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맨은 벙커 속에서 지 혼자 죽었어야 했다.
요즘 독일 정계에선 90년 전을 방불케 하는 어떤 장면들이 다시 나오고 있다. 지도자들이 외부의 위협(러시아)을 강조하며 군사강국 독일의 부활을, 유럽을 벌벌 떨게 했던 그 강력했던 독일군의 재건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다만 결정적인 측면에서 90년 전과 조금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90년 전 독일의 젊은 피들은 그들의 콧수염 지도자에 열광하며 한 목숨 기꺼이 조국에 내던질 것을 각오했었지만(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지금 독일의 젊은 피, 그것도 젊은 남성들은 더 이상 "내 목숨을 아이어에" 바치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정치가들이 부르짖는 군사강국화 슬로건과 징병제 부활시도에 격렬히 반대하며 시위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은 아니다. '우리'도 가기 싫은 거 억지로 끌려갔던 거고 안 갈수만 있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빠지려 하지 않았던가. 다녀오고 나서도 억지로 끌려간 게 너무 억울해 끝없이 보상을 요구한다. 그래서 군복무 단축 내지 군복무 보상 처우 개선 슬로건은 언제나 정치권에서 잘 먹히는 슬로건들이다.
오늘날 젊은 남성들의 군 기피 풍조는 비단 독일이나 한국에서 만의 문제가 아니며 제1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흔한 풍조이기도 하다. 제1 세계의 에겐에겐으로 떡칠된 세미보추 2030 남성들은 전쟁 포성 피 죽음 이런 걸 모니터 밖 현생으로 마주하길 원치 않는 것이다.(문명 이래 냉전시기까지 선대 남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면, 지금 우리는 부정할 수 없이 에겐 떡칠 세미보추화 된 거 맞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현상 자체가 나쁘다고 보지 않았다. 범세계적인 에겐에겐 세미보추화가 80년 전과 같은, 무덤 속 노스트라다무스가 미소 지으며 "아이톨쥬" 할 만한 어떤 참극을 방지하는 데 제법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추세를 수년 전 '누군가'가 대차게 흔들어 놓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알렉산드르 두긴, 그리고 러시아.. 이제 이 이름들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린다. 이들은 기를 쓰고서 죽어가던 가치였던 '피와 죽음과 폭력의 가부장적 남성성'을 부활시키려 전천후로 용을 썼다. 물론 순탄하진 않았지. 아무리 상마초의 나라라곤 한들 에겐에겐 세미보추화라는 범 세계적 추세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쉽지 않았을 테니까. 러시아 젊은 남성들도 전쟁 피 죽음 이런 걸 모니터 밖에서 접하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피와 죽음의 남성성에 심취한 그들의 지도자는 결국 버튼을 눌러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동네 젊은 남성들은 군말 없이 대포밥으로 끌려나갔지.(그것도 수도권의 지체 높으신 자제분들은 예외로 두고 강원도 두메산골에 못 사는 힘없는 집 애들만 잔뜩 끌고 가서 우크라이나 흑토지대를 더욱 비옥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 동네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기 싫다'라는 당사자들의 반발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한 새X가 버튼을 눌러버렸으니 반대편에서도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유럽과 일본에서 대규모 재무장 열풍이 불어닥쳤다. 워낙에 추세가 추세인지라 그 나라 '에겐에겐 세미보추들'이 싫다고 발작반응을 보인다 한들, 궁극적으로는 다 끌려가게 될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무덤 속에서 미소 지을 그날은 이렇게 우리 곁으로 한 층 더 가까이 다가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