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47일에 찍은 백일사진, 웃지 않는 아기에게 배운 것

147일 차 아기 육아일기

by P맘한입
아기 태어난 지 100일 차에 찍는 백일 사진.


너무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한 문장이다. 하지만 내용을 생각해 보면 틀린 문장이 된다. 통상 아기 백일 사진은 100일에 찍지 않는다. 아기가 조금 더 발달하고 난 뒤인 120~140일경에 찍는단다. 그래서 그런 줄 알고 124일에 예약을 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147일 차에야 촬영하게 되었다.




여보, 백일 촬영은 작가님 불러야겠어...

아기 50일 기념사진은 집에서 셀프로 찍어줬다. 그래도 허술하게 촬영하긴 싫어서 스튜디오 세트 소품을 대여까지 했다. 그러나 배경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기의 기분이 변화무쌍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5분. 그 시간 안에 좋은 사진을 건지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래서 백일 사진은 집으로 작가님을 모셔서 찍는 출장스냅으로 촬영하기로 했다. 우리는 백일해와 독감이 무서워 외출을 거의 안 하는 조심성 많은 가족이기에 스튜디오 가서까지 촬영하는 건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비싸다.ㅠㅠ)




147일 촬영, 너무 늦은 걸까?

남들은 다 120일경에 찍는 거 같은데 너무 늦은 거 아닌가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147일에 찍는 백일 사진이라니. 그러나 기우였다. 당초 계획대로 124일 차에 촬영했으면 큰일 날 뻔했으니까.




오늘따라 안 자는 축복이

기사님이 오시기로 하신 시각은 2시 반. 그러나 축복이는 2시까지 잠들 줄을 몰랐다. 12시 반에 낮잠에서 깼다고 하니 기사님께서는 일단 재우고 집에 올라오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축복이는 눈이 너무 말똥말똥해서 전혀 졸려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2시 반에 촬영할 걸 생각했다면 역순으로 계산해서 아침잠을 깨우고 첫 번째 낮잠을 재웠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고 있는... 나는 어쩔 수 없는 P인가 보다.


백일 사진 찍는 김에 가족사진까지 촬영하기로 해서 내 얼굴 치장하랴, 촬영 때 입을 옷 다리랴, 아기 재우랴, 정신이 없었다. 어쨌거나 2시 반이 되어서야 축복이는 잠들었고 기사님은 그제야 올라오셔서 세팅하셨다.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나는 그만큼 우리 축복이의 백일 사진 촬영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축복이가 의자에 앉아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을 상상을 하니 너무 설렜다. 시작도 전에 들뜬 나를 보고 촬영기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축복이 사진이 내 기대보다 잘 안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해봤던 거 같다. 내 예상대로라면 축복이 촬영은 물 흐르듯이 성공이어야 했다. 평소에 핸드폰 카메라로 축복이를 찍으면 너무 좋아하며 방긋방긋 웃길래 '이러다 우리 애기 아이돌 되는 거 아니야'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백일, 돌 사진이 너무 잘 나와서 사진관에서 모델 액자로 쓰였다는 건 친정 엄마한테 익히 여러 번 들어온 터였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 딸도 그만큼 잘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허리 힘이 부족해요

축복이는 엄마, 아빠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낮잠을 40분 간 곤히 자고 일어나서 기분이 좋았다. 미리 준비해 둔 한복으로 갈아입고 조바위를 씌웠다. 귀여운 복장에 웃음이 나는 우리와 달리 축복이의 표정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평소와 다르게 방긋방긋 웃지도 않았다. 그렇게 촬영용 범보 의자에 앉았다.


100일쯤에 범보의자를 사다 놓고 앉기 연습을 시킨 적이 있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하고, 앉기 연습이 아기에게 유익하지 않다고 하여 그만둔 상황이었다. 과연 축복이는 범보의자에서 버틸 수 있을까?


축복이는 휘청휘청 대고 자꾸 다른 데를 보고 표정은 뚱하거나 불안한 표정이었다. 축복이가 제일 좋아하는 헝겊책을 흔들어도 소용없었다. 축복이는 불편했다. 기사님은 일단 '아무 설명 않고 찍겠다'고 열심히 사진을 찍으셨다.


그리고 한참 후에 말씀하시길 축복이가 허리 힘이 많이 없어서 자세가 무너지고 기울어져서 뒤로 누운 자세가 된단다. 그렇게 사진을 찍으면 이상하니, 아래를 보게 한 뒤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에 눈만 살짝 위를 보게 해서 또렷한 눈매가 되게 찍고 계셨단다. 시간이 흐를 수록 아기의 자세는 더 무너지기에 일단 촬영을 하셨단다. 그런데도 정자세 + 표정 + 복장까지 삼박자를 갖춘 사진은 거의 20분이나 되는 시간 동안의 노력에도 쉽게 얻을 수 없었다.


