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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Aug 17. 2021

페미 일베 그리고 안산

어째서 '안산 규탄'은 다수의 호응을 받지 못했는가

1. 쌩둥 맞게 안산 이야기냐 싶겠지만 일부러 열기가 다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꺼내는 거. 누군가의 요청이 있었는데 이 주제로 너무 과열되는 건 또 싫어서..

뭐, 첨언하지 않아도 안페진영은 안산 전투에서 패배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GS승리 때와는 다르게 많은 이들이 호응해주지 않았다. 반면 페미 측은 결집했고 그렇게 꾸준히 상승세를 타던 안페의 기세는 일단 한풀 꺾임세로 전환되었다.


왜 사람들은 GS때와 달리 안산 전투 때 안페쪽에 호응을 해 주지 않았을까? 

왜 "일베가 사회적 금기이듯 페미 역시 그러해야 한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던 것일까?

...


2. 어떤 세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상'과 

무언가를 하기 위해 사람들과 모여 만들어가는 '단체'는 분명 범주가 다르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어지간하면 사상만 가지고는 처벌할 수가 없다. 나는 '자유시장주의자'를 아주 싫어하지만, 누군가가 자유지상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범죄자 취급하며 몰아세울 수는 없다. 그저 내 나름의 논리로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끝없이 되뇔 뿐.


반면 지탄을 받을 만한 행위를 한 단체가 있다면 그 단체에 함께 소속되어 있음 만으로도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티의 포지션은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사상보다는 집단, 단체에 조금 더 가깝다. 그게 통념이다. 

일베는 그 시작단계에서부터 노무현의 죽음, 그리고 호남지역에 대한 비하와 조롱이라는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정원의 체계적인 개입이 있었음이 정설로 밝혀졌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다 하는 '그' 용어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 건 노무현 내지 호남에 대한 조롱을 반영한다. 


일베는 단순히 '우파 사상'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 중 극단적인 이들이 모여 가장 저속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바람을 실천(?)하려 했다는 정체성을 가진다. 때문에 '일베인'으로 의심되는 대상은 그 소속만으로도 지탄을 받는다.


...


3. 페미니즘은 -설령 당신이 그걸 얼마나 싫어하고 있건- 하나의 사상이다. 자유지상주의나 좌파 경제, 우파 사상 등과 등치 된다. 

"이상한 짓을 벌여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된"으로써 일베에 호응되는 대상은 "그냥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이 아니라 "집단으로써의 워마드"이다. 때문에 안산이 페미를 너머 명확하게 워마드였음을 규명할 수 있었다면, 아마 안산 전투는 이렇게 씁쓸하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못했고, 워마드 여부를 떠나 그냥 페미이기만 하다면 왜 그걸로 그렇게 지탄을 받아야 하는지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못했다. 당신이 페미니즘을 얼마나 싫어하건, 대한민국은 페미니즘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걸 죄악으로 취급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아니니까.


(수십 년 전 한국에선 좌파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한국 근현대사의 흑역사로 남아있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상만으로도 처벌이 되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다. 서방세계에서 파시즘이 그러한데, 만약 페미니즘도 이와 같아지려면 페미니스트들이 거대한 가마솥을 만들어 650만 명의 '한남'을 처밖아 푹푹 삶는 정도의 해프닝(?)이 일어나 주어야 한다.(정책실패가 아닌 의도적인 학살)

아무리 페미니즘이 싫다고 해도 농담이 아니고서야 진지하게 비벼볼 대상이 아닌 것이다.  


...



4. 막말로 안페보다 훠얼씬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페미 진영(위나라와 촉나라의 국력차이? 아니, 신라와 당나라?)에서 조차도 누군가를 단지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매장시킬 수는 없다. 


