 사고 싶었다.


영아 다중 전집을 사고 싶어 노래를 하는 꼴 보고 '영다병 걸렸다' 표현하더라. 그런 다양한 표현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영아다중은 새내기 엄마들을 고민해 빠뜨리는 인기 전집이다.


나도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조리원에서 영업 당해 4개월이 넘도록 여태껏 고민 중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가격이다.


32권짜리 유명전집. 얼마일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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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만 원.

많이 세다. 물론 책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교구도 몇 개 같이 준다. 그렇다 하더라도 거의 백만 원 돈. 내가 다른 책을 하나도 안 샀으면 모르겠는데 벌써 전집을 몇 질이나 구매한 상황. 그러니 영아 다중 구매는 아무래도 망설여졌다.




당근으로 사볼까

중고품을 선호하지 않기에 당근에서 한 번도 물건을 구입한 적이 없다. 하지만 출산 후 당근은 나에게 필수 앱이 되어 필요한 육아템들을 구매한다. 이참에 영아다중도 당근으로 한번 사볼까?


당근에는 키워드 알람 기능이 있다. 원하는 물품을 키워드 등록해 놓으면 새로운 글이 올라올 때마다 나에게 알람이 온다. '영아 다중'을 키워드 알람 신청하고 기다렸다.


상태가 좋은 건 40만 원 대도 있고 그렇게 좋은 상태가 아닌 건 20만 원 대도 있었다. 그리고 재당근인 경우 싸게는 몇 천 원에서부터 10만 원 정도까지 가격대가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값이 나가더라도 상태 좋은 책을 사려고 했다. 아무래도 읽는데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그런데 키워드 알람을 하고 영아 다중 매물을 올린 사람들의 글을 유심히 살펴보고 알아낸 것이 있다.


영아다중 책
잘 활용하는 엄마 드물다

고가 영아다중 매물은 그만큼 상태가 좋다는 건데 다른 말로는 책을 별로 안 봤다는 거다. 당근에 비싸게 팔기는 좋겠지만 당초에 책을 산 이유가 당근에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읽히기 위해서니까. 하지만 책이 깨끗하다는 사람도 하나같이 영아다중 음원은 좋단다.


그래서 나는 영아다중이 이토록 유명한 이유가 책보다는 음원 때문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눈을 대폭 낮추기로 했다.



상태 좋은 거 필요 없어!
그냥 읽히기만이라도 하자!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영아다중을 만나게 되었다. 단돈 5만 원. 뭐, 상태는 기대하면 안 된다. 글씨랑 그림은 보인다.





당근해온 책 한 권씩 소독하기

지난주에 당근 해온 책은 근처 도서관 책 소독기에 가서 하나하나 소독을 했다. 그런데 도서관 가는 것도 번거롭고 어차피 또 소독 티슈로 소독할 예정이라 도서관 소독기 단계는 생략하기로 했다.


아기들이 읽는 책은 이렇게 빳빳한 종이로 만들어진 보드북이어서 책 낱장 한 장 한 장을 다 닦아줄 수 있다. 사진처럼 세워서 말린다.


30권 닦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하게 1시간. 하는 내내 그냥 새 거 살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 앉아 한 시간 동안 집중해서 책을 닦으니 허리가 결리고 몸이 쑤셨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랬다.

당근 해서 이 책을 얼마나 싸게 샀지? 94만

원. 그래, 내 닦기 노동은 94만 원 짜리네.


큰돈 아꼈네.

그럼 됐다!




당근이 있기 전에는 그 많은 육아 용품을 다 산 건지 어떻게 마련했는지 궁금하다. 그만큼 육아하는 엄빠 사이에서는 당근이 필수다.


오늘만 해도 당근 거래를 두 번 다녀왔다.

오전에는 유모차, 오후에는 아기띠. 미리 안 구해놓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자 부랴부랴 사는 거, MBTI P성향 어디 안 간다. 하지만 하고자 하면 금방 추진력 있게 일을 해치워버리는 게 내 성격이기도 하다.


당근으로 94만 원을 아꼈지만.
만고의 진리, 안 쓰면 100% 할인이라는 거.

싸다고 잡동사니까지 사 나르지는 않을 거다.


꼭 그렇게 필요한 것 같았던 영다. 진짜 필요했는지는 차차 밝혀지겠지. 구매를 끝으로 나의 영다병은 치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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