아, 정말 출장 기사님을 불러서 다행인 순간이었다. 똥손인 내가 집에서 혼자 찍다가는 아무것도 못 건졌을 게 뻔했다.


다른 아기들은 5분 정도 앉아서 샤샥 다 찍고 마무리된다는데 축복이는 20분 간 범보의자에 앉아 씨름을 했다. 그런데도 울지도 않고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나를 닮아서 그런지 끈기가 있다.(???) 어쨌든 기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124일에 촬영했으면 더 힘들 뻔했어요. 지금도 허리 힘이 약해서 다른 보통 120일 정도 된 아기들 발달과 비슷하거든요. 지금 촬영하길 다행이에요.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가족사진

그 상태에서 가족사진 찍기에 들어가려는 그때, 소리가 들렸다.


'뿌지직'


설마설마했는데 축복이가 이 와중에 응아를 했다. 나는 아기 촬영에서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사님 왈 천 팀 넘게 촬영했는데 촬영도중 응아한 아기는 축복이가 처음이란다. 나는 '우리 축복이 잘 기억해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당황하고 힘들어 등줄기에 땀이 났다.


기사님 오시기 전까지 오랜만에 화장하고 머리 고데기 한다고 난리 부르스를 췄지만, 막상 가족사진을 찍을 땐 거울 한 번을 못 봤다. 그만큼 진이 빠져있었다. 남편은 축복이를안고 포즈를 취했으나 무언가 어색해서 아기를 고쳐들라는 지시를 자꾸만 받았고, 그러면서 축복이는 점점 배꼽 아래까지 쳐졌다. 그러면 기사님은 다시 올리라고 지시, 그러면 또다시 자세 잡고, 무한 반복이었다.


나는 남편의 떨리는 팔을 보았다.(흑) 나도 처음에는 까치발을 들다가 나중에는 포기했다.(ㅋ) 모두가 힘든 시간이 계속 됐다. 그런 상황에서 축복이는 오죽했겠는가.


그랬는데도 기사님 왈, A컷은 못 건진 거 같단다.





드레스 사진 찍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축복이에게는 드레스 컨셉이 남아 있었다. 아기 사진 촬영의 세계를 모른 욕심만 많은 엄마가, 무계획이 일상인 성격을 극복하고 웬일로 미리 계획한 야심찬 컨셉이었다.


우리는 결정해야 했다. 지친 아기에게 드레스를 입히고 또 의자에 앉혀 사진을 찍힐 것인가. 너무 지쳐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가 지쳤기에 그냥 취소하려고 했다. 그런데 또 언제 드레스 입히고 이렇게 찍을까 해서 그냥 하는 김에 해보자고 했다. 다행히 축복이는 찡찡거리거나 울지 않았다.


등받이가 높아서 그랬을까. 의외로 축복이는 범보 의자가 아닌 그냥 의자에 앉으니 덜 힘들어 보였다. 5분 정도 열심히 찍었으나 역시 허리힘 이슈로 이 컨셉에서도 A컷은 못 건진 것 같다.


축복이는 촬영 후 바로 잠이 들었다.

그래, 아가야. 고된 일정이었지.




카메라가 꺼진 후에

"평소 촬영보다 2배 걸렸어요."

기사님이 집을 떠나면서 하신 말씀이다. 컷수도 평소보다 많이 찍었지만 다 B컷이라 쓸모없다고 하셨다. 열심히 해주신 기사님께는 무한 감사하지만... 그런 말을 들은 게 속상하면서 우리 축복이가 다른 아기들보다 발달이 정말 많이 느린 건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책 <첫 1년 움직임의 비밀>에서는 5~6개월부터 어른이 앉혀주면 그 자세를 유지할 수 있으나 아기를 앉혀 주거나 베개로 받쳐주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힘으로 몸을 일으켜 앉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편이 훨씬 낫다고, 자연적으로는 9~10개월 이후에나 앉을 수 있다고 했다.


뒤집기도 133일에 한 우리 축복이. 또래보다 빠르진 않아도 결국 해냈다. 허리 힘이 생겨 앉는 것도 기다리면 될 문제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조바심이 나고 걱정이 된다.





이 또한 엄마로서 배움의 기회

백일 사진에 대해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나 보다. 처음으로 우리 아기가 나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잘했다고 해서 꼭 아기가 잘하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욕심 많은 엄마로서는 당연하지가 않다. 이대로라면 내가 축복이에게 원하고 목표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 축복이가 상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축복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며 아기에게 내 시선을 맞춰야겠다. 그게 축복이를 진짜 사랑하며 키우는 길이 아닐까.


약간은 실망스러운 백일 촬영이지만, 나중엔 이 감정마저 추억으로 남겠지.

허리가 많이 아팠을 텐데도 울지도 않고 끝까지 열심히 앉아 있어 준 우리 딸 축복이 고마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