일전 추미애가 "페미니즘 JO까!"를 시전 했을 때 역시 마찬가지. 정치가는 일반인과 달리 그 사상 여부에 대해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기 더 좋은 포지션임에도, '추'가 "싫어서 싫다 했는데 어쩔?"을 시전 하자 그저 일부 인사들의 "우려된다."정도의 입장표명 선에서 반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물론 추미애는 한 달쯤 지나서 슬슬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이긴 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외압들이 있었는지는 그저 상상의 영역일 수밖에 없겠지만, 상대가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성향을 드러냈을 때, 적어도 표면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여지는 페미니즘 '그들'에게 조차도 많지 않았던 것이다.


가끔 "너 페미냐?"라는 식으로 질타받은 유명인사가 "전혀 그렇지 않다! 난 페미니즘 그런 거 싫어한다."는 식으로 받아치는 경우가 있었던 걸로 안다. 그때마다 페미니즘 진영에서 "너 어떻게 페미니즘을 거부할 수 있어!" 라고 따지며 거친 반격에 나서던가?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페미니즘 진영에서 조차 누군가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성향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매장시키지 못하는 데, 그 반대는 성립할 수 있다고 믿었는가?

...


5. 오조오억 웅앵웅은 아무리 지탄해도 그 자체가 무언가에 대한 비하로 탄생한 게 아니다. 오조오억의 경우 남성 정자수에 대한 비하라는 설이 있긴 하지만 이는 실제 수치(실제 남성 정자수는 아무리 많아봐야 억 단 위이다.)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설득력이 별로 없다. 항상 '소추 소심'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남성의 성기를 비하하기 위해 용어를 만들려 했다면, 오히려 수치를 낮추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조오억과 웅앵웅은 메갈이나 워마드를 떠나 여초 세계 전반에 걸쳐 폭넓게 사용되었다. 만약 오조오억과 웅앵웅이 내포하는 어떤 소속성 때문에 지탄받아야만 한다면, 이는 메웜을 너머 여초 커뮤 전반에 대한 사용이 그 자체로 지탄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2030 남성들이 그러하듯, 2030 여성들 역시 많은 수가 여초 커뮤니티를 이용한다. 그런데 여자로 여초 커뮤를 이용한다는 자체가 지탄받아야 할 일이라면, 대다수 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


6. 한때 기세 높았던 레디컬 페미니즘이 꺾이게 됨 에는 "같은 여성들의 외면"이라는 측면이 제법 크게 작용했었다. 대학들의 총여 폐지가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그럼 왜 여성들이 페미 진영에 회의적으로 변했던 걸까? 왜냐면 페미들이 자꾸 검열하려고 그랬으니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페미들은 남성의 성욕만 검열하려 하지 않았다. 같은 여성들의 언행 역시 검열되었다.
예쁘게 꾸미는 걸 노예의 미덕으로 치부하고 흉자라 매도했었고, 남자 셀럽들을 좋아하는 역시 자발적 노예화라는 식으로 규탄했다. 하다못해 BL소설 속 여성 포지션의 남성이 페미니즘에 반대되는 전통적 여성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이런 창의적인 이유로 비난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학을 때고 페미니즘을 등졌는데 이런 현상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안페진영에 많은 이득을 주었다.

만약 안페쪽에서 역시 여성 자신들을 검열하려 한다는 느낌을 준다면 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안페쪽의 기세가 좋은 한두 번은 조용히 넘어가 주겠지. 반복되면? 

물론 젊은 여성들의 입장을 디폴트로 두고 항상 따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나 역시 그럴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그들의 심리' 역시 변수로 두고 고민을 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젊은 여성이 여초 커뮤의 세계에 어떤 식으로 건 관여하고 있는데(안페 여성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짓밟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역풍이 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총여 폐지'라는 식으로 역풍을 맞이 했었듯이 말이다.     

...

+이 실책으로 인해 너무나 자랑스러운 'GS 승리'의 대의 역시도 다시 공격을 받는 중이다.

"GS때부터 이대남 안페새X들한테 너무 오냐오냐 해 준 게 문제였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경우 국물도 없음을 처절하게 깨닫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잘들하자. 앞으로는 남자들이 무언가 '총공'을 기획